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 MBTI_열여덟번째

현종_이 원(생. 1641~(재위1659~1674)~졸.1674_33세)

by 서애가

1.현종_이 원(생. 1641~(재위1659~1674)~졸.1674_33세)


2. 내가 느낀 그의 성격 : ESTJ_2-1. 동일한 성격의 조선왕 8대 예종, 15대 광해군

현실적, 구체적, 사실적이다.

또한 어떠한 활동을 조직화하고 주도해 나가는 지도력과 추진력이 있다.

행정, 의료, 법조, 군대, 경찰, 재무 등 '조직관리'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타고난 지도자로서 프로젝트의 목표를 설정하고, 지시하고, 결정하고, 독려하여

기한 내에 철저히 이행하는 능력이 있다.

불확실한 미래의 가능성보다 흔들리지 않는 현재의 사실을 추구한다.

하지만 감정을 고려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 중심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타인의 감정을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건강한 ESTJ는 타인을 지적하기보다는 성격과 능력치를 상식적, 논리적으로 고려하여

업무를 배분한다.

할당된 업무가 개인의 능력치를 넘는다 판단될 경우 자기가 일 처리를 다 해버린 후,

그 사람을 좌천시키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겉보기 특성 - 리더십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성격으로, 돈을 잘 버는 유형이다.

카리스마 있는 선배, 교육자, 상사, 사장, 가부장적인 부모 등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엄격, 엄숙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냉정한 편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물질적인 부분에서 알뜰하게 챙기는 모습도 보여준다.

직장에서 전형적인 구세대의 꼰대 이미지인데, 윗사람한테는 매우 깍듯하지만 특유의 보수적인 성향으로

부하들에게는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평가가 나쁘다.

공격적이고 편협한 성향으로 온갖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근면성실하고 현실적이며 꼼꼼하다.

그래서 사실상 위계질서와 서열,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된 전형적인

사무직이나 현장직 등에서는 빛을 발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나 모든 유형 중에서 J성향이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다.

따라서 이전에 해오던 방식에 문제가 생겨도 점진적으로 개선하기보다 고수하려는 모습이 강하며,

기존 계획에서 기준이나 절차, 형식 등이 조금만 달라져도 불편해한다._출처 나무위키


3.ESTJ의 성경인물-노아


4.ESTJ의 유명인

남 : 홍준표, 황교안, 김문수, 조규성, 김구라, 데프콘.. 등

여 : 김남주, 이은지, 이지혜, 한가인, 한채영.. 등


5. 그의 삶에 결정적인 사건 : 예송논쟁(禮訟論爭)과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

왕의 정통성을 세우는데 필요한 예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든 지도자의 정당성은 매우 중요하며

조선은 인조 이후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후손들이 보기엔 상복 입는 거가 뭐가 중요하다고 민생보다도 더 신경 쓰고

그 긴 시간을 논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으나...

이 문제는 단순히 옷을 얼마나 입느냐가 아닌 왕위계승 정통성, 즉

조선의 존재유무에 대한 싸움이었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인조가 장자인 소현세자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고

손자에게 세손을 세운 것이 아닌 소현세자의 동생인 현종을 왕세자로 세움으로

조선의 정통성은 흐트러졌다. 어떻게든 조선을 대외적으로 정통성 있게 만들기 위해

신하들이 주고받은 논쟁, 이것이 예송논쟁이었다.

하나 그 모든 것 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먹고사는 문제..

경신대기근으로 모든 논쟁은 잠시 중단되고 대기근을 극복하는데

조선의 모든 행정력이 집중되었다.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현종의 대동법확대화 효종의 경기선혜법으로

완성시킨 수도권 경기도의 대동법의 완성으로 그나마 버텨낼 수 있었다.

경신대기근 극복 후 2차 예송논쟁이 시작되었다.


6. 그의 삶을 함께한 사람들 : 송시열, 송준길, 윤선도, 윤후, 허목 그리고 장렬왕후


7. 그의 가장 큰 업적

- 경신대기근의 극복.

재상까지 굶어 죽던 초유의 자연재해가 2년간 이어졌으나 아버지의 효종의 업적을 이어받아

기근이 있기 전 대동법을 확대시행하여 이 자연재해를 극복할 근간이 이루었다.


8. 그의 가장 큰 실수

- 후궁을 두지 않음.

현종 이후로 왕실의 손의 귀해짐으로 정통성을 지키려는

명분 때문에 왕제 아닌 자들까지 왕이 되게 되는 명분이 된다.


명안공주.jpg 명안공주가 시집갔을때 쓴 현종의 한글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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