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지성 Sep 20. 2022

중년, 혼자서 배낭여행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기

2022년 9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너무도 상투적인 말이지만 나이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더니 정말로 세월 참 빠르다! 특히 올해는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해라서 그런지 이렇게 9개월이 훌쩍 간 것이 아쉬움을 넘어 조바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올해는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안식년의 해이다. 일년동안 강의를 하지 않고 연구만 하면 되는 삶인데, 이런 은혜로운 시간이 몇 달 남지 않은 것이다. 원래는 유럽에 교환교수로 나가고 싶었으나 작년초 코로나의 재확산 국면에서 도전도 하지 못하고 결국 국내연수가 되어버렸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온라인 강의로 2년을 보낸후 이어진 기간이라 3년째 지속되는 '비자발적 집순이'의 삶이 슬슬 답답하고 지겹기도 해서 엉덩이가 들썩이고 있었다. 


'이 귀중한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불안한 조바심이 임계점에 다다를 즈음, 나는 불현듯 훗날 남편과 함께 가려고 미루어두었던 유럽 배낭여행을 지금 혼자서라도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렇게 나는 덜컥 3주후 출발하는 이탈리아 로마행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한달간의 대장정의 여행 준비를 시작한지 보름이 흘렀다. 며칠 후면 나는 로마의 골목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실로 오랜만의 혼자 여행이다. 다시는 혼자서 여행 가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생각보다 길게 여행을 떠나게 됐다. 사실 내게 혼자 하는 여행은 그리 아름답거나 추천할만한 의미는 아니다. 그 이유는 이미 너무 많이 해서 넌덜머리 날 정도이기에 그렇다. 허허벌판과도 같은 미국땅에서 삶에 지쳐 우울증이 엄습할 때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떠났던 혼자 여행은 때론 드물게 뭉클한 각성으로 보상을 해주기도 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혼여행은 또하나의 '외로움과의 사투의 여행 버전'일 뿐이었다.


사실 인간의 기억은 윤색되기 마련이기에 혼자의 여행이 실제 어땠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낯선 곳에서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영 쭈뼛거려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늘 맥도날드같은 페스트푸드점에서 그토록 싫어했던 햄버거를 대충 우걱우걱 씹다 말거나 여행지 마트에서 사온 냉동식품과 맥주캔을 사가지고 얼른 해지기 전에 눅눅한 호텔로 돌아와 긴긴 밤을 혼자 지냈던 기억들로 남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혼자만의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삽화로 남아있다. 


특히 대화도 잘되고 무엇이든 내가 하자는대로 해주는 남편을 만난 이후부터는 절대로 혼자서 여행을 가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유럽여행객이 급증하면서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페인 같은 관광대국이 소매치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나 유튜브 영상물들을 몇편 접한 어느 날은 ‘이럼에도 불구하고 내 돈 주고 이런 나라로 혼자 여행을 가야 하는가’ 하는 심각한 질문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가기도 전에 공포에 질려 심각하게 망설이던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글 수는 없다!’였다. 18년전 유학을 꿈꾸며 난생 처음 라라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했던 생각, ‘남들 다하는데 나라고 못할 바 없지’ 했던, 그 호기로운 기억을 상기하며 나는 그렇게 여행을 추진하고 출국일을 앞두고 있다. 로마에서 시작해 남부 소도시에서부터 중부, 북부 알프스까지를 두루 여행하고 한달후 돌아올 참이다. 


요즘 여행은 휴대폰을 통해 거의 모든게 가능하구나 하고 여실히 터득한 준비 경험들과 여행하며 떠오른 단상들을 때로 여기에 기록하려고 한다. 이미 준비과정에서부터 적잖은 시간을 소비하며 알게 된 많은 정보들도 혼자서 알고 말기엔 너무 아깝다. 훗날 여행가는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남겨놓으면 보람있을 듯하다는 생각에 되도록 기록을 해두려고 한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더욱이 중년에 여성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감상은 유튜브에 차고 넘치는 팔팔한 청춘들의 배낭여행기와는 사뭇 다른 무엇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설레임과 다소의 걱정이 교차되는 요즘의 시간들도 훗날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중년의 나혼자 이탈리아 배낭여행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여행은 행복의 종합선물세트이다. 여행은 먹고 걷고 말하고 활동하는 종합적인 행위이면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경험을 통해 훗날 두고 두고 추억할 '이야깃 거리'를 선물해주기에 최고의 행복추구행위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더 행복해지기 위해 9월의 마지막 주 여행을 떠난다. 

작가의 이전글 내겐 너무 극단의 두 어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