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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성 Mar 07. 2023

중년이 되니 친구가 없다

중년에 친구의 의미!

   

“이 사람들을 만나면 눈치 안 보고 자랑할 수 있어서 좋아. 자랑하고 싶어 혼났네”     


어느 날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식사모임에서 우리 부부를 보고 기분 좋게 던진 말이다. 그 지인은 모처럼 자식들이 잘 돼서 자랑하고 싶었는데 막상 자랑할 사람이 별로 없더라는 것이다. 그 지인은 이 지역사회에서 마당발 중에 마당발인 분이다. 항상 주위에 사람도 많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상담해 주느라 전화기를 붙들고 사는 분인데, 이렇게 불쑥 말해서 처음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중년의 실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중년이 되고 보니 부모장례, 자녀 결혼식 같은 다소 품앗이성 일을 제외하고는 안 좋은 일도 부담 줄까 봐 선뜻 연락 못하고 축하받고 싶은 일도 그 친구에게 자극을 줄까 봐 선뜻 연락하기 주저하게 된다. 


입이 근질거려도 사려 깊은 소심함이 언젠가부터 생겨서 절제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가 계속 삶이 안 풀리거나 요즘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약진이 나의 퇴보로 다가오는 것이 결코 못난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해서 이래 저래 추리고 나면 사실 마음껏 자랑해도 되는 사람은 가족 아니면 몇 명 안 남는 것이다. 사실 가족도 가족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에 가족은 눈치 안봐도 되는 존재들이다. 가족은 가족이 가진 파워풀한 연대감도 있지만 그 자랑거리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쉽게 말할 수 있는 반면 사회 친구들은 그런 면에서 애매해진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친구가 별로 없다. 

예전에는 꽤 많았었는데...! 그 많던 친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친구가 몇 명 없다는, 결코 달갑지만은 않은 사실의 인식 직후,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소원해진 관계를 재생하기 위해 노력을 좀 해야 하는가, 혹은 아예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 이내 "아이고! 귀찮다. 그냥 이대로 살란다" 하는 마음이 되고 만다. 


나이가 드니 친구를 만들 열정이 없어진 것이다. 

외로워도 별수 없는 일이다. 친구 만들기를 위해 들여야 할 에너지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져 온다. 피곤함과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친구를 만드느니 그냥 때로 외로워도, 도움이 필요해도, 가족들과 현재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해결하고, 안 되는 것은 '그냥 감수해야지 뭐' 하게 된다. 몇 안 남은 친구들에게도 사실 잘 못하고 사는데 '무슨 또 친구를?' 하고 마음을 후딱 접는다. 


사실 중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친구가 적어진다. 

이론으로도 정립돼 있다. 나이가 들수록 편하고 좋은 사람들하고만 좁게 관계를 하게 되는 현상인 ‘정서적 선택이론’이 이미 몇십 년 전 나와있을 정도로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될수록 진짜 친구 아니면 관계가 점점 단절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중년이 될수록 인간관계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재구축되는 게 일반적이다.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는 청년시절엔 막연히 그저 어쩌다 알게 된 친구들과도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잘 어울려 논다. 심지어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따라가서도 잘 논다. 그저 같이 놀아주면 그뿐인, 순수한 대인관계가 청년 때는 형성되는데, 중년이 될수록 그런 순수성에 균열이 생긴다. 


중년엔 인간관계의 가성비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신경 쓸 일도 많고 에너지도 부족한 나이이다 보니 그 시간과 에너지, 돈을 들여 유지할만한 사람인가 하는 이슈가 붉어지기 마련이며 그런 이해관계 아닌 이해관계에 충족되지 못한 사람과는 관계 유지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내 또래의 남자들이 모임을 가고 사람을 사귀려는 것은 단 한 가지, 내 일과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 하나야, 다른 것은 없어" 언젠가 사업을 하는 남자동창생이 한 말이다. 결혼 전이었던 당시 아마 나는 “지역에서 편하게 만날 친구가 별로 없어 외롭다” 는, 다소 한가한 한탄을 하던 차였는데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 친구는 그게 뭐 별거냐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그 친구가 사업을 하기 때문에 더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후 대학동창 모임이나 취미모임에서 만나는 중년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비즈니스적으로 관계를 하는 듯했다.


외향적이었던 나는 20대에는 친구가 숫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친구에 더해 사회친구까지 합해져 숫자적으로 봤을 때는 꽤 많은 친구가 있었고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20대를 통과해 30대가 되면서 그 친구들 거의 대부분은 내 인생에서 퇴장했다. 하나 둘 결혼을 한 친구들은 결혼 후 대부분 연락이 끊어졌다. 결혼으로 인해 타 지역으로 이사 간 경우도 많아 더 그러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결혼 후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 시절 대부분 여성들은 결혼하면 출산하고 주부로 정착하는 수순의 길을 걸었기에 처녀인 나와는 공유할 이야기도 점점 없어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웬만한 또래 모임에서 당시 '최후의 처녀'로 남게 됐던 나는 이래저래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기간 축의금으로 지불한 돈도 적지 않았지만, 야외촬영 들러리 서느라 뙤약볕에 따라다닌 친구가 몇 명이며, 그 시절 다소 짜증이기도 하고 기대이기도 했던 신랑신부 결혼식 피로연 참석도 얼마나 많이 했으며, 결혼 후엔 집들이, 아기 백일잔치, 돌잔치해서 나는 한 번도 돌려받지 못한 수혜를 그 시절 친구라고 믿었던 애들에게 많이도 했었다. 그런 일련의 시간들을 거치며 서서히 적어도 여성에게 있어 친구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 후 애써서 연락을 하지도 않게 됐으며 관계라는 것에 다소 냉정해져 갔다.   


이후 사회에서 알게 된 같은 지역에 사는 귀한 인연들 몇 명과 공부를 하며 알게 된, 비슷한 길을 걷는 친구들이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들의 대부분이다. 고교시절, 대학시절 친구는 몇 명 없고 20대 사회생활하며 맺게 된 관계도 거의 10년의 유학준비와 미국생활 이후 대부분 관계가 소원해졌다.      


사실 중년에도 친구는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친구의 조건은 일단 같은 지역에 살아야 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며,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은 수준으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안 따지고 만나고 싶다고 해도 그 친구도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닐 수 있으므로, 서로 비슷하게 살고 있어야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이야기가 잘 통하고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용이하게 만날 수 있는 이웃 같은 친구 관계, 그런 관계만이 의미 있는 관계인 듯하다.    

  

친구도 효용이 있어야 친구이지 않을까? 나를 문득문득 떠올리며 톡이라도 보내고, 나의 간만의 부탁에 최소한의 반응을 해주며,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마음껏 축하해 주는 가슴이 없는 사람은 사실 사회적 관계 딱 그만큼이지 친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년이 되면 더 친구가 없어질 것이다. 그나마 남은 에너지도 노년이 되면 더 없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러 신나서 나가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노년이다. 그런 연유로 친구의 의미가 재편되는 기로에 선 것이 중년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결론은 중년에 친구는 중요하고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헤벌레 웃으면서 오늘도 초등학교 친구 모임에 나가는 남편을 보니 부럽다. 60의 나이에 반백년을 알고 지낸 초년시절 친구들부터 전직장 동료들까지 죄다 친구로 삼아 잘 지내는, 신통방통한 능력을 보유한 남편은 사실 정서적 선택이론에서 다소 예외의 케이스인데, 사실 저런 품성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사고 싶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이 생에서는 남편처럼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냥 이대로 살려고 한다. 있는 친구들에게나 좀 더 잘해야겠다. 


친구들아~ 잘 있지? 곧 전화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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