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K-문제집 07화

<오늘도 허세롭게 살았습니다> 3부

진짜 품격은 어디에 있는가?

by 슈퍼T


진짜 품격은 어디에 있는가?

– 허례를 넘어선 인간 존엄의 조건


진짜 품격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흔히 외형과 겉모습으로 품격을 판단하려 합니다. 고급 브랜드, 학벌, 직함, 집안 배경과 같은 것들이 그 척도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역사와 삶의 경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진짜 품격은 외형에서 비롯되지 않으며,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과 행동,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태도입니다.

역사적으로 ‘폼’과 ‘존엄’은 늘 긴장 관계 속에 존재했습니다. 권력과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폼’은 때로 사회적 질서를 지탱하는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인간 본연의 가치와 공동체적 연대의 토대가 되는 ‘존엄’을 억압하기도 했습니다. 왕조 시대의 화려한 의복과 궁궐의 장식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권력과 신분을 과시하는 장치였습니다. 반면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공동체 안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를 지키며 ‘살아내는 품격’을 만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자본주의가 결합하면서, 우리의 일상은 끊임없이 과장과 과시로 채워집니다. SNS는 일상을 과장하도록 유도하며, 소비는 곧 정체성이 되었고, 사회적 지위는 외적 장식으로 포장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보이기 위한 선택을 하고, 타인의 시선을 중심으로 행동을 설계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진짜 품격은 타인의 시선이 사라졌을 때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명품도, 학벌도, 직함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존중하며, 공동체 안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데서 나타나는 내적 윤리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살아내는 품격’을 탐구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우리는 왜 과시적 ‘폼’에 끌리는지,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또한 외형적 장식과 과시를 넘어, 인간 존엄을 회복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고찰할 것입니다.

진짜 품격은 단순한 시각적 표지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며, 행동의 일관성입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삶, 공동체 속에서 윤리를 실천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품격입니다. 이 책이 그 길을 찾는 작은 안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폼’이 전부인 시대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엇보다 ‘폼’을 중시합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가를 끊임없이 계산합니다. 말투와 옷차림, 직함, 명품, 배경 음악, 심지어 인스타그램의 필터까지 모두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존재 자체보다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해진 사회입니다. 이는 곧 개인 브랜딩의 시대이자, 겉모습이 내면을 압도하는 시대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의 내적 가치가 점점 가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급 외제차를 탄다고 해서 그 사람의 품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는 수십억 원대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 상당수는 사회적 책임감이나 공동체 의식과 무관하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데만 관심을 쏟습니다.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반드시 인격이 뒷받침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학벌과 인성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일부 고위 공직자 부패 사건이나 재벌 총수 일가의 비리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사회적 지위와 겉모습이 인간적 도덕성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명품 가방 하나가 사람의 본질적 품위를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핸드백이나 고급 시계는 단순히 사회적 신호로서의 역할만 수행할 뿐, 그것이 사람의 성격이나 내면적 가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외형적 요소에 목숨을 겁니다. 서울 강남권의 쇼핑몰과 명품 거리에는 최신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듭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약 67억 달러로 세계 10대 규모에 속하며, 이는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외형적 가치를 과시하기 위해 상당한 소비를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학벌과 아파트, 명품, 외제차는 인격과 관계없이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명문 대학 출신이라는 학벌은 여전히 취업과 결혼 등 사회적 선택에서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외제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서울 강남권 일부 학원가 주변에는 학부모들이 자녀 학업 성취를 과시하기 위해 고급 외제차를 몰고 등하교를 하는 모습이 흔히 관찰됩니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사회적 신호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물질과 외형에 집착할수록 진정한 존재, 즉 내면의 삶을 소홀히 하기 쉽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한 조사에서는 20대 직장인 중 약 60%가 ‘겉모습 때문에 자신을 꾸미느라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성공을 쫓는 동안, 자기 자신과 타인의 내면적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입니다.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장의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서로의 삶을 평가합니다. ‘좋아요’ 수가 곧 사회적 인정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사회는 ‘폼’을 중시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 본연의 가치와 깊이는 흐려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성공과 존재감에 매몰될수록, 내적 성숙과 인간적 깊이를 경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듭니다. 우리는 외형적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경쟁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정한 인간적 성취는 종종 잊혀집니다.


품격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보여주는 것인가?

역사 속에서 ‘품격’은 종종 권력층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해 온 도구였습니다. 단순히 내면의 성찰이나 인간적 성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위계 속에서 ‘보여지는 것’으로 형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품격은 개인적 가치라기보다는 사회적 신호로서 기능해 왔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식사할 때 손가락 세 개만 사용하는 예법을 지켰습니다. 단순한 식사법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신의 신분과 교양을 드러내는 사회적 신호였습니다. 잘못된 자세로 밥을 먹거나 예법을 지키지 않으면 곧바로 ‘품격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이는 개인의 내적 성숙과 관계없이 외형적 규범을 통해 사회적 위신을 확보한 사례입니다.

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사례도 비슷합니다. 궁정에서는 음식의 순서, 식기 사용법, 옷차림, 하녀가 입혀주는 옷까지 모두 ‘우아함’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규칙을 어기는 순간 즉각적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혔고, 이는 귀족들 사이에서 자신들을 평민과 구분 짓는 장치로 작동했습니다. 근대 영국의 신사들은 말을 탈 때 흙먼지가 튀지 않도록 세세한 태도를 신사적 품위로 여겼습니다. 신체적 행동 하나하나가 신분과 교양을 나타내는 사회적 언어였던 셈입니다.

이처럼 ‘품격’은 내면적 성숙보다는 외형적 연출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곧 권력층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화하고, 사회적 계층을 유지하는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품격은 스스로 내면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신호를 얼마나 정확하게 연출하는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연속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기업 임원들이 명품 시계를 차거나 고급 외제차를 타며 ‘품격’을 연출하는 모습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한국 기업문화 연구에 따르면, 임원의 외형적 품격은 동료와 부하 직원, 거래처의 신뢰와 위신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음, 식사 예법, 와인 지식, 명품 브랜드, 식당의 위치까지 모두 ‘당신은 나와 같은 계층인가’를 확인하는 사회적 기호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허례허식의 껍데기만으로는 진정한 품격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외형적 요소는 잠시 주목을 끌 수 있을 뿐, 인간적 깊이나 내적 성숙은 담보하지 않습니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보는 ‘품격 있어 보이는 것’은 실제 품격과는 별개로 존재하며, 진정한 인간적 가치와 내면의 성장은 여전히 그 안에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례 없는 존엄: 진짜 품격은 어디에 있는가

고대 철학자들은 진정한 품격을 외형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품격이 내면에서 비롯되며,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 말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해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내적 품격을 갖출 수 있다는 뜻입니다. 키케로는 품격을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기 절제”라 정의했습니다. 즉, 외부의 평가나 시선과 무관하게 자신을 통제하고, 도덕적 기준을 지킬 때 품격이 성립한다고 본 것입니다.

칸트는 인간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할 때 품격이 생긴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도덕법칙에 따라 행동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자신의 행위를 보편적 원칙으로 삼을 수 있을 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격이 유지된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습관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용기, 절제, 정직, 공정함과 같은 덕목이 품격의 근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품격이란 단순한 지식이나 겉치레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일관된 행위 속에서 체득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참된 자유와 품격이 내적 이성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욕망과 외부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이성을 따를 때, 진정한 존엄과 품격을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루소는 품격이란 타인과 비교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통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성실할 때 비로소 얻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진짜 품격은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타인의 시간을 배려하고, 약자를 깔보지 않으며, 자신보다 낮은 처지의 사람에게도 겸손을 잃지 않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태도가 바로 그 예입니다. 이러한 덕목은 외형적 장식이나 물질적 부가 없어도 빛을 발합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강조했던 ‘자기 절제와 공정함’은 오늘날 사회에서도 여전히 진정한 품격의 척도로 읽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화려한 옷을 걸쳐도, 위선과 오만으로 가득하다면 결코 품격은 생기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품과 외제차, 화려한 배경음악과 고급 레스토랑은 순간적 주목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적 깊이와 내적 존엄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진정한 품격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결국 품격이란 허례와 겉치레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책임, 그리고 절제와 겸손에서 비롯되는 내적 힘입니다. 그것은 시대와 문화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인간적 가치이며, 화려함이나 명성 없이도 충분히 빛날 수 있는 고귀한 속성입니다.


한국 사회는 왜 ‘폼’을 중시할까?

한국 사회에서 내면의 품격보다 외형적 ‘폼’이 중시되는 배경은 단순한 소비문화의 문제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조적 사회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시험 점수와 스펙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경쟁 중심 사회입니다. 학력, 성적, 자격증, 경력 등으로 사람을 등급화하고, 끊임없는 비교와 서열화 속에서 개인의 존재 자체가 점수화되고 평가됩니다. 면접장에서도 진정성이나 역량보다는 ‘그럴듯함’과 외형적 이미지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투, 외모, 의상, 자기소개 방식 등이 실력보다 더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곧 ‘존재’가 됩니다. 단순한 체면 차원을 넘어, 사람은 외형적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와 위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이는 한국 특유의 체면 문화와 집단주의적 동조 압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회학자 이광형 교수는 한국 사회의 상명하복식 위계질서와 동조 압력이 개인으로 하여금 내면적 성찰보다는 외형적 기준에 집착하게 만든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사회적 기대에 맞춘 ‘폼’을 연출함으로써 인정과 신뢰를 확보하려 합니다.

비슷한 현상은 중국에서도 나타납니다. 중국에서는 ‘명품=체면’이라는 문화가 강하게 작동합니다. 결혼식, 회식, 심지어 대학 입학 축하 자리에서도 과시적 소비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품이나 고급 음식, 고급 차량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신호가 됩니다. 반면 실리콘밸리와 같은 미국 서부의 기업 문화에서는 ‘노폼(no-form)’이 강조됩니다. 단순한 후드티와 청바지, 격식 없는 자기소개가 오히려 신뢰와 혁신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외형적 과시는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대비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상황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경쟁과 서열화, 집단주의적 압력, 체면 문화가 결합된 한국에서는 내적 품격보다 외형적 ‘폼’을 연출하는 것이 곧 사회적 생존과 연결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적 가치보다 외부 평가에 더 신경 쓰게 되고, ‘보이는 성공’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폼 중심 문화’가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한국 사회에서 외형적 ‘폼’을 중시하는 문화는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먼저 개인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외형적 평가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성취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과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서울의 대학가와 직장에서는 명문대 학벌, 외제차, 명품 의상, 고급 레스토랑 이용 여부가 곧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환경은 자연스럽게 비교와 경쟁을 강화하며, 자기 자신을 내면적으로 성찰하거나 장기적 목표를 설계하는 대신, ‘그럴듯하게 보이는 법’을 배우게 만듭니다.

심리학적 연구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한국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서는 20대 직장인 1,200명 중 약 65%가 외모와 겉모습 때문에 사회적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40% 이상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외형적 ‘폼’에 집착할수록 내적 만족감과 자기 효능감은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공동체 차원에서도 영향은 뚜렷합니다. 집단 내 동조 압력과 체면 문화가 결합되면서, 구성원들은 서로의 ‘폼’을 평가하고 이를 기준으로 신뢰와 우정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화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 내 회식 문화에서도 외제차로 온 임원이나 명품 브랜드를 착용한 동료가 더 신뢰받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개인의 능력이나 인간적 성품과 무관하게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신호로 작동합니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건강성과 진정성 있는 관계가 약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향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폼 중심 문화’는 동기 부여와 목표 달성에서 일정한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평가와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을 촉진하고, 외형적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전문성과 기술을 향상시키는 사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학업과 외적 활동 모두에 신경 쓰면서 자기 개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의 ‘폼 중심 문화’는 이중적입니다. 개인에게는 내적 성숙보다 외형적 이미지를 우선하게 만드는 압박으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성취 동기와 자기 계발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공동체 차원에서는 집단 내 위계와 신호 체계가 강화되어 관계의 표면적 질서를 유지하게 하지만, 진정성 있는 인간적 관계와 내적 존중은 약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구조적,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경쟁 중심의 교육과 취업 구조, 강력한 집단주의적 문화, 체면 문화가 결합하면서 외형적 ‘폼’이 곧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품격과 내적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형적 성공과 사회적 신호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적 가치와 덕목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짜 품격은 어디에서 오는가

품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돈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형이나 사회적 지위, 명품과 화려한 경력으로는 진정한 품격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품격은 오히려 일상 속 태도와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다음과 같은 태도가 그 핵심입니다.


자기 절제: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올바른 선택을 하고, 욕망과 충동에 휘둘리지 않는 힘입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양보하거나, 회식 자리에서 과음을 자제하는 일상적 행동도 자기 절제의 작은 실천입니다.


타인 존중: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고 공감하며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직장에서 후배나 동료의 의견을 경청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가 이에 속합니다.


겸손함: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명성을 쌓았더라도 새로운 지식을 배우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겸손입니다.


책임감: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태도입니다. 잘못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며,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행동이 이에 해당합니다.


일관성: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윤리적 기준을 지키는 용기입니다. 권력이나 이익이 달린 상황에서도 원칙과 도덕을 지키는 행동이 바로 일관성에서 나옵니다.


사회심리학 연구들은 일관성과 겸손이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얻는 핵심 요인임을 보여줍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사람보다, 작은 일에도 원칙을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 더 오랜 신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최근 이러한 내면적 품격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눈에 띕니다. 여러 교육청은 학교 현장에 ‘배려와 존중’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업 성취뿐 아니라 친구와의 관계, 협업과 소통 능력을 평가받으며 성장하도록 지도받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리더십 교육에서 ‘소통과 존중’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영진과 팀원 간 신뢰를 쌓고,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조직 건강을 중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짜 품격은 외형적 ‘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절제와 타인 존중, 겸손, 책임감, 일관성이라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화려함이나 명성 없이도 존재하며,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진정한 존경과 신뢰를 만드는 힘이 됩니다.


외형적 ‘폼’을 넘어: 진정한 품격과 내적 존엄 실천 사례

한국 사회에서는 외형적 ‘폼’이 여전히 개인과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외형적 과시를 멀리하고 내적 품격과 존엄을 실천하는 사례가 눈에 띕니다.

첫 번째 사례는 사회복지 활동가 박모 씨입니다. 그는 서울의 한 청소년 쉼터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고급 의상이나 명품 차량 없이도 동료와 청소년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박 씨는 청소년 개개인의 의견과 시간을 존중하며, 작은 약속도 반드시 지키는 태도로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의 외형적 ‘폼’은 소박했지만, 진정성 있는 행동과 일관된 책임감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스타트업 대표 김모 씨입니다. 그는 외형적 화려함보다는 팀원과의 신뢰 구축, 업무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입사 면접에서 외모나 스펙보다 지원자의 성실함과 협업 태도를 평가했고, 사내에서도 직책에 상관없이 누구의 의견도 경청하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기업은 구성원 만족도가 높고, 직원 이직률이 업계 평균보다 낮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외형적 ‘폼’이 아닌 내적 존엄과 책임 있는 행동이 기업문화와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준 대표 사례입니다.

청년층 사이에서도 ‘폼’을 내려놓고 내적 가치에 집중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일부 대학생들은 고급 명품보다는 중고 의류와 소박한 생활을 선택하며, 자기 계발과 학문적 성취, 친구와의 신뢰를 더 중시합니다. SNS상에서도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기보다 일상 속 소소한 경험과 진솔한 감정을 공유하는 계정이 오히려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의미가 있습니다. 칸트가 강조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하는 태도’, 키케로가 말한 ‘남이 보지 않아도 지킬 수 있는 자기 절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습관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는 덕’은 현대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외형적 장식이나 사회적 평가 없이도, 행동과 태도를 통해 품격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실천 사례입니다.

결국 외형적 ‘폼’은 순간적 주목과 사회적 신호를 제공할 수 있지만, 진정한 품격과 내적 존엄은 내면에서 비롯됩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며, 이러한 실천은 개인의 내적 만족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신뢰와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외형적 성공과 사회적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내적 기준을 지키는 사람만이 허례 없는 존엄과 고귀한 품격을 갖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종합 및 시사점

역사적으로 ‘폼’과 ‘존엄’은 늘 긴장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폼’은 권력과 신분을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존엄’은 인간 본연의 가치이자 사회적 연대의 토대였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의 예법, 유럽 귀족의 복잡한 의례, 근대 영국 신사의 행동 규범 등에서 볼 수 있듯, 외형적 품격은 사회적 위계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장치였습니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과 자본주의가 결합하면서 ‘폼’이 과도하게 부풀려졌습니다. SNS는 일상의 과장을 유도하고, 소비는 곧 정체성이 되었으며, 사회적 지위는 외적인 장식으로 포장됩니다. 서울의 고급 아파트, 외제차, 명품 의상, 학벌과 스펙은 여전히 사람들의 사회적 가치를 가늠하는 지표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품격은 외형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타인에 대한 존중, 공동체에 대한 책임에서 시작됩니다. 자기 절제, 타인 존중, 겸손, 책임감, 일관성—이 다섯 가지 태도가 바로 현대 사회에서 실천 가능한 내적 품격의 핵심입니다. 사회심리학 연구에서도 일관성과 겸손이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얻는 핵심 요인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역사는 늘 ‘보이기 위한 품격’과 ‘살아내는 품격’ 사이의 긴장을 반복해왔습니다. 과거에는 신분 유지의 수단이었고, 오늘날에는 브랜드와 학벌,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인간 존엄’입니다.

“당신의 품격은, 누가 보고 있을 때만 존재합니까?” 진짜 품격은 타인의 시선이 사라졌을 때 드러납니다. 그것은 명품도, 학벌도, 직함도 아닙니다. 그것은 행동과 선택에서 나타나는 내면의 윤리이며, 일상에서 반복되는 작은 실천 속에서 드러납니다. 사회적 인정이나 외형적 장식이 아닌, 자기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삶이 바로 진정한 품격입니다.

이 시대의 품격은 더 이상 신분의 표지가 아니라 존엄의 실천이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배려와 존중, 기업에서 강조되는 소통과 책임, 일상에서의 겸손과 자기 절제 모두가 그 실천의 장이 됩니다. 우리는 외형적 ‘폼’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적 품격과 인간 존엄을 회복하는 사회적, 개인적 노력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요구되는 진짜 품격입니다.




keyword
이전 06화<오늘도 허세롭게 살았습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