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K-문제집 05화

<오늘도 허세롭게 살았습니다> 1부

갓에서 샤넬까지, 품위란 이름의 폭력

by 슈퍼T

세 손가락으로 먹는 사람들: 허례허식은 어떻게 지배가 되는가

우리는 흔히 허례허식을 단순히 겉치레나 과장된 형식 정도로 여깁니다. 화려한 옷차림, 복잡한 인사법, 식탁 위에서의 까다로운 예절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허례허식은 결코 단순한 품격이나 전통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적 권력과 지배 질서를 유지하고, 계층과 위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강력한 도구로 기능해왔습니다.

식탁에서의 작은 예절 하나, 옷차림에서의 세심한 장식, 언어 사용에서의 고급스러운 표현, 심지어 소비 습관까지도 모두 허례허식의 영역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다르게 보이는 것’ 자체가 곧 ‘우위에 서는 기술’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먹고, 어떤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권력과 위계가 시각화되고, 사회적 지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유럽의 식사 문화를 중심으로, 허례허식이 어떻게 사회적 권력을 시각적·행동적 방식으로 드러내고 강화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 궁정에서 발전한 극도의 예절과 식사법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왕권과 귀족 사회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정치적 장치였습니다. 이어서 조선 양반의 복식과 예법을 통해 동아시아 사회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계층과 권력이 유지되었음을 탐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일상 속 구별짓기 풍경, 즉 소비와 외모, 언어, SNS 문화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계층 신호들을 살펴보며, 허례허식이 과거에만 존재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허례허식이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라, 사회와 권력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권력과 지배는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작은 동작, 옷깃 하나, 식탁 위의 포크와 나이프 배치 같은 섬세한 행동들이 사회적 위계를 드러내고, 권력 구조를 강화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 글은 허례허식의 역사적 사례와 문화적 의미를 폭넓게 탐구함으로써,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규범과 예절, 그리고 그것이 지닌 정치적·사회적 기능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안내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 탐구를 통해, 허례허식의 진정한 힘과 그 속에 숨겨진 사회적 메시지를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손가락 세 개로 먹는 귀족들: 구별짓기의 시작

오늘날 식사할 때 사용하는 포크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도구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포크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포크는 단순한 식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권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해왔습니다. 식탁 위에서의 작은 행위 하나가 계급과 권력을 구분하는 신호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세기경 비잔틴 제국에서는 이미 포크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는 오랫동안 포크 사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손은 단순한 신체 기관이 아니라 신성한 도구로 여겨졌고, 음식은 신이 주신 은총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11세기 베네치아에 시집온 비잔틴 공주가 포크를 사용했을 때, 당시 성직자들은 이를 ‘불경’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신이 주신 음식을 신이 주신 손으로 먹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도구를 이용한 식사를 자연 질서와 신성에 어긋나는 행위로 판단했습니다. 포크라는 단순한 도구조차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종교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민감한 사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포크가 일반화되기 이전에도 상류층은 이미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평민과 구별짓기를 실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는 상황에서도, 손가락 사용에 엄격한 규범을 적용했습니다. 특히 엄지, 검지, 중지만을 사용하는 방식이 ‘품위 있는 식사 예절’로 여겨졌습니다. 반대로 다섯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는 평민의 식사법은 ‘거칠고 천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단순히 같은 음식을 손으로 먹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손가락 하나하나의 사용법이 계급과 신분을 드러내는 기준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규범은 단지 개인의 교양이나 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손가락 세 개로 음식을 집는다는 작은 행동 속에는 ‘나는 너와 다르다’는 상징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고, 이는 사회적 위계를 자연스럽게 시각화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손가락의 개수와 움직임이 곧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식사 방식 자체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은밀하게 강화하는 도구로 작동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관습은 단순한 식탁 예절을 넘어 사회적 행동과 인식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귀족 사회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조차도 신중하게 훈련되었고, 이를 통해 일상 속에서 자신의 계급과 권위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강화했습니다. 이는 평민에게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다르다. 우리는 같은 음식을 먹지만, 방식이 다르다.” 이러한 시각적·행동적 구별짓기는 권력과 위계를 유지하는 문화적 장치로서, 사회 질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포크의 도입과 상류층의 손가락 세 개 사용법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나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귀족과 평민, 권력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구별짓기를 문화적·사회적 장치로 정착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손가락 세 개로 음식을 집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당시 사회의 계급 구조와 권력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식탁 예절이나 복식, 언어, 소비 습관 속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구별짓기’의 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손가락 세 개로 음식을 집는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행동 속에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권력과 위계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궁정부터 조선 양반까지: 허례는 곧 권력입니다


베르사유의 허례: ‘절대 권력은 절대 연출됩니다’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이자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루이 14세는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태양왕(le Roi Soleil)’이라 칭하며, 모든 정치적·사회적 질서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루이 14세는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무대를 설계했습니다. 바로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베르사유는 단순한 궁전이 아니라, 권력과 정치적 통제를 시각화하고 체계화한 공간이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전국 각지의 귀족들을 궁전으로 불러들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귀족들에게 영광과 혜택을 주는 듯 보였지만, 실제 목적은 철저한 통제였습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지방 기반에서 벗어나, 왕의 일정과 의지 아래 생활하도록 강제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 사냥, 무도회, 휴식, 잠자리까지 모든 행동이 왕의 관찰과 평가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정치적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으며, 모든 생활이 연극처럼 설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베르사유 궁정에는 극도로 세밀한 예절 규범이 존재했습니다. 누가 왕의 신발끈을 묶는지, 누가 왕의 침소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지, 왕과 걸을 때 몇 발자국 간격을 두어야 하는지, 식탁에서 어떤 순서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등,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철저히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규범들은 단순한 교양이나 에티켓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귀족들의 사회적 서열과 권력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장치였습니다. 왕과 가까운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 왕에게 먼저 봉사할 수 있는 사람, 왕의 신뢰를 얻는 사람은 곧 권력의 중심에 가까운 위치를 상징했습니다. 반대로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권력과 영향력에서 배제된 신호로 해석되었습니다.

루이 14세는 검 대신 포크와 숟가락을, 무력 대신 예절과 언어를, 무기 대신 복장과 몸짓을 권력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귀족들이 화려한 연회를 즐기고, 음악과 무도회를 관람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몸짓과 시선, 말과 행동은 끊임없이 평가되었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 의미를 가지며, 권력과 지위를 시각화하는 장치가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식사 예절은 권력 연출의 핵심 무대였습니다. 왕과 귀족들은 함께 식사하며 철저한 순서를 따랐습니다. 왕이 어느 접시를 먼저 집는지, 어떤 숟가락을 사용하는지, 음식의 온도와 배치까지도 모두 귀족들에게 신호를 전달했습니다. 이를 통해 귀족들은 ‘왕의 관찰자’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습니다. 식탁에서의 작은 실수나 순서 위반은 단순한 결례가 아니라, 권력적 의미를 가지는 행동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과 그 속의 허례는 단순한 사치나 미적 과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권력을 유지하고, 사회적 질서를 강화하며, 귀족들의 자율적 권력 기반을 약화시키는 정교한 시스템이었습니다. 허례와 엄격한 예절, 시각적 연출은 권력의 상징이자 통제의 도구로 작동했습니다. 결국 루이 14세는 문화, 예절, 시각적 장치까지 활용하여 정치적 연극을 설계함으로써, 절대 권력을 연출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르사유의 사례는 권력이 단순히 법이나 군사력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문화와 일상 속 행동, 그리고 시각적 연출이 권력 유지와 정치적 통제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작은 손짓 하나, 식탁 위에서의 위치, 몸짓과 복장까지 모두가 권력과 위계를 드러내는 신호가 되었던 것입니다. 베르사유는 화려함 속에 감춰진 정치적 전략의 결정체였으며, 허례허식이 어떻게 사회와 권력을 위한 도구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조선의 허례: 양반은 겉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에서도 허례허식은 단순한 겉치레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권력은 단순히 법이나 군사력으로 유지되지 않았으며, 문화적 장치와 일상 속 반복적 실천을 통해 강화되었습니다. 조선왕조(1392~1897)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계층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계층은 혈통과 법적 규정만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수행되고 반복되는 형식적 생활 양식, 즉 복식, 언어, 의례, 행동 양식이었습니다.

조선의 양반은 단순히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아니라, 일정한 언어와 복장, 예절, 의례, 말투와 자세를 갖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양반은 무력이나 재산보다 문화적 장치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권력은 신분제를 정당화하고, 피지배층이 스스로를 ‘덜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사회적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일상의 작은 행동과 의례 하나하나가 권력과 지위를 드러내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복식: 갓은 단지 모자가 아닙니다

양반의 복식은 단순한 의류가 아니라, 사회적 위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양반 남성은 흰 도포와 검은 갓, 즉 흑립을 착용하며 자신의 신분을 표현했습니다. 갓의 재질, 크기, 모양, 착용 방식 하나하나가 권력과 계급을 표시하는 장치였으며, 이는 실용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상징적·사회적 목적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상민이나 천민은 남루한 의복을 입고 갓을 착용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상투를 어떤 모양으로 틀었는지까지도 신분의 미학과 관련된 사항이었습니다. 외형과 복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나는 양반이다’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장치였습니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구분되는 양반과 평민의 차이는 사람들 스스로 신분을 체화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의복 규범은 상황과 장소에 따라 더욱 세분화되었습니다. 관직에 따라 착용해야 하는 도포 색과 갓 장식이 달랐으며, 공식 행사와 일상에서의 복장 규정이 다르게 적용되었습니다. 이는 양반 사회에서 외형적 준수와 행동이 곧 권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언어와 글쓰기: 문자 자체가 권력이었습니다

조선 양반 계층은 한문을 사용하여 공식 문서를 작성했고, 한시를 짓거나 사대부 특유의 문체를 구사했습니다. 문자는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문화적 권력과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 체계였습니다. 반면, 여성이나 하층민은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까지 문자를 배우기 어려웠으며, 설사 문자를 배운다 하더라도 ‘양반식 문체’를 구사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무시당했습니다. 즉, 문자 사용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신분을 표현하는 문화적 장치였습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조선 후기까지 양반들은 한문과 한시, 문체 규범을 통해 여전히 자신들의 특권적 위치를 유지했습니다. 글쓰기 능력과 문체 준수 여부가 사회적 평가의 기준이 되었고, 문자와 언어는 계층을 구분하는 핵심 수단으로 작동했습니다.


의례: 제사는 양반 가문의 DNA였습니다

조선 양반 사회에서 가장 전형적인 허례는 의례였습니다. 제례, 혼례, 상례 등 ‘가례’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가문과 신분을 드러내는 사회적 장치였습니다. 양반 가문은 조상 제사를 매우 엄격하게 지켰으며, 종손은 가문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대로 평민 가정은 경제적 이유나 지역적 상황 때문에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례의 형식, 정교함, 규모 자체가 신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례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가문의 권위와 사회적 위치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강화하는 문화적 장치였습니다. 혼례와 상례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결혼식에서는 신랑·신부의 복장과 의례적 행위, 혼수와 절차가 신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으며, 상례에서는 상복과 장례 방식, 제사 과정이 가문의 권위를 반영했습니다. 이러한 의례적 규범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와 권력을 유지하는 체계적 장치였습니다.


조선 허례의 정치적 기능

결국, 조선 양반의 허례는 단순한 겉치레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복식과 언어, 의례와 제도는 신분을 정당화하고, 피지배층을 통제하며, 권력을 강화하는 장치였습니다. 허례는 일상의 작은 행동 속에서 반복적으로 수행됨으로써 사회적 위계를 시각화하고, 권력 구조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유럽 귀족 사회, 베르사유 궁정의 허례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허례는 권력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포크와 예절, 식탁 예법이 유럽 귀족을 통제한 것처럼, 조선에서는 복식, 언어, 제례가 양반과 평민을 구분하고 지배 질서를 강화하는 도구로 작동했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행동과 반복적 수행이 곧 정치적 장치였던 것입니다.

허례허식은 단순한 화려함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과 지배를 연출하고 유지하는 문화적 장치였습니다. 겉에서 만들어진 양반은 내부적으로도 규범과 의례, 언어와 복식을 체화함으로써 스스로 권력의 일부가 되었고, 피지배층에게는 그 차이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서양과 조선의 공통점: ‘허례’는 통치를 위한 공연입니다

프랑스 궁정 문화와 조선 양반 문화는 시대와 지리적 배경은 다르지만, 그 본질적 구조와 기능에서는 놀랄 만큼 유사합니다. 두 사회 모두 권력을 단순히 법이나 군사력으로 유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권력은 ‘보여지는 방식’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통치자는 권력과 사회적 질서를 시각적·문화적으로 연출함으로써, 피지배층과 상류층 모두에게 위계와 질서를 내면화시키도록 했습니다.

루이 14세가 설계한 베르사유 궁정의 예법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귀족들은 왕의 식사와 일상, 사냥과 무도회 등 모든 행동에서 철저히 규율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누가 왕의 신발끈을 묶는지, 누가 왕의 침소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지, 걸음걸이와 시선, 식탁에서의 위치까지 세밀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규범은 단순한 교양이나 예절이 아니라, 권력과 서열을 시각화하는 장치였습니다. 귀족들은 왕의 관찰과 평가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위계 질서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과 무력 대신, 포크와 숟가락, 예절과 언어, 몸짓과 복장이 권력과 통제의 수단이 된 것입니다.

조선 양반 역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양반은 단순히 과거 시험을 통과한 지식인이 아니라, 복식과 언어, 제례와 의례, 말투와 자세까지 체화함으로써 신분과 권력을 시각화했습니다. 흰 도포와 검은 갓, 상투의 모양, 한문과 사대부 특유의 문체, 그리고 제사와 가례에서의 세세한 절차까지, 모든 것이 사회적 위계를 드러내는 장치였습니다. 피지배층은 이러한 양반의 생활을 관찰하고, 자신과의 차이를 체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질서를 내면화했습니다. 복식이나 언어, 의례라는 문화적 장치가 권력과 지배를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와 조선 모두 ‘보여주는 통치(performative governance)’를 통해 권력을 확립했습니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단순히 겉치레나 과시가 아니라, 사회 질서를 내면화하게 만드는 매우 정교한 비폭력적 기술이었습니다. 포크와 숟가락, 정교한 궁정 예법, 갓과 도포, 제례와 문체 등은 모두 단순히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계급과 권력을 확인하고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장치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허례 구조가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직장 내 서열, 학교에서의 위치, 사회적 모임에서의 예의와 의례, 그리고 SNS 상의 행동과 이미지 관리 등에서 과거 허례와 유사한 구조가 발견됩니다. 특정한 행동 방식, 복장, 말투, 심지어 사진이나 글의 표현 방식조차 사회적 차별과 위계의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포크, 복식, 의례가 그 역할을 했고, 오늘날에는 디지털 공간과 사회적 관습이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허례허식은 단순한 화려함이나 겉치레가 아닙니다. 그것은 권력과 통치를 연출하고, 사회적 질서를 내면화시키며, 피지배층과 상류층 모두에게 권력 구조를 각인시키는 문화적 장치입니다. 프랑스 궁정과 조선 양반, 그리고 현대 사회 속 다양한 위계 구조는 모두 동일한 원리를 바탕으로 작동합니다. 허례는 눈에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 사회적 서열을 확립하고, 통치를 공연처럼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정교한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현대 한국은 과연 다른가요?

형태는 달라졌지만, 허례는 여전히 권력의 무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법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과거 조선의 갓과 베르사유 궁정의 예법이 사라졌다고 해서 허례허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허례는 더 정교하고 은밀한 형태로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과거에는 손가락 세 개로 음식을 먹거나, 갓과 도포, 복잡한 궁정 예법이 권력과 신분을 드러냈다면, 오늘날에는 학벌, 직장 내 서열, 소비 습관, 사회적 이미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학벌: 졸업장은 현대의 신분증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단순한 학력이나 교육 수준을 넘어, 사회적 신분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의대, 로스쿨 등 특정 대학과 학과는 단순한 학교명이 아니라, ‘출신 계급’을 의미하는 사회적 코드가 되었습니다. 학벌은 사회적 위치와 기회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자, 현대판 허례의 핵심 장치입니다. 입시 제도는 표면상 공정해 보일 수 있습니다. 시험 점수와 입학 경쟁은 모두 능력주의의 원칙에 따라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출발선은 이미 가정의 경제력, 문화력, 정보력에 의해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강남 8학군에서 시작되는 교육 인프라는 좋은 학교와 학원, 과외, 다양한 경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자녀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줍니다. 조기유학과 대치동 학원가는 단순한 공부 공간이 아니라, 학벌을 미리 설계하는 전략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부모의 인맥을 통한 스펙 관리와 추천서는 시험 점수 외에도 사회적 자본을 상징하는 장치가 됩니다. 즉, 학벌은 부모 세대가 축적한 자본과 자원을 자녀 세대에게 재생산하는 수단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사회 이동의 문턱을 높이며,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입사, 문화계·학계 진출에서도 비공식적 ‘문지기’ 역할을 수행합니다. 결국 학벌은 현대 사회에서 문화자본, 경제자본, 사회자본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허례의 집약체가 됩니다. 학벌주의는 단순한 경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계급의 재생산과 연결됩니다. 조선의 양반이 의례와 언어, 복식을 통해 신분을 유지했던 것처럼, 오늘날 학벌은 법적 평등 속에서 사회적 위계와 권력을 보존하는 현대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는 과거의 허례와 달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행동과 선택, 사회적 기회를 좌우하는 강력한 통제 구조입니다.


소비: 브랜드는 현대의 갓과 도포입니다

과거 조선 양반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으며 신분을 드러냈다면, 오늘날의 상류층은 명품 가방, 외제차, 고급 아파트 평형과 입지로 자신을 구별합니다. 외형과 행동을 통해 ‘나는 이 계급에 속한다’는 사회적 신호를 보내는 방식은 과거와 동일하지만, 표현 수단이 현대적 형태로 변형된 것입니다.

청담동에서 명품 브랜드를 쇼핑하고, 압구정 피부과에서 고급 시술을 받으며, 한남동 스타벅스에서 인증샷을 올리는 일상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사회적 위계를 시각화하는 장치입니다. 포크와 숟가락, 갓과 도포가 했던 역할을 명품과 SNS가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소비는 단순한 물건의 가치가 아니라, 문화적 신분과 권력을 드러내는 현대적 허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과 차별화된 위치를 과시하기 위해 브랜드와 공간, 경험을 전략적으로 활용합니다. 골프장, 고급 커피숍, 프라이빗 클럽 출입 기록조차도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신호로 기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소비의 문법이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산층 이하도 현대 사회에서 ‘허례’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신용카드 할부, 명품 중고거래, 외식 인증문화, 과도한 소비, 학원과 뷰티 시술 등 다양한 형태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며, 자신을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개별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경쟁과 불평등을 강화하는 구조적 현상입니다.

결국, 소비문화는 과거 양반의 복식과 유럽 귀족의 예법처럼, 현대 사회에서 계급과 권력을 연출하고 확인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인증 행위는 사회적 서열을 상징하며, 이를 반복하고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차이는 자연스럽게 내면화됩니다. 브랜드와 공간, 경험을 통한 ‘보여주는 소비’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허례가 살아 있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며, 과거의 허례가 오늘날의 문화와 경제 시스템 속으로 진화한 모습입니다.


언어와 말투: 권력은 말에서 나온다

현대 사회에서 권력과 계급은 말과 언어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과거 조선 양반이 한문과 문체를 통해 신분과 권위를 표현했듯이, 오늘날의 엘리트 계층 역시 특정한 언어 코드를 사용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구별합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과 계급을 상징하는 문화적 장치인 것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은 업무와 일상에서 특정한 ‘관료적 언어’와 ‘기업형 언어’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별도 라인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겠습니다”, “협의 후 피드백 드리겠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단순한 업무 표현을 넘어, 사회적 위치와 전문성을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런 언어 코드는 외부에서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특권적 언어이며, 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은 곧 조직 내 신뢰와 권위를 갖춘 존재로 평가됩니다.

반면, 사투리, 구어체, 감성적 표현 등은 때로 낮은 교육 수준이나 전문성 부족으로 오해받으며, 사회적 신뢰와 평가에서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면접, 회의, 보고서 작성, 이메일 작성 등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말투와 표현 방식은 개인의 능력과 성향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이는 단순히 언어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허례가 현대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증거입니다.

즉, 언어와 말투조차 현대의 허례이며 계급의 코드입니다. 과거 양반이 한문과 예절, 문체를 통해 권위를 시각화하고 사회적 위계를 강화했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특정한 언어 사용과 말투를 통해 사회적 서열과 권력이 재생산됩니다. 말은 눈에 보이는 갓이나 도포처럼 사회적 위계의 상징이 되며, 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는 단단하게 사회적 격차로 이어집니다.

결국 현대 한국 사회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허례와 권력, 계급을 연출하고 확인하는 가장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장치 중 하나입니다. 말투와 표현 방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신분증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사회적 위치와 권력을 체화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거지와 동네: 주소가 곧 신분이 됩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주거지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사회적 계급을 증명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강남 3구, 판교, 한남동, 청담동과 같은 지역은 단순한 동네 이름이 아니라, 곧 ‘내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표식입니다. 과거 프랑스 궁정에서 귀족이 특정 예법과 복식을 통해 권력과 위계를 과시했던 것처럼, 현대 한국에서는 ‘어디에 사느냐’가 곧 개인과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허례가 된 것입니다.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한남동, 청담동은 현대판 궁정이나 양반 동네와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 하더라도 브랜드, 평형, 입주민 커뮤니티, 단지 내 시설과 관리 수준에 따라 ‘격’이 달라집니다. 같은 커피를 마셔도 한남동에서의 한 잔은 단순한 음료 소비를 넘어, 사회적 신분을 시각화하는 행위가 됩니다. 주거지는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교육, 네트워크, 문화생활까지 연결되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하며, 이는 사회 이동의 또 다른 장벽이 됩니다.

부동산은 이제 단순히 주거 문제를 넘어 계급화된 공간 배치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은 곧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과 주거 형태는 소득과 재산의 차이를 넘어서 사회적 위계와 권력을 상징하며, 개인의 삶과 기회를 제한하는 구조적 요소로 작동합니다.

결국, 현대 사회의 주거지와 동네 선택은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라, 현대적 허례의 핵심 장치이며, 사회적 권력과 계급을 드러내고 재생산하는 수단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타인을 평가하며, 사회적 서열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이처럼 현대 한국 사회의 일상은 ‘탈신분제’를 외치면서도, 사실상 더 정교한 계급화 전략이 은밀히 작동하고 있는 문화적 풍경을 보여줍니다. 허례는 더 눈에 띄지 않지만, 더 지능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보이지 않게 보이기’의 기술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며, 사회적 통제와 경쟁은 자연스럽게 내면화됩니다. 과거의 갓과 도포, 베르사유의 예법, 조선 양반의 제례와 의례가 수행했던 역할이, 현대 한국에서는 주소와 커뮤니티, 생활 방식, 소비와 언어를 통해 반복되는 것입니다.


결론: 허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형태만 바뀔 뿐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허례허식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배계층이 권력의 경계를 설정하고, 피지배계층이 그 경계를 내면화하도록 만드는 정교한 문화적 장치였습니다. 허례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형식적 규범을 넘어, 사회적 위계와 권력을 반복적으로 연출하고 강화하는 도구였습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정에서 일상과 예법을 하나의 무대로 설계했습니다. 신발끈을 묶는 순서, 왕과의 거리, 침소에 들어가는 순서와 같은 세세한 규범은 단순한 에티켓이 아니라 정치적 통제 장치였습니다. 이를 통해 귀족들은 무력이나 강압 없이도 왕의 권력 아래 길들여졌습니다.

조선의 양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복식과 언어, 문체와 의례를 통해 권위를 과시하고, 신분을 시각화했습니다. 갓과 도포, 제례와 과거 시험, 한문과 문체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사회적 서열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장치였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피지배층이 스스로를 ‘덜된 존재’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 소비, 언어, 주거지와 같은 현대적 장치가 이러한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울의 명문대, 청담동 명품 거리, 기업형 언어, 강남 3구의 아파트는 더 이상 법적 신분과는 무관하지만, 사회적 위계와 계급을 가시화하고 내면화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이를 ‘구별짓기’라고 불렀습니다. 구별짓기는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계급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이며, 사람들은 이러한 구별을 강요받기보다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내면화합니다. 포크를 세 손가락으로 잡는 귀족의 행위, 양반의 제례, 현대인의 학벌·명품·언어·주거 선택 모두 동일한 구조 위에서 작동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그들의 포크는, 그들의 명품은, 그들의 언어는, 그들의 동네는 정말 더 고귀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이 ‘고귀하다고 여겨지도록 설계된 것’은 아닐까요?

허례는 형태를 바꾸어 반복되고, 권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과 선택을 지배합니다. 자유와 평등은 단순히 제도적 선언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허례의 구조를 감식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돌아보고, 현대의 ‘보이지 않는 허례’에 대한 통찰을 통해 스스로의 선택과 사회적 판단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결국, 허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습이 시대와 사회에 맞게 변형될 뿐이며, 그 형태를 읽을 수 있는 눈과 판단력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와 사회적 성찰의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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