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어른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며
지난가을, 이근후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글로 남기며 이렇게 썼다.
"앞으로 적을 글은 이근후 선생님의 삶에서 얻은 지혜와 경험을 후대에 남기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다."
그로부터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었다. 마음속에선 여러 번 펜을 들었지만, 실제로 올린 글은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선생님의 삶이 가진 깊이에 내가 아직 닿지 못한 것 같다는 조심스러움도 있었다. 말의 무게 앞에서 나는 늘 한 발짝 물러서곤 했다.
하지만 멈춰 있던 시간 속에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귀에 오래 남는 한 문장, 삶의 어느 틈에 불쑥 튀어나와 나를 다시 멈추게 만드는 문장. 그런 말들이 다시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말들의 시작에는, 또 한 명의 ‘큰 어른’이 있었다.
이어령.
바로 대한민국의 문화를 이끌었던 초대 문화부 장관이자 지식의 거장. 당시 나는 김종원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었고, 그 인연으로 이어령 선생님의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스물다섯이었던 내가 긴장하며 평창동의 긴 언덕을 한없이 올랐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선생님의 작업실 문을 열던 순간.
선생님은 암 투병 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신은 또렷했고, 말투는 단단했다. 그 곁에 있자, 자세가 절로 고쳐졌다. 햇살이 고요히 비추던 작업실 한 켠에서 선생님은 세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들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그날 들은 말 중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문장이 있다.
"사람은 한 방향으로 뛰면 등수가 있지만,
360도 방향으로 뛰면 모두가 1등이야."
늘 앞서 가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뒤처졌다는 느낌에 조급했다.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 먼저 보이고, 부족한 걸 채우려 애썼다. 선생님의 말은 처음으로 관점을 바꿔주었다. 지금껏 달려온 방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아직 바라보지 않은 방향이 많다는 걸 알려주는 문장이었다.
선생님의 또 다른 유명한 문장.
"젊으면 늙고, 늙으면 죽는다."
그 말을 직접 들었을 때의 울림을 잊지 못한다. 그 말 이후에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그러니 그 사이 어디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지."
죽음을 가까이 두고 말하는 삶의 언어는 훨씬 명료하고 진실했다. 그 말들이 씨앗이 되어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를 바꿨다.
그날 이후, 나는 어른의 말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어른의 말은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말들이었다. 내 삶을 모른 채 툭 던져지는 말처럼 느껴졌고, 굳이 들을 필요도 없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이어령 선생님의 말은 달랐다. 그건 누군가의 오랜 삶 안에서 나온, 살아 있는 언어였다. 그 경험이 바로 다시 어른의 이야기를 찾게 된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한 분의 큰 어른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정신과 의사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이근후 선생님이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며, 문득 떠올랐던 것도 결국 어른의 말이었다. 나에게 처음 파동을 주었던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처럼, 이근후 선생님의 말 또한 불안했던 삶의 중심을 조금씩 다시 잡게 해 주었다. 지금부터 하나씩 꺼내 보려 한다. 오래된 지혜와 지금의 삶이 만나는 지점을. 어른의 말과 청년의 길이 교차하는 그 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