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돌이켜보면 요즘은 ‘행복’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행복을 붙잡아 보겠다고 애써 찾으려 하면 오히려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살다가 문득 정말 아무 예고도 없이 “나 지금 행복한가?”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꽤 괜찮은 상태라는 것이 선명하게 체감된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행복에 집착할까
어쩌면 멈추면 불안해지는 챗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해서는 아닐까 새로운 도파민, 새로운 자극, 새로운 설렘. 그걸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안심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를 가장 많이 웃게 만드는 건 힘든 하루가 끝난 뒤 침대에 드러누워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는 시간이다. 오래된 드라마 특유의 날 것 같은 대사와 투박한 장면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저런 장면이 있었나?” 하며 깜짝 놀라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대사에 피식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혼자 봤다면 그냥 추억팔이로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나란히 누워 함께 보니 사소한 장면 하나도 훨씬 크게 다가온다. 같은 타이밍에 웃고 같은 장면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그 순간들이 하루를 부드럽게 마무리해준다.
하루의 끝을 산책으로 마무리하는 날도 좋다. 두꺼움과 얇은 그 중간 옷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매서운 공기 그 공허하면서도 선명한 감각이 묘하게 마음을 정리해준다.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익숙한 동네에서도 새로운 길이 보인다. “저런 곳이 있었나?”, “여기 은근 볼 거 많네”, “힙하다.” 짧은 감상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그 순간만큼은 괜히 탐험가가 된 기분이 든다.
딱 이 정도의 행복, 그리고 약간의 공허함 이 정도가 있어야 다음 날 조금 더 부지런히 일어날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의 나는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같은 회사 동료가 프리다이빙 2급 자격증이 있다며 수영을 잘하지 못해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바다거북이를 보기 위해 시작했던 프리다이빙이 어느새 그녀의 삶에 깊이 자리 잡은 취미가 되었고 지금도 가끔 주말이면 바다로 향한다고 했다.
나도 거북이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바다 속에서 마주하는 거북이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 한 달에 30만 원이면 배워볼 만한가 싶다가도 수영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과연 가능할까 싶다. 프리다이빙은 잔잔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잘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요동치는 내 마음도 물속에서는 조금은 잠잠해질 수 있을까
수영도 못하는 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순간만큼은 늘 들뜬다.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뒤섞인 그 감정이 좋다. 혹시 모르지 바다 속에서는 나도 조금은 잔잔한 바다 거북이가 될 수도 있다.
요즘의 나는 이렇게 산다.
드라마를 보며 웃고,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걷고, 언젠가 바다로 들어갈 상상을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딱 이 정도의 행복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