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단종의 식사시간

by 서애가

단종은 수양대군의 세력에 쫓겨 영월까지 유배를 오게 된다.

영월에서 유배를 초청한자도 처음에는 생각했던 큰 인물이 아니었고

쫓겨온 자도 모든 걸 잃었다는 절망감에 서로가 불편했다.


태조의 아들 정종, 정종의 양자지만 아들 태종, 태종의 아들 세종, 세종의 아들 문종

그리고 문종의 아들 단종이었다.

조선의 자부심은 아비가 아들에게 왕권을 선위함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아왔고 누구도 왕이 될것을 의심하지 않을 단종은

조선의 자부심인 정통성을 지키고 있는 왕세자였다.


그런 그가 수양대군...

그의 삼촌의 세력에 밀려 단종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쫓겨났다.

정통성을 깨부순 수양대군에 분노하여 세력을 만들고 군사를 일으켜

아버지 세종까지 이어 큰형 문종에게 이어진 조선의 정통성으로

다시 되돌리고자 했던 수양의 동생 금성대군..


결국 힘의 부족함으로 수양대군세력에 죽임을 당하고

조선의 정통성인 단종마저 죽임을 당하게 된다.


...


모두가 불편했던 영월의 생활 중 호환에서 백성들을 구한 계기로

단종과 마을 사람들은 친해지게 된다.


매 끼니 단종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것도 보수주인 흥도의 역할이었다.


어느 날 밥을 먹던 단종이 묻는다.

단 종 : 이 국은 어디에서 왔는가?

엄흥도 : 제가 이 개울에서 잡은 다슬기로 솜씨 좋은 아낙이 끓인 것입니다.

단 종 : 이 나물은 어디에서 왔는가?

엄홍도 : 마을에서 제일 나이 많으신 어른이 전하의 상위에 올리라 준 것입니다.

단 종 : 이 뿌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엄홍도 : 마을에 약초 캐는 이가 준비해 올린 것입니다.

단 종 : 이 산딸기는 어디에서 온것인가?

엄홍도 : 동네막동이 계집아이가 전하께 올린것입니다.


조선왕의 수라를 드는 시간은 이러했다.

단순이 밥을 먹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걱정하고 안부를 묻는 시간이었다.


임 금 : 전복이 올라온 걸 보니 그쪽지방에 큰일은 없는가?

환 관 : 태풍이 있어서 한동안 전복이 오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임 금 : 인삼이 아주 크구나. 그 지방에는 날씨에 피해는 없는가?

환 관 : 금산에 땅이 좋아 그곳은 비가 많이 와도 좀 견딜만하다고 합니다.

임 금 : 귤이 아주 싱싱하구나, 제주에는 별일이 없는가?

환 관 : 올해 귤 농사가 아주 잘되었다니 이 모든 게 임금님의 보살핌 덕분입니다.


단종 그가 아버지 문종을 통해, 그리고 할아버지 세종을 통해 배운 식사예절이었을 것이다.

비로소 그 마을의 사람들이 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 이후 많은 이들과 삶을 나누며 이 마을만큼은 평화로운 나라가 되길 기대했던 듯하다.

영월에서의 수라상은 단종을 임금으로 만들었다.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를 넘어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정통성있는 의식이었다.


...


세종의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이었던 수양대군은 세조가 되고 문종의 아들 단종은 노산군이 되었다.


...


세조가 새로운 나라를 세운 형국이 되어 그의 아들은 예종이 되고 손자는 성종이 되었다.

조선100년의 정통성을 깨부수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세조는 자신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공신들에게 세조는 모든 걸 내어주었다.


허울뿐인 왕의 자리... 그것을 위해 아버지 세종, 할아버지 태종, 정종, 태조의 역사를

뒤집어 버린 세조는 오히려 정통성이 없는 왕이 되었다.


덕분에 세조는 조선역사에 중종반정, 인조반정의 명분을 주게 된다.


약 200년 후 숙종 24년에 노산군이었던 이홍위는 단종으로 복권된다.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돌리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의미 있는 한걸음이었다.

엄흥도의 후손들도 그제서야 세상에 나올수 있었다.


단종의 식사장면_'왕과 사는 남자'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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