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by 사해

우리는 모두 삶이란 여정의 종착지를 알고 있다.


죽음.

그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


이 세상에 영원히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역사적으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그걸 탐했던, 원했던 이들도 결국 운명을 거역하진 못했다.


순환의 법칙에 따라 인간은 탄생하고, 또한 죽음을 맞이한다.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그걸 알게 되니 참 이상했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대단한 명예를 쟁취해도 결국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다. 그걸 모르는 인간은 아직 배우지 못한 어린 아이들 밖에 없다. 성인이 된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걸 전부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간다.


인간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죽음이 가깝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하루 아침에 죽지는 않으니, 아득히 먼 죽음을 시시때때로 떠올리는 것도 이상한 거겠지. 자살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이 언제 죽을 지 알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처음엔 그랬다. 인간이 언젠가 죽는다고? 무서웠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그 뒤엔 궁금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사후 세계가 정말 실존하는 걸까. 영혼은 존재할까? 그럼 죽은 뒤엔 귀신이 되는 걸까?


고민은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직접 경험할 방법은 한 번 밖에 없는데,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게 되니까.


그래서 인가. 죽고 싶을 때가 가끔 있었다.

아니, 은근히 많았던 거 같다.


예전부터 나는 사는 게 힘들었다. 환경적인 요인도 있고,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을 맞이하는 게 기대되지 않고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 또 이렇게 내일을 살아야 되는 구나. 그땐 정말 사는 게 지겨웠다.


힘들면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 굴레를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죽는 거였다.


방법도 찾아봤었다. 아픈 건 또 싫어서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방법 같은 것들을 검색하고 그랬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증상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다고 해야 되나. 눈을 마주치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전화하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정작 시도해본 적은 없다. 주사 맞는 것도 싫어하는 인간이 그럴 용기가 있었겠나. 사는 것보단 죽는 게 더 무서웠다. 사실 죽고 싶지는 않았던 거 같다. 단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겠지.


뭐, 그땐 그랬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아마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 자연사를 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간다.

열심히 사는 게 죽도록 싫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나은 거 같아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 중이다.

뭐가 됐든 어떻게 되겠지 라는 마인드로 사니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거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 장하다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버텨준 것만으로 반은 성공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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