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환경에게 몇 급일까?
언제부터인가 햇빛이 진짜가 아닌 듯하다. 뜨거워지는 강렬함은 더해지는데, 햇빛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능력은 떨어진 느낌이랄까.
내 기억 속 여름날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란 하늘과 날카롭게 내리쬐는 햇살이었는데, 지금의 햇살은 뭔가 흐리멍덩하다. 눈부시게 화려하지만 속이 빈, 값이 저렴한 가품 같다.
작은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는 나는 햇빛 욕심이 많다. 식물에게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주고 싶어서 매일 이리저리 화분을 옮긴다. 햇빛을 많이 받은 식물들은 꽃도 많이 피고, 꽃마디가 짧고 튼튼해 보기에도 예쁘고, 잎과 꽃의 색도 원래의 빛깔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바깥에서 키운 꽃들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다. 잎에서는 끈적한 먼지가 느껴지고, 줄기의 마디가 길어지고, 베란다 식물 등 안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덜 깨끗하다. 분명히 뭔가가 달라진 것이다.
최근 몇 년 계속적인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보았다. 그렇지만 결국 나 혼자만의 힘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대기의 오염 물질이 햇빛의 중요한 영양 성분인 광질을 흩어 뜨리면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생명에겐 중요한 빛의 스펙트럼 중 푸른빛과 붉은빛이 제대로 닿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햇빛을 변하게 한 것이다. 환경오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나 혼자만으로는 어쩔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낀다.
사람도 이런 환경에서 사는데 식물이 뭐 대수겠냐마는 그래도 모르는 사이에 당하는 느낌은 기분이 좋지 않다. 이왕에 뜨거울 거면 제대로 뜨거워서 곡식을 익게 하고, 과일을 맛나게 하고, 사람을 살리면 좋겠지만, 그건 햇빛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왔을 뿐, 달라진 건 우리 지구인데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놓치는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들이 불면증을 호소하고, 영양이 풍부하지 않은 곡식을 먹고, 우울감과 면역력 저하로 쉽게 병드는 이유도 우리가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햇빛이 이전처럼 건강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공기도 마찬가지고.
소박한 마음으로는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속상한데,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쓰리다. 무섭기도 하다. 오래전 공상 과학 영화처럼 돔 속에서 생활하는 창백한 미래인이 되는 것이 정말 현실이 되는 건 아닐까.
빛은 있지만 빛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더 늦기 전에, 완전하게 그 빛을 잃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할 텐데. 그 답을 알고 있음에도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나약해진 우리가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의 나 역시 또렷하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공기청정기가 돌려준 공기를 마시며 가짜 햇빛을 걱정하면서도 에어컨을 켜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