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세계관

불치의 감각 하나를 데리고 산다는 건

by 승지

지난 6월은 어정쩡한 마음으로 일 년의 중간을 흘려보냈다. 세 달이 지나 이제는 8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준 그 계절이 다시 다가온다. 설레는 감정이 이는 건 이따금 내가 또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문득 묻게 된다. 나는 그 일 년 동안 얼마나 달라진 사람이 되었는가.


쓰고 싶은 글이 있어, 늦은 밤 노트를 펼쳤다. 흔히 새벽 2시에서 4시를 가장 위험한 시간이라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지나야만 잠에 들 수 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밤 속에서 잠들고 싶다.


귀를 좀 쉬게 해야 한다는 엄마의 한마디 이후로, 보청기를 자주 빼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다. 귀를 쉬지 못하게 두면 청력은 더 나빠지겠지. 그렇다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소리를 달고 살 수는 없겠지. 그런데도 나는 고요가 너무 싫어 잠들기 직전까지 보청기를 빼지 못한다. 꼬리를 무는 불안은 아마도 평생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전환되었다. 난청 유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간 날 청각사께서 소리를 많이 들려줘야 세포가 활발해져 청력이 잠들지 않는다고 하셨다. 물론 잠든다는 표현을 하신 건 아니다. 이건 그저 내 표현일 뿐 청력이 잠들면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 회복이 불가능한 아이다. 불치의 감각 하나를 데리고 사는 일도 이토록 버거운데 신체적 고통을 매일 감내하며 사는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실까. 나는 이따금 또 깨닫는다.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검사 결과 또한 대표적인 난청 유전자들이 모두 ‘변이 없음’으로 나왔다. 유전성이 있을 거라 확신하며 2주간 결과를 애써 기대하지 않았기에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이 머쓱했다. 그래도 단란하고 행복이 가득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내 꿈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참 다행이다.


그날 이후 청각사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으려 애쓰고 있다. 매미 소리에 잠 못 이루는 엄마를 볼 때면 나는 여전히 다른 세계에 머무는 듯하다. 나와 소리의 서사가 아직은 깊지 않지만 언젠가 소리의 세계를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리의 기쁨보다 글의 행복을 더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곁에는 소리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