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삶도 아프다

내가 없는 하루에도 마음은 남아 있었다.

by 주소영

나는 스물다섯으로 돌아왔고

아이들도 남편도 보리도 코코 루루도 도마뱀도 없었다.


누군가의 손길로 정리된 책들과

조용한 열람실 그리고

대출대 옆에 놓인 낡은 바코드 리더기.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하루.

누가 밥 달라고 뭐 하나고 묻는 사람도 없는 하루였다.


정말 오랜만에

내 이름을 아무도 부르지 않는 하루를 맞았다.

누가 밥 달라고 부르지도 않고

어디 갔냐고, 뭐 하나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온종일 자유롭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살아낸 복잡한 삶들이

지워진 이 고요함 가운데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늘 아침

누가 도서관 문을 열었는지도 모른 채

나는 책상 옆 구석에 앉아 있었다.


아이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저 들어가도 돼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서선생님이 아니니까.

지금 나는 누구의 선생님도 아니니까.


없는 삶도 아프다.

아무도 없는 이 하루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들춰냈다.


나는 잊은 적 없는데

세상은 너무 쉽게 나를 지워버렸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이 하루에

나는 점점 투명해졌다.


창밖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아주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선생님도 아닌 내가

그 아이의 눈을 마주치면

그 따뜻한 눈빛에 무너질까 봐.

내가 사라졌다는 걸 먼저 알아차릴까 봐.


아무 일 없다는 듯 웃는 그 얼굴 앞에서

나만 낡은 풍경처럼 남아 있는건 아닐까 봐.


그래서 나는

그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그 아이의 목소리를 따라갔다.


사라지고 싶었던 내가

이토록 누군가의 눈빛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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