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이탈리아베낭여행
‘걱정마, 삶에 경험이 부족한 젊은 애들도 혼자서 세계여행 잘 하고 다니는데....?’
안식년을 답답하게 보내는 아내를 측은하게 생각해 일단 동의는 해줬지만 소매치기가 극성이라는 뉴스를 접한게 영 찝찝한지 최근 들어 슬슬 걱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남편. 나는 그런 남편을 다독이며 요즘도 열심히 인터넷에 코를 박고 여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가서 부딪쳐봐야 알겠지만 여행을 며칠 앞둔 지금 거의 90% 정도는 준비가 된듯하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도난방지용품만 도착하면 그야말로 짐만 싸면 된다.
이렇게 준비가 되기까지 나는 실로 개미지옥을 맛보았다. 까도 까도 양파처럼 나오는, 실로 많은 알아야 할 것들에 새하얗게 질려버리면서 여행을 결심한 것이 슬슬 후회가 될 지경이 되기도 했다. 알아도 알아도 더 알것이 많은, 양파같은 이탈리아 정보 속에서 나는 거의 넉다운이 될 지경이 되어서야 기본적인 일정 수립과 예약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여보, 이러다 여행 떠나기도 전에 지쳐서 나가 떨어지겠어’ 하고 남편에게 하소연 할 지경이었으니....
매일같이 업데이트되는 아내의 이탈리아 정보 브리핑을 듣던 남편 입에서 급기야 ‘개미지옥 같네’ 하는 표현이 터져나왔다. 내게 전해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뭐가 그리 복잡하냐는 것이었다. 그 한 예로 숙소 못지않게 중요한 기차표 예매 부터가 결정장애를 촉발할 지경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은 주로 기차를 이용한 이동이 주류이다. 잘 보존된 고대 유적지가 많은 이탈리아 도시의 특성상 렌트카를 빌려 운전하기도, 주차하기도 만만치 않은데다 비교적 철도망이 잘 되어 있어 도시간 이동을 열차를 통해 하는 것이 대세인 듯한데, 문제는 요금체계가 너무 다양해서 결정장애가 올 지경이었다.
위 캡쳐화면은 이탈리아 기차예매 대표 어플인 ‘트랜잇(Trenit!)’ 캡쳐화면이다. 이탈리아 거주 여행가이드인 '이태리부부' 유튜버를 통해 이 앱을 알게 된후 나는 어플을 바로 다운받고 기차 예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로 도시간 이름과 날짜 등을 입력하면 편리하게도 그날의 가능한 일정이 나온다. 근데 보면 시간대별로 금액차가 꽤 크다. 캡쳐한 화면에서는 비교적 덜하지만 다른 도시 예약에서는 가격차가 무척 컸다. 황금시간대가 가장 비싼 것도 아니고, 도시간 경유를 하며 장시간 가는 루트가 오히려 비싸기도 하고... 남다른 추론의 촉수를 자랑하는 나지만 사실 지금도 알쏭달쏭하다.
아무튼 그중 하나의 옵션을 선택해 클릭해 들어가면 아래 화면처럼 무려 수십가지 금액대의 조합이 튀어나온다. 설명을 읽어보니 환불이 가능한 경우, 환불은 불가능하고 일정 변경만 1회 가능한 경우, 그리고 둘다 안되는 경우를 기본으로 한 베이스, 이코노미, 슈퍼 이코노미... 등 가로축의 요금 구분에 이어 세로축에는 기차칸 등급별로 스탠다드부터 이그제크티브까지 무려 6개의 옵션이 있었다. 헐~ 무슨 설국열차도 아니고.... 같은 기차안에서 무엇이 이리도 다양한지.... 이 가로세로축의 조합으로 무려 수십개의 요금조합이 나온 것이다. 알고보니 이탈리아 기차는 맨앞 이크제크티브와 프리미엄이 섞인 칸과 이어지는 프리미엄칸 몇개, 그리고 스탠다드칸 몇량이 붙어있는 식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극히 일부가 선택하는 우등석 옵션 말고는 모두 똑같은 금액체계인데 이 나라는 어찌 그리 같은 기차내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를 두어 사람을 고민하게 만드는지...! 보통은 가장 싼 금액의 조합이 환불 불가의 가장 안좋은 보통석 좌석 티켓인데, 이것도 종종 프로모션이 있기에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운좋게도 프로모션가격이 뜬 경우는 별도로 하단 등에 오픈이 되어있어 보통석보다 저렴하게 프리미엄 좌석을 앉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열차칸을 선택을 하고 나면 선택한 열차칸 내에서도 특정 좌석을 선택할수 있는데 문제는 좀 좋은 좌석은 2유로나 3유로를 더 내야했다. 좀더 좋은 좌석을 선택할 것인지 그냥 보통 좌석을 앉을 것인지 같은 칸 내에서도 고민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가 순방향이고 역방향인지도 몹시 헤깔리는 열차모양도 있었다.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의 예약과정은 매순간이 현명한 결정을 요했다. 그때마다 유튜브나 인터넷 블로그 글들을 열심히 검색해 정보를 파악한후 결정하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가서 부딪혀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2개월 전에 예약시스템이 오픈되는 이탈리아 기차의 특성상 시간이 갈수록 저가의 옵션은 모두 동이 나고 고가의 옵션만 남는다고 하니 이렇게 미리 예약을 안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 트랜잇 앱은 비교적 대도시 간을 왕래하는 고속철, 즉 우리나라 ktx격인 '트랜이탈리아(Tranitalia)와 Srt격인 '이딸로(Italo)'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기차만 예약 가능하므로 내가 가고자 하는 마테라나 알베르벨로, 오르티세이와 같은 소도시들은 연결되지 않았다. 해서 비교적 열악한 기차인 사철이나 버스들을 중개하는 다른 예약 사이트(myCicero)에서 예약해야 하는데 어떤 것은 시간이나 좌석표 없이 날짜만 지정해주는 식의 티켓을 발행해서 막상 당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좌석이 있을지 확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10여개 도시를 여행할 계획인 나로서는 여행일정과 이동 동선을 감안해 기차표를 예매하는 것도 일이었는데 이렇게 여행루트와 가격대를 감안해 티켓을 예약하는 것도 정말 일이었다.
그리고 어플로 예약할때 도시마다 기차역이 두 개 이상인 곳이 많아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숙소를 보통 그 도시 메인 역 주변으로 예약했기에 정확히 역에 도착하는게 필요한데, 나같은 여행자를 위한 역은 보통 영어의 센트럴(central)이라 할수 있는 '첸트랄레(centrale)'가 붙은 역이 메인 중앙역이어서 이를 잘 확인하고 예약해야 한다.
각 도시의 첸트랄레 주변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걸어서 이동할만한 곳을 검색해 호텔을 예약하는데 예약 역시도 많은 외국 예약사이트가 있어서 어떤 것으로 해야 좀더 나은지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내 경우 비교적 장기 여행에 잦은 이동을 해야 하기에 사실 예약을 하는 중에도 일정이 몹시 헤깔렸다. 따라서 일목요연하게 관리되는 어플이 필요했고 여러 가지 검색하고 비교하기에 좋게 설계된 부킹에서 모든 호텔을 예약했다. 이따금 부킹에서 검색이 안되는 욕심나는 호텔이 다른 예약사이트에 있었지만 내 두뇌건강을 위해 그냥 부킹에서 총 12개 호텔을 예약했다. 부킹앱을 열면 내 호텔 예약일정이 날짜순으로 쭉 뜬다.
좀 위험하기도 하다는 로마의 떼르미니역 근처의 호텔을 잡을 때는 구글어스를 통해 주변을 스케닝한후 합리적인 가격대의 호텔을 선택해야 했다. 도착한 날 밤 9시경에 호텔에 들어가기 때문에 더 그랬다. 알고보니 한국발 이탈리아 비행기가 대부분 로마에 밤에 도착한다. 따라서 밤에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찾아가는게 영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해서 보통 도시의 중앙역 근처 반경 몇백미터 이내의 호텔 중에서 호텔 홍보사진과 소개글. 주변 관광지 접근성, 별점과 후기들을 종합해 가성비를 감안한 호텔을 결정한 후 또다시 여행 2주 전까지 무료 취소 가능한 옵션으로 할 것인지, 환불 불가 옵션으로 예약할 것인지를 따져서 예약해야 했다. 환불 불가 옵션이 훨씬 싼 것은 물론이다. 이탈리아는 매번 이렇게 쓸데 없이 너무 많은 선택의 기회를 줘서 정말 성가신 예약 과정을 경험하게 했다.
기차표의 경우는 환불불가의 가장 싼 옵션이면서 좌석은 되도록 프리미엄인 것으로 모두 예약을 했고, 호텔은 대부분 여행 2주전 까지 무료 취소가능한 옵션으로 예약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직까진 잘 한 일이었다. 까도까도 양파같이 알아야 할게 너무 많은 이탈리아 정보를 습득하는 날이 거듭될수록 여행루트를 변경하거나 호텔 위치를 변경할 일이 생겼는데 이때 다행히 무료 취소가능한 옵션을 선택해서 돈 낭비 없이 취소와 재예약을 진행했다. 기차표는 환불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금액차가 너무 커서 하는 수없이 대부분 환불 불가의 옵션을 선택했고 좌석은 금액 차이가 5유로 정도로 미미할 경우 비교적 좋은 좌석인 프리미엄급을 선택했다. 프리미엄 좌석은 가로로 세명이 앉을 수 있어 보다 쾌적하며 음료와 간식까지 제공한다고 하니 혼자서 여행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몇 유로 더 내고 이 옵션을 선택하는게 최선으로 보였다. 이외에도 세부적으로 관광할 일정을 계획하자니 도시별 통합패스를 구입할 것인지, 아니면 현지에서 1회 구간권을 이용해 지하철을 이용할 것인지, 버스나 배편을 이용할 것인지.... 등 수많은 서칭과 선택의 미로에서 헤매여야 했다.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모든 길은 구글맵으로 통한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었다. 나는 휴대폰 앱과 인터넷 예매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하며 구글이라는 회사의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구글이 가진 기술력은 대단했다. 이 구글맵만 있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세계 어느 나라도 여행할만 해보였다. 구글맵은 세계 어느 곳이건 찾아가는 것도, 호텔을 정하는 것도, 현지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교통을 찾는 것도 가능하게 해준다. 여행 유튜버들도 구글맵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표현을 자주 언급하는 것을 보면 구글맵이 제시한 세상은 신세계처럼 보인다.
아~ 이렇게 피곤해도 여행은 내게 설레는 무엇이다. 준비는 그만하고 얼른 로마로 날아가 화려한 로마의 밤거리를 걸으며 철학자처럼, 예술가처럼 사색하고 싶다!
50대 중반이지만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아니 젊다. 꿈꾸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젊은이이고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