나는 열등감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움츠러들기보다 더 넉넉한 사람이 되기로. 성격 좋은 척이라도 해서 자리를 지키고, 목소리를 키워서라도 존재감을 만들기로. 열등감은 나를 작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훈련시켰다.
대학교에 가서도 상황은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인한 위경련과 신경성 증상으로 3년을 보냈고, 학교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있었다. 친구들이 하교 후 자연스럽게 모일 때, 나는 긴 통학길을 되돌아왔다. 대신 나는 학교 안에서 가장 바쁜 학생이 되었다. 홍보 동아리, 과 동아리,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붙잡았다. 선택지가 적을수록 사람은 더 치열해진다.
지방대라는 이유로 스스로 한계를 긋기도 했다. 대기업은 나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야간 대학원을 다니며 경력을 쌓았고, 결국 SK, GS, 삼성의 면접을 통과했다. 최종 합격은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 그 문 앞까지는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경험은 내 기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회사에서는 나이가 많은 과장이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시선도 있었다. 보수적일 거라는 예상, 고리타분할 거라는 선입견. 나는 그 틀을 깨고 싶었다. 인턴과 가장 많이 소통하는 사람이 되었고, 어린 동료들과 가장 편하게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를 무기로 쓰기보다, 편견을 깨는 증거가 되고 싶었다.
돌아보면 내 삶에는 늘 열등감이 있었다.
키, 학벌, 건강, 나이. 언제나 하나쯤은 부족했다. 하지만 그 열등감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뾰족하게 만들었다. 더 준비하게 했고, 더 배우게 했고, 더 단단해지게 했다.
나는 열등감을 없애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열등감과 함께 성장해 온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열등감에 눌린 사람이 아니라 열등감을 연료로 삼아 성장해 온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나이가 많고, 가장 버거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체력도, 여유도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시기가 처음은 아니다. 늘 부족했고 늘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해 왔다. 그때마다 나는 멈추는 대신 더 준비했고, 더 단단해지는 쪽을 선택해 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열등감은 여전히 내 곁에 있지만, 더 이상 나를 작게 만들지는 않는다. 대신 방향을 잡아주고, 속도를 조절하게 하며,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데려온다. 나는 여전히 비교 속에 있지만, 그 비교를 나를 깎아내리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갈고닦는 재료로 쓰고 있다.
나는 지금 가장 나이 많고 가장 힘든 위치에 서 있지만, 동시에 다시 한번 성장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열등감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도, 앞으로도 나를 움직이게 할 연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