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줄 알았는데, 치료받고있었다.

타국에서 만난 몽골친구

by sso

시드니 어학원에 다닌 지 8일째 되는 날이었다.
여러 문화와 낯선 언어 속에서 얼레벌레 일주일을 버티듯 보냈고, 그날은 처음으로 수업 중 ‘활동 시간’이 주어졌다. 교실 안에서는 저마다 비슷한 문화권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밝은 척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분주했다.



유창하지 않은 언어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파파고 번역기를 미리 켜 두고, 화면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뒤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 사람이세요? 반가워요.”



헉.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아주 예쁘고, 동시에 낯선 아이가 환하게 웃고 서 있었다. 한국 사람일 거라 짐작했지만, 아니었다. 알고 보니 몽골 사람이었다.




일부러 한국인이 많은 반을 피해서 왔던 터라, 그리고 정확히 8일 만에 듣는 한국어라서였을까. 그 짧은 한마디가 마치 학창 시절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가슴 깊숙이 반가웠다.


“한국어를 할 줄 아세요?”
“쪼금이요.”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저 ‘쪼금’이었는데, 그 언어 안에는 나를 향한 존중과 용기가 들어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말을 익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다른 문화를 기꺼이 품으려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라는 걸. 그날 이후로였다.

나의 시드니 생활은 더 이상 불안한 체류가 아니었다. 가장 안정적인 시간들이 되었고, 동시에 가장 재미있는 모험 같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같이 점심을 먹던 며칠 뒤, 어학원은 곧바로 크리스마스 연휴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는 분명 설레는 단어였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조금 허전했다. 이제 막 재미가 붙기 시작한 학원 생활, 이제야 서로 이름을 부르고 웃게 되었는데 모든 게 잠시 멈춰버리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워킹을 병행하는 아이들은 연휴 동안 각자의 일터로 흩어졌다.
짧게 쌓아 올린 관계들이 다시 흩어질 것 같아, 그게 조금 속상했다.


그때, 몽골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언니,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우리 동네 너무 예뻐요. 와서 힐링하고 가요.”





헉.
언어로 깊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알게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선뜻 손을 내민다고? 게다가 예비 남편과 함께 사는 집에 초대라니.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하나였다. 언빌리버블.

민폐가 아닐까, 조심스러움이 먼저 스쳤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놀라움과 감사함이었다.


나는 시드니에서 일부러 한국인 숙소를 피했다.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현지의 삶 속으로 초대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몽골인의 삶.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문화, 리듬, 집 안의 공기까지. 호기심 많은 나에게 이 초대는 그야말로 도파민이 샘솟는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는 그렇게, 외롭고 조용한 휴식이 아니라
낯선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가장 따뜻한 시작이 되었다.




그 몽골 친구에게는 김서현이라는, 너무 예쁜 이름이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 잠시 멈칫했다. 몽골 친구에게서 이렇게 단정하고 한국적인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알고 보니 그는 한국인 식당에서 1년 동안 워킹을 하며 지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한국어가 ‘쪼금’이 아니라, 마음을 건네기에 충분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 이름에는 시간이 담겨 있었고, 낯선 나라에서 스스로를 단단하게 지켜온 흔적이 묻어 있었다.



그 친구는 세련됐다. 내가 생각했던 몽골의 편견을 전체 다 깨주었다. 몽골 시내는 심지어 우리 나라와 비슷하고, 그 친구는 감각있고, 심지어 패셔니스타였다 모델 같다는 표현이 먼저 떠올랐지만, 단순히 외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말투와 태도,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몽골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쉽게 짐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디자인을 좋아하고, 또 잘하는 친구였다.

미적인 감각이 몸에 배어 있었고, 취향은 분명했지만 과하지 않았다. 그런 세련됨과 미적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나의 호감을 끌어당겼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각들이 있었다. 화장을 잘하고, 심지어 미술그림을 잘그치는 취미가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언제나 분명하지 않다고. 언어도, 국적도, 배경도 아닌 어떤 분위기 같은 것. 김서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몽골 친구는, 그렇게 나의 시드니 시간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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