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당시에는 포크가 대중화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포크를 사용하고 있었던 중동과 비잔틴 제국을 통해 포크가 중세 유럽에 전파되자 초기에 중세 유럽인들은 이에 심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 사회에에서는 익숙했던 기존의 것들은 모두 기독교적 신의 창조물이라 여기고 자신들이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물이나 사상이 대해선 신성모독이라는 명분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며 무조건적인 배척을 행하는 것이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성직자들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포크의 사례에서도 포크를 보며 마치 이교도의 신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신 포세이돈의 삼지창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이교도의 신을 상징한다며 신성모독을 주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세의 유럽 사회에는 포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중세 유럽에선 주식이 빵과 곡물을 물과 같이 끓인 죽이나 수프 같은 것들이었기에 칼이나 손으로 빵을 잘라먹고 죽이나 수프를 떠먹는 수프만 있으면 그만이었습니다. 포크의 필요가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포크를 이상하게 생긴 물건으로 치부하며, 심지어 신성모독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종교개혁 등이 일어나고 점점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기독교적 권위가 예전만 못해짐에 따라 포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게 된다. 유럽의 귀족들이 식사 매너에 포크를 사용하게 됩니다. 포크는 고기를 손에 묻히지 않아 귀족들의 품위를 지켜주고 우아하게 귀족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식사 문화의 의미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는 곧 귀족들에게 대유행처럼 번지게 된다. 기득권층의 하나였던 귀족들에게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다르게 또는 특별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포크는 귀족의 식사 매너에 대유행처럼 퍼져 포크가 정착되게 됩니다.
참조
유럽에서의 포크의 사용은 11세기경 중세 유럽 시대에 비잔틴 등과 무역을 활발히 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먼저 유행하게 되었고, 16세기부터 전 유럽에 포크가 점점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미식 국가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경우도 식사 매너 등은 16세기에 이탈리아의 카테리나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카테리나가 이탈리아에서 요리법, 식사 예절이나 패션 등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트렌드들을 프랑스로 들여왔다고 합니다. 이후 프랑스도 포크가 귀족적인 식문화에 확고히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됩니다. 17세기와 18세기의 프랑스는 로코코 양식이라는 화려하고 귀족주의적인 문화예술 양식이 대유행했기에 이런 포크를 사용한 식사문화는 귀족들을 더 우아하고 품위 있게 보이게 하는, 특별하다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다 근대 들어 공장을 통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포크도 대중들에게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포크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