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이후 잠을 많이 자게 된다. 이틀 만 약을 먹고 몸이 좋아져서 푹 쉬면서 보냈다. 일어나니 엄마께 전화가 와 있었고 바로 전화를 드렸다. 내가 자는 3시간 동안 (엄마는) 이것저것 먹거리와 간식, 반찬을 주고 가신 모양이다. 내가 코로나여서 집 안까지는 오지 못하시고 격리 끝난 남편에게 전달하신 모양. (친정과 우리 집은 가까운 거리다.)
감사한 마음에 거실로 나와보니 커다란 봉지에 밤이 한가득이고 김치찌개에 다양한 반찬들이 가득가득이다.
나도 안다. 이 상황에서 고생하신 엄마께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딸들도 많을 거라는 걸...
근데 난 마음이 불편해졌다.
왜 그랬을까?
너무 많은 음식들이 있고 혈당관리로 인해 내가 조심해야 하는 반찬들이고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안 먹는 반찬들도 많았고 밤은 몇 번 말씀을 드렸었는데 잊으셨는지 (시댁에서도 항상 밤을 가득 삶아주셔서 항상 냉동실에 가득 차서 먹다가 결국 버리게 되었던...ㅠㅠㅠ)
그 양에 놀랐다. 밤은 탄수화물이 주라서 일단 나도 잘 먹지 못할뿐더러...
그래도 정성으로 해주시고 코로나라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해주신 거니까.. 나중에 다 먹지 못하더라도...
감사히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고 (마음 한편에선 내가 나에게) 뭐라고 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마음도 약하고 희생적이시고 항상 자식들 위해서 사셨던 분이고... 난 엄마를 좋아했고
항상 엄마가 가여워서 많이 울었었다. 그래서 엄마 말을 더 잘 들었고 엄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결혼 초까지는 애를 써왔다. 그때마다 엄마는 만족스러워하셨지만 성인이 된 내 의견과
나의 선호도를 물어보지 않으시고...
엄마가 생각하는 최선으로 나를 대하셨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이상한 반발심, 반항이 올라왔던 것 같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난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더라도 내가 쓸 것들을 숟가락도 앞치마도 이불도 (엄마와)
같이 고르고 싶었다. 처음 살림이니까 내가 아무리 잘 몰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사고 싶었다. 엄마는 신혼 초에 우리 집에 오시면 냉장고 정리부터 시작해서 화장실 청소를 하시고 나랑 대화다운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엄마가 그렇게 청소만 하다가 집에 가시면 너무 속상했다. 뭐가 문제지?) 그리고 나에게 물어보지 않으시고 무언가를 만들어오시고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계속 내 옷과 애들 옷들을 사다 주셨다. (중고매장에서 예쁜 옷들을 사다 주셨는데 중고인 것이 싫은 게 아니었고 너무 많이 사 오시니 안 입는 옷들이 많아졌다. 싸고 예쁘니까 가실 때마다 사 오셨던 것 같고 주는 것이 엄마의 낙이 되셨다.)
난 엄마가 힘들게 버시는 돈으로.. 엄마를 자신을 위해 쓰기를 바랐다. 그리고 애들도 좋아하는 스타일의
자신에게 편한 옷만 몇 벌 입으면 충분한데 코트도 여러 벌주시고 잘 입고 있는지 물으시고... 불편함이 계속 남아있었다.
애들이 불편해서 안 입는 옷도 있었는데 사준 옷 잘 입고 있냐고 계속 물으시고... 솔직하게 말을 하면 괜히
미안해지는... (어떤 옷은 좀 불편한지 잘 안 입네요.)
잘 몰랐다. (그때는) 그냥 내가 좀 못된 딸인가 싶었다. 남들은 부러워할 상황인데 난 고마운 줄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딸인가? 죄책감도 같이 들었다.
오늘.. 엄마가 다시 연락이 오셨고 또 궁금해하셨다. "엄마가 만들어준 거 잘 먹었어?"
"아니요. 아직이요. 좀 전에 일어나서 조금 있다가 먹으려고요."
"맛있는데 어서 먹지? 불고기랑 많으니까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서 두고 꺼내 먹어. 니가 좋아하는
고추 반찬이랑 콩나물, 호박무침... 밤도 삶아 먹고."
"네. 엄마 근데 제가 당 관리 때문에 전처럼 많이 먹지를 못해요. 밤도 그렇고요. 애들이 먹긴 하는데
우리 애들이 양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요. 엄마 주시느라 고생하셔서 이런 말씀드리는 게 좀 미안한데요.
양이 좀 많은 거 같아요."
엄마는 분명 섭섭하셨을 거다. 좋은 의도로 애를 쓰셔서 챙겨주신 거고... 그냥 그런 말 하지 말고 너무 맛있고 고맙다고 받으면 좋았을 거다. 남에게 냉정하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 없지만 우리 집에선 내가 냉정하고 정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엄마. 제가 전처럼 양껏 먹고 싶은 걸 다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속상하네요. 남으면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아깝기도 하고요. 하시느라 돈도 많이 드셨을 텐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 항상 자식을 위해 희생하셨던 엄마에게 (이럴 때면) 왜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걸까?
난 엄마가 한 번쯤 물어보시고 준비하시거나 오셨으면 어땠을까 싶다. 내 생각과 내 상황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셨다면 내가 상황을 말씀드리고.. 엄마가 섭섭할 일도 힘드실 일도 없었을 텐데... (당 관리는 알고 계시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엄마 탓도 아닌 거다.
엄마는 모르고 그러신 거고...)
친정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리워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나의 이런 글들이 그분들께는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난 엄마를 사실 많이 사랑한다. 엄마 없는 세상을 한 번도 그려 본 적이 없으니.... 다만... 난 엄마와 더 잘... 건강히 지내고 싶다. 서로가 원하는 사랑을 주면서...
(물론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기에 그런 사랑을 주는 건 어렵다는 것을 안다.)
물론 나의 딸과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는 가난한 6남매의 둘째 딸이었고 나처럼 엄마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크지도 못하셨다.
엄마는 아마 엄마가 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나에게 주고 계신 것도 맞다.
나의 딸도 나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딸에게 나도) 엄마가 좋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마음이 정리가 된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엄마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엄마가 내 곁에 살아계시니까 그것이 나에게 의미가 크고... 이젠 연세도 많으시니 엄마가
변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그런 엄마를 이해하는게 좀 더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나도 엄마에게 내 마음과 생각, 감정을 계속 전달해나갈 것이다. 그래야 엄마도 딸이 퉁명스럽게 말하는게 엄마가 싫어서가 아니라
(딸)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실 거니까... 그런 딸을 조금씩 받아들여가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