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공예 비엔날레

소진된 부모를 예술로 채우는 시간

by 미리상상

두 아이와 함께 직지의 탄생지이자 세계 공예 중심지, 청주의 문화제조창에서 열린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에 다녀왔다. 벌써 17만 관람객을 돌파한 이 행사는 청주시가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탄생지임을 알리고 청주를 산업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1999년 시작되어 격년으로 열리고 있다. 71개국 1300여명의 작가가 만든 2500여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 비엔날레가 공예 분야 세계 최대규모의 행사라고 해서 가기 전부터 설레는 마음이 컸다. 올해의 주제는 바로 ‘세상짓기 Re_Crafting Tomorrow’였다.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소재로 재해석한 작가들의 표현력이 놀랍다.


올해의 주빈국은 태국이라고 한다. 태국관에 입장하기 전에 나눠주는 태국 꽃 향이 나는 종이반지를 끼고 향을 맡으며 관람하니 현지에 온 듯한 느낌이 더 배가되는 듯 했다.

버려진 옷을 재활용하여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다.

어쩐지 경건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이 전시물은 주변을 따라 걷도록 동선을 의도한 것 같다. 작품의 작가 카이무라이는 본래 패션 및 의류 디자인 쪽에서 일했지만, 점차 자연염료 실험과 손의 표현 가능성에 매료되어 예술 활동으로 전향했다고 한다.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니 재료(천, 인디고)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붓질이 시작되는 순간까지 반복과 명상성이 깊게 개입된다고 한다. 그는 종종 작업이 시작되면 마음의 제어력보다 손이 먼저 움직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디고를 단순한 물감이 아니라 “영적인 안료 (sacred pigment)”라 여기며, 신성(神性)과 자연의 조화를 연결하는 매개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작업에서 감정의 긴장과 평온이 공존하길 원하고, 붓터치나 마킹이 그 순간 작가의 내면 상태를 반영한다고 강조하면서 그의 작품은 특정 의도에 의해 시작되기보다, 작업 과정 중 우발적이고 직관적인 흐름에 의해 태어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내 모든 기도에 대한 답은 내가 결코 묻지 않았던 질문 속에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구가 아닌가 한다. 인간이 가진 인지의 한계를 넘어선 신의 인도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정한 해답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무의식 속 질문에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되었다.

해설사 분의 설명에 따르면 거의 현 상태를 유지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공예품도 많았다. 작가들이 자신이 의도한 바를 실물로 재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듣고서야 비로소 느껴졌다.

두 아이와 함께 하다보니 피곤해하는 아이 안아주고 간식도 먹여서 달래가며 전시를 관람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예 체험도 많아서 좋았다. '피어리'라는 체험형 디지털 VR캐릭터를 랜덤뽑기해서 모루 인형 만들듯 커스터마이징하여 만드는 체험도 있었고 직접 불꽃으로 유리를 녹여 목걸이를 만드는 유리 공예와 도자기 위에 그림 그리기, 클레이 놀이, 부직포를 이용한 세상에 하나뿐인 내 옷 만들기, 종이로 마리오네트 인형 만들기를 특히 좋아했다. 공예품을 파는 오픈 마켓에서 '직지'라고 쓰여진 커피가루를 압착해 만든 기념품도 구매했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을 하는 도구가 들어있었는데 완성된 후에도 커피향이 나 좋았다. 다음 날 방문한 고인쇄박물관에서 만난 직지에 더 관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사진을 돌아보니 일상 속에서 하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호기심과 흥분으로 빛난다. 공예품이 가득 전시된 대형 카페에서 들리는 재즈 라이브를 들으며 육아와 업무로 소진된 내 마음을 재충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Re_Crafting Tomorrow'라는 비엔날레의 주제처럼 아이들 역시 손끝으로 내일을 빚어가는 작가들을 닮아가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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