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남녀노소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라면입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라면을 먹을 때 같이 먹어야 하는 것을 고르라 하면 많은 한국인들은 라면에는 김치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둘의 영양학적 음식 궁합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트륨이 어느 다른 음식들보다 많이 들어있는 라면과 김치는 건강에 좋지 않은 궁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에게 이 음식들의 궁합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던 걸까요? 그리고 라면은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소울푸드가 된 것일까요?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1963년입니다. 한국의 최초의 라면은 삼양라면으로 박정희 정부의 지원으로 삼양 전중윤 회장이 1960년 초에 일본에서 라면 제조 방법을 들여왔다고 합니다. 최초의 삼양라면은 닭 국물 육수 베이스의 하얀 국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라면을 한국인들의 식문화에 정착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196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삼양라면을 맛본 뒤 한국인의 입맛에는 얼큰하고 매운맛을 좋아하니 고춧가루를 첨가하면 더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후 삼양은 매운 국물의 라면을 개발해 지금의 라면이 빨갛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흔히 접한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역사입니다.
이 시기 박정희 정부는 쌀 부족으로 인해 쌀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밀가루 사용(미국의 밀 지원 아래)을 늘리기 위한 일환의 정책인 혼분식 장려 운동을 실시합니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 생산량 부족으로 쌀 소비 절약(절미 운동) 및 혼식과 분식을 독려하는(혼분식 장려운동) 등의 한국인의 식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혼식은 밥을 쌀로만 짓는 게 아니라 잡곡을 섞어지어먹는 잡곡밥을 말하고, 분식은 쌀이 아닌 다른 곡식으로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밀가루 음식 등을 말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쌀 소비를 줄이고 주식을 쌀 대신 밀가루로 대체하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밀가루는 미국에서 잉여곡물로 취급되어 가난한 미국 동맹국들에게 대량 원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를 값싸게 들여와 많은 양을 싼값으로 한국인들에게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그 당시 밀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밀이 쌀보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고 선전했습니다. 또한 주식을 밀로 하는 서양인들을 따라 해야 더 건강하고 질병도 고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국가의 적극적 선전과 대중매체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그 당시 라면의 인기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고깃값이 비쌌던 그 시절에 소고기맛이 나는 분말가루의 감칠맛은 그 당시 가난했던 한국인들에게 소고기 국물의 대용품으로도 인기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라면을 먹었던 식문화가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맛에서도 훌륭했기에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20세기 중반부터 라면은 한국인들의 소울푸드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섭취량은 세계 1위로 5일에 1개 정도 소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한국은 매우 가난한 국가였기에 라면에 곁들일 반찬이 김치 말고는 마땅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라면에 김치를 먹는 자연스러운 식문화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식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식문화는 현재의 자손들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에 의해 경험되어 그 맛에 길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라면이 우리에게 정착되는 과정을 보면 이 운동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요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당시 이 장려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쌀밥을 먹는 것이 마치 죄인 것 마냥 사회에서 질타받았다는 점이 그 당시 시대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많은 다양한 문화들은 이런 과정으로 정착하고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