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도 나는 나였다

나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by 주소영

창밖에서 들려오던 그 아이의 목소리를 따라 어느새 도서관 안으로 걸어 들어와 있었다.

사라지고 싶었던 마음은 여전했지만 문득 멈춰 선 나를 이 조용한 공간이 받아주고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서가의 높이도 책 냄새도 햇빛이 들이치는 각도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모든 게 낯설었다.

아니, 낯설어진 건 공간이 아니라 나였다.

스물다섯의 나는 이런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긴장을 놓지 못했고 작은 일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때의 나는 너무 작고 너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조심스러움을 흘려버린 채 돌아와 있었다.

돌아온 건 풍경이 아니라 나였다.

그리고 이번엔 다르지 않은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실수할까 봐 숨죽이던 마음도 없었다.

대신 "그냥 견디면 된다"는 익숙한 체념이 스며 있었다.


해를 반복하며 몸에 새겨진 살아내는 방식은 시간조차 이겨냈다.


아이 하나가 도서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조용히 책을 빌리겠다는 듯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익숙한 인사였다. 아이는 대출증을 내밀었고 나는 책을 대출해 줬다.

그저 책 한 권을 조용히 건네고 작게 웃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돌아가도 나는 나였다.

말투도 걸음도 웃는 방식도.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만은 여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도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애써 찾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였고 나로서 이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하루는 조금 덜 고단했다.

그리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날 나는 아주 조금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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