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카페에서 만난 그
짝사랑의 힘
"저, 애견카페 이번 달만 하고 그만둘 거예요. 그동안 저랑 대화도 많이 해주시고 감사해요."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걸까. 서른이 넘었는데 첫눈에 반할 수 있나. 나는 애견카페에서 그를 처음 보고 생각했다. 이게 현실에 있을 법한 외모일까. 정말 잘생겼다. 길고 쌍꺼풀 없는 눈매, 작은 얼굴, 높은 콧날, 구릿빛 피부. 내 스타일 그 자체의 남자. 그는 심지어 젊고 착하고 겸손하며, 요즘 사람 같지 않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유행하는 옷 대신 늘 같은 실용적인 옷만 골라 입는 사람이었다.
그와 연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라도 한번 해보려고 3개월간 정말 자주 방문했다. 내가 누군가와 이렇게 먼저 말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가을이 겨울이 될 때까지, 한 계절이 바뀔 때까지.
나는 그동안 멋을 잘 내지 않았다. 멋은 냈다. 단지 그게 자발적으로, 원해서, 그냥 내 만족으로, 내 최향으로 꾸민 적은 없었다. 그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아니 매일 씻고 계절에 맞춰서 옷을 산다는 게 너무 지쳤다. 그러나 회사에 다닐 때나 나만의 '회사원'이라는 환상 때문에 예쁘게 차려입었다. 그 회사는 사실 그런 옷이 필요 없었는데 말이다. 그 외에는 굳이 남들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고 멋을 안 내는 게 멋있는 거지. 왜 다들 저렇게 꾸미고 난리일까.
꾸미는 것조차 나에게는 '가능성'이나 '분노'가 트리거가 되었다. 날씬하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꾸몄고, 폭식으로 살이 찌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꾸미지 않았다. 심지어 신경을 써야 하는 순간에도 그냥 신경을 쓰지 않은 적도 많았다.‘모 아니면 도’ 그런마인드로 평생을 살았다. ‘의미가 있는가 아닌가’ 그게 더 중요했다. '내가 굳이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하나? 왜 내가?' 그리고 유행이 바뀌고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살이 찌고 박시한 옷들이 유행하게 되자, '역시 세상은 나를 위주로 돌아가네. 내 생각이 옳았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가 그만두어서 3개월간 그를 보겠다는 나의 집착과 강박이 끝이 날 수 있었다. 아니었더라면 여전히 그를 보러 카페를 들락거렸을지도 모른다. 강아지 핑계를 대며 많이도 방문했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하지만 조울증에 걸린 나라는 사람이 밥벌이가 아닌 어딘가를 자발적으로 꾸준히 3개월 이상 다녔다는 것은 매우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이는 나에게 엄청나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나는 독서실도, 학원도, 심지어 인간관계도 3개월 이상 유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단발적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일단 그냥 금방 지루해졌다. 아무도 보고 싶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삶 전체에도 활력을 주었다. 뭔가를 구체적으로 하고 싶고 뭔가가 재밌는, 진정한 자신감이 생기고 살아있다는 감정이 생겼다. 다른 사람과 연해할 때나 짝사랑할 때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학교나 회사는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며 우울증일 때는 지각을 하고, 아니 일부러 지각을 하고 싶었다. 물론 회사에서는 지각을 하지 않았다. 지각을 해도 나는 괜찮다는 마인드가 아니라, 나는 애초에 지각을 해도 되는 존재라는 마인드였다.
독서실이나 학원 역시 매일 가지 않아도 혼자서 잘 해낼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살았다. 그냥 그렇게 꿈만 꾸고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상상만 했다. 정작 혼자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성실한 애들은 정말 노잼이야.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 같아. 공부를 모르는 건 바로 나였다.
취미 역시 오래갈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없었을지도. 나는 항상 한방을 꿈꿨고, 우연이라는 기회가 내 운명을 바꾸어줄 거라고 기대했다.
의사가 말한 꾸준함이란 그런 걸까. 의사 역시 내가 애견카페에 자주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거기 사람들과 친해져서 좋다고 하는 건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 같았다.
혼자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오고, 첫 번째 방콕 여행도 성공적으로 끝낸 나는 완벽하게 도파민에 절여져 있었다. 여전히 그때와 같은 쾌락을 찾고 싶었지만 몸은 전혀 의욕이 없었다.
사실 의사는 연달아서 두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것에 다소 걱정했다. 담당의는 항상 내 에너지를 걱정하며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행 블로거나 뭐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은 땡처리 항공권 있으면 막 떠나던데 뭐가 문제야?'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저는 이미 충분히 쉬고 있다니까요?(우울할 때) 그런데 남들은 저만큼 다른 것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에너지가 넘칠 때 뭘 해야죠! 에너지를 아끼라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이런 뉘앙스로 의사에게 따져 물었다.
의사는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수능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흘려들었다. 듣고 싶었지만 사실 애초에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난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말을 걸려들었다. 사실은 잘 듣고 싶었는데도. 그냥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나만의 결론을 내서 거기에 맞는 말만 들었다.
“꾸준히 뭔가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내 담당의는 항상 꾸준함을 이야기했다. 정말 지겨운 말이었다. 나는 꾸준히 강아지를 잘 챙기고 산책을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것도 좋다고 했지만, 나는 그때 에너지가 과잉된 조증 상태였기에 찝찝했다. '도대체 뭘 얼마나 더 꾸준히 해야 해? 강아지 산책이 뭐 대단하다고? 뭔가 다른 걸 해야 하나?' 담당의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만큼 나는 꾸준히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발적으로, 그냥 재미로라도.
그 이야기를 생각할수록 내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그래, 난 강아지에게 뭘 해준 적이 없어. 그냥 밥이나 간식을 주고 산책이나 시켰지. 내가 강아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나?'
그래서 일단 강아지를 데리고 근처 애견카페에 방문했다. 날은 덥고 강아지는 전혀 협조를 안 해주었지만 나는 강행했다. 강아지는 보기 좋게 애견카페 적응에 실패했다.
원래 나라면 바로 포기했을 것이다. '역시 우리 강아지는 애견카페를 싫어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나는 조울증을 치료해야 했기에 이번에도 포기할 수 없었고, 사회성이 안 좋은 나의 강아지에게 나를 투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자주 갈 수 있을 법한 애견카페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날, 앞에서 말한 이상형을 만나게 된다.
그를 매일 보러 가는 게 기뻤고 그와 대화하는 게 즐거웠다. '이렇게 내가 사람을 좋아했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랬구나. 정말 그를 사랑했던 것 같다.'
매일 옷을 사고 갈아입고 화장하는 것이 이렇게 보람차고 좋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그랬구나.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 덕분에 나는 한 곳만 다니면 너무 지겨워서 참지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 3개월 동안 뭔가 꾸준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주기적으로 3개월간 같은 카페를 다녔다.
그동안 나는 사람들의 단점을 많이 보기도 했다. 아니, 그냥 단점이 눈에 콕콕 들어와서 보였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콘텐츠가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었다. 그들이 나에게 필요하냐 아니냐, 그들의 '책 표지'가 좋으냐만 중요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사랑에 휘둘리는 여자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변화시켰다. 그도 분명 멋진 사람이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와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가 나를 꼭 좋아하지 않아도 화나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사랑의 힘은 위대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너무 화가 나고 분노했다. '도대체 내가 부족한 게 뭔데?'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남자를 못 다루어서, 매력이 없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라고 자책했다. 물론 이런 자책은 사랑에 실패한 누구나 하겠지만. 나는 상상 그 이상으로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내 자존심과 세계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그 뒤에는 엄청난 무력감이 왔다.
즉 이것은 단순한 질투나 적개심이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단전에서부터 엄청난 분노로 휩싸이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있으면 오히려 더 꾸미는 것에 집착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너무 지루했고 힘들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굳이 그래야 할까. 그런 생각.
그랬던 나는 애견카페의 그를 보고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사랑이 있다고.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나만 내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다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살아왔다고. 안 되는 사랑도 있으며, 모두 다 나처럼 화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고.
내가 드라마 서브 여주인공들에 몰입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서브가 정상 아니야?'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내 뜻대로 안 되면 단전에서부터 얼굴까지 열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몸의 증거는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시작의 신호로 항상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의 엄청난 성실함과 꾸준함, 친절함은 나를 감동시켰다. '내가 그의 외모면 저렇게 할까? 내가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에게서 꾸준함과 성실함, 타인에 대한 다정함이 뭔지 배웠다. 그는 나에게 엄청난 자기반성과 치유, 자신감, 그리고 깨달음을 준 사람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시험을 준비할 용기도 없었을 것이고(물론 그 시험은 잘 안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예전같이 무기력해지지않았다.), 결국 그 실패 때문에 그때 나고야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고야에서의 그를 만났더라도 나의 자신감 없어 보이는 태도나 아무렇게하고 다니는 외적 모습에 그가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의 단점을 먼저 봐서 그를 완전히 쳐내서 연애가 시작도 안 되었을 것이다.
사랑이 가면 또 다른 사랑이 오고, 사랑이야말로 조울증의 위대한 치료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