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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성 Feb 21. 2023

나의 40대! 모든 고뇌와 영광이 다 있었던...

학생에서 시작해 새직장, 연애, 결혼까지...

“지안, 이제 평안함에 이르렀는가?” 


전국의 아저씨들이 특히 좋아했다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마지막 장면에서 아저씨 이선균이 아이유를 보며 독백하듯 묻는 이 장면은 꽤 여운이 남는 장면이었다. 만약 운명의 신이 내게도 똑같이 “지성, 이제 평안함에 이르렀는가?” 하고 묻는다면 “예, 돌고 돌아 마침내 40대의 끄트머리에 와서야 도달했네요” 하고 대답할 듯하다.     


한 마디로 나의 40대는 평생 직장 찾기라는 해묵은 과제를 여전히 안고 시작해 박사과정 공부와 44세 평생 직장 찾기 성공, 그리고 소개팅과 연애의 실패, 겨울같은 우울의 세월을 거친 후 마침내 49살에 와서야 남편을 만나 꿈꿨던 행복한 삶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공부와 직장, 연애 실패와 결혼까지 모든 것이 콤비네이션이 된 10년이었다. 그 10년의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희노애락이 있을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40살! 불혹(不惑)이라고 했던가? 공자님이 어떤 일에도 혹하지 않은 나이라고 했던 이 말은 당시 40대가 된 내게 상처와 조급함만 주는 단어였다. 40이 됐어도 여전히 평생 직장을 못찾아 버둥대야 하다니...? 잘 될지 어떨지 모르는 불투명한 미래도 여전했고, 사실 20대에 가졌던 고민을 40대까지 갖고 간 셈이었다. 40이 되어도 이렇게 미완의 공부하는 삶을 사는 내게 어느날 다시 마주하게 된 불혹이라는 글귀는 마치 예전에 “헌 짚신짝도 짝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모욕적일 정도의 차원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미완의 준비 중인 삶을 살고 있는 당시로서는 꽤 아프고 초조한 용어였다. 지금도 많은 20대 청춘들은 '설마 40대는 이렇게 살지 않겠지?'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공자님도 지금 살고 계셨으면 이 말을 철회하셨을 것이다. 40은 사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면서도 온전히 홀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나이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기존 한국식 나이로 39세 여름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지금은 직장을 다니다 평생 교육처럼 나이 들어 진학을 하는 경우가 흔해졌는데 이때만해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한국도 아니고 미국으로 유학가는 사람 중에 이 나이에 유학 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나는 강남의 어학원에서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도 한국학생 그룹에서는 매우 특이한, 나이 많은 누님, 언니였다. 이미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한국학생들과는 10살 정도 차이가 났었다. 


이렇게 드라마틱했던 40대가 되기 직전 30대 후반의 삶도 여간 녹록지 않았다. 평생을 전주에서 우물안 개구리로만 살아온 내게 미국은 그 길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유학준비를 하다 대학원 은사님의 추천으로 미국 엘에이 노인복지기관 취업이 결정된후 나는 강남 고시원에서 짐을 싸고 전주로 내려와 사람들과 송별회를 하며 출국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하게 변호사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는 날이 몇 달째 이어지던 날 결국 취업비자가 거부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있던 내게 미국 변호사는 직무기술서(jop description)를 내가 직접 다시 써서 재도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이민국 서류 중의 한 부분으로 직무를 기술하는 부분이 있고 이를 변호사가 쓴 건데 엉터리로 써서 낸 것이었다. 유학준비 중단후 반년을 기다린 결과가 이렇게 참담하다는 사실에 좌절한 내게 또한번의 지푸라기 같은 유혹이었다. 다만 이 변호사 말만 믿었다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모든 것을 다시 챙긴다는 생각으로 미국 이민국에서 보낸 거절의 이유가 담긴 서류를 모두 검토한 후 직무기술서를 새로 다시 쓰는 것은 물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 직종 사회복지 석사출신의 미국인을 뽑기가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민국 심사자의 관점으로 봤을 때 외국인을 꼭 전문직 취업비자를 줘가며 데려와야 하느냐 하는 당위성이 충분히 소명돼야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는 단번에 승인이었다. "백지성씨는 미국 오면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하는 미국 변호사의 칭찬을 들으며 예상했던 시기보다 8개월이나 늦은 다음 해에야 로스 엔젤레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렇게 36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만 3년 동안 사회복지기관에서 일을 한 후 39살이 되어서야 원래 목표하던 박사과정에 진입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일하며 주경야독으로 공부한 이야기는 '흙수저가 50에 결혼할수 밖에 없는 이유2'에 나와있다. 


https://brunch.co.kr/@125e50d2f0d346c/17


그렇게 39살 여름에 꽤 좋은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사실 이전의 준비과정이 너무 힘들었기에 생각보다는 쉽게 느껴졌다. 적어도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편안했으니... 항상 영어를 못해 스트레스였지만 그럭저럭 성실과 통찰력으로 극복해나갔다. 그러나 역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난관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지도교수님이 남편도 위중한 암수술을 하고 자신도 피부암에 걸려 갑자기 1년을 휴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른 교수님을 물색해 지도교수를 교체했지만 이 교수님 역시도 한학기만에 부친이 대수술을 하는 일이 발생해 역시 한학기 휴직을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남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않는 일을 두번이나 연속으로 겪다니... 특히 지도교수가 전혀 펀드가 없어 남은 학기 논문학점과 생활비를 충당할 돈도 없다는 것도 당면한 큰 문제였다. 


당시 우리 학교는 박사과정생에게 2년 동안만 수업료와 생활비를 지원해주기에 3학년부터는 지도교수나 학교 연구프로젝트에 속해서 충당해야 하는 구조라서 펀드가 많은 지도교수를 만나느냐가 너무 중요했다. 그런데 가장 돈이 필요한 내게 이런 불운이 온 것이었다. 정말 위기였다.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돈이 없다니...! '돈복은 타고 나야 하는 것인가!' 좌절하면서 며칠을 잠못자고 뒤척였다.


이후 다행히 작은 연구프로젝트 2개를 병행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언니와 동생으로부터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일부 원조받아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졸업을 못하면 다음 학기에 1학점이라도 더 학비를 내며 등록을 해야 했기에 정말로 졸업이 절실했다. 그렇게 연구프로젝트 2개 알바에다 졸업논문을 쓰고,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임용되기 위해서는 400% 이상의 여러편의 논문 실적이 필요했기에 학술지 논문도 동시에 여러편 써내려갔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어 일하고 논문 쓰며 최선을 다한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날 문득 전편 글에서 밝혔듯 '나는 인간으로서 더이상 어떻게 할수 없을 만큼 열심히 살고 있구나'하는 절정경험을 하는 순간을 맞았던 것이다. 정말로 나 자신에게 감동해서 울컥한 내 생에 최초의 기억이었고 그런 경험은 지금도 내 자존감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4년이 채 안된 기간에 학위를 마치고 43살에 귀국해 박사후 연구원생활과 시간강사 생활 후 지금의 학교에 안착했다. 이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만 하면 이 넌덜머리 나는 공부지옥에서 벗어나 즐기는 인생을 살줄 알았다. 그러나 역시 그런 장밋빛 인생은 40대 중반이 되어도 쉽게 오지 않았다. 40대 중반 자존심에 스크래치만 남긴 짧은 흑역사 소개팅과, 이어진 짧지 않았던 썸같은 연애기간을 거치며 '내게는 결혼복은 없구나' 하는 것을 진실로 수용하며 40대 후반 홀로 사는 삶을 깊이 받아들였다가 49살에 남편을 만난 것이다. (나의 결혼 전후 이야기는 브런치북을 통해 좀더 알수 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arriagefifty


이렇게 모든 도전과 실패, 성공이 존재했던 나의 40대! 

지금 돌이켜봐도 울컥해지는 나의 40대를 반추하노라니 역시 감사의 마음으로 귀결된다. 많이 돌아오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마침내 올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지금도 온전히 홀로 서지 못해 힘들어하는 40대들에게 넌지시 내 얘기를 통해 격려를 보낸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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