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공허함을 달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허.
지독히도 가슴을 후벼 파는 최악의 감정.
나는 인생의 절반을 이 공허라는 감정과 함께 살아왔다.
그렇기에 안다.
가슴 깊숙이 틀어박힌 이 가시는 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상처라는 걸.
매일 밤 나는 충동에 시달린다.
너무나 아프고 슬퍼서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고치려 노력해 봤지만 허사였다.
가시는 뽑힐 기미가 없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자리를 지켰다.
처음엔 죽을 것처럼 아팠던 고통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졌다.
그런 말이 있다.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펄쩍 뛰어오르지만, 찬 물에 담가놓은 채 서서히 물을 달구면 인지조차 못하고 익어버린다는.
나는 그렇게 내가 망가지는 것도 모른 채 공허라는 감정에 잡아 먹혔다.
이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평생을 같이 살아온 감정인데 낯설게 느껴질 리가 있나.
나는 이 아픔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건 정말로 우물 안 개구리가 할 만한 생각이었다.
아픔은 당연한 게 아니다.
아프다는 건 어딘가가 고장 났다는 얘기이며, 그건 필시 치료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병을 방치했다.
그렇게 우울증이란 병을 키웠고, 자신을 소홀히 했으며, 부서지기 직전까지 몰린 것도 모른 채 하루를 살아갔다.
산송장이라는 말이 어째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지금의 나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까.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게 아니다.
죽어있지 않으나 죽어있는 상태다.
산송장.
지금의 내게 적합한 말이었다.
공허는 나를 그렇게 서서히 죽였다.
죽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까맣게 타들어간 마음은 탄 내만 가득하다.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 감정들이 언뜻 느껴지긴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나는 공허에 잡아 먹혔다.
내게 남은 건 공허함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