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민이 사치처럼 느껴진 순간 , 언어가 닿지 못한 밤
1년이라는 워킹의 시간 동안, 내가 한국말을 듣고 이해하는 정도라면
그 친구는 분명 ‘언어 천재’가 틀림없었다. 단어만 아는 수준이 아니라, 뉘앙스를 알고 농담을 할 줄 알았다. 그건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감각이었다.
“언니!”
그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아무렇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가끔은 농담까지 섞어가며 말했는데, 그 말투가 어찌나 귀여운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조카가 옆에서 또박또박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조심스럽지만 자신감 있는 발음, 틀리지 않으려고 한 번 더 생각한 뒤 꺼내는 문장들. 그 성실함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나는 대화하는 내내 재미있었다.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오히려 그 서툼 덕분에 대화는 더 따뜻해졌고, 우리는 웃으며 더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친구와의 대화는 공부가 아니라 놀이 같았다.
낯선 나라에서 만난 낯선 언어가, 그렇게 나를 웃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조용히 저녁을 먹고, 와인을 한 잔씩 나눴다. 말이 많지 않은 밤이었다. 외국 친구들끼리 자주 한다는 게임, 우노를 하며 웃고 떠들다가—이상하게도—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인생이라는 단어 앞에서, 이유 없이 감정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 장면은 마음이 일렁일렁거린다. 웃고 있던 테이블 위에, 나의 눈물은 너무 솔직해서 숨길 수가 없었다.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친구가 어떤 삶을 지나왔는지를. 폭력적인 남편과의 결혼, 그리고 결국 이혼.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어린 시절. 그리고 몽골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비교적 이른 문화라,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미 다섯 살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
아들은 몽골에 있었다.
호주에는, 다행히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결혼을 앞둔 사랑하는 예비 남편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두고 떠나온 그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늘 불면증에 시달렸고, 수면제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 그 친구가 나를 늘 큰언니처럼 챙겼는지. 잠자리를 살펴주고, 요리를 해주고, 하루에도 스무 번 넘게 “언니, 괜찮아요?”라고 물어보던 이유를.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나를 케어하는 그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고.
그 답은 생각보다 분명했다.
그것은 성격도, 습관도 아닌
한 아이의 엄마였던 사람이 가진 모성애였다.
멀리 두고 온 아이를 향한 마음이, 낯선 타인의 하루를 살피는 방식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다 알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곁에 있어주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그 친구는 말했다.
중국에서 혼자 도망쳐 나와, 혼자 아이를 낳았다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숨을 죽이고 국경을 넘고,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출산을 감내하는 장면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각색된 서사가 아니라, 실제로 지나온 삶이었다.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선택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선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던 선택. 도망이라는 단어조차 사치로 느껴질 만큼 절박한 결정.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쌓였던 상처들, 직장에서 받은 마음의 병, 관계 속에서 생긴 염증들. 그것들을 떼어내기 위해 호주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내 고민들은 너무 쉽게 부서졌다.
그 친구 앞에서 나의 상처는
너무 작고, 너무 소소해서
마치 꺼내놓는 것조차 민망한 점 하나처럼 느껴졌다.
물론 고통에는 크기가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어떤 삶 앞에서는, 그 말이 잠시 힘을 잃는다. 아이를 안고 국경을 넘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는, 나의 괴로움을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침묵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엄마라는 이름은 국경을 넘는다는 것을. 언어도, 나라 이름도, 제도도 넘어서—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밀어내는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힘은,
낯선 타인의 하루를 살피고
“언니, 괜찮아요?”라는 말을 수십 번 건네는 방식으로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치유받으러 왔다고 믿었던 내가
오히려 많이 배웠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삶에는 도망칠 수 있는 상처와, 도망칠 수 없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 밤 이후로
나의 호주는 단순한 회복의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