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대학원 논문을 쓸 때 논문 통계 돌리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통계학과 아르바이트 생에게 도움을 청해서 돈을 주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의욕만 앞서서 그 당시 그쪽으로 약하면서도 새로운 통계를 사용해서 결과를 얻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석박사 통합과정 졸업을 앞둔 분과 연락이 닿았고 그분은 카페의 장이셨어요.
전혀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이신데 자신이 곧 미국 유학을 가는데 무언가 선한 일을 하고 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고 그동안은 비용을 받고 부업을 했는데.. 이번엔 (유학 가기 전 마지막 선물로) 그냥 왠지 모르게 무료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어요.
(그분 말로는 자신이 그동안 참 좋은 분들을 만났고 좋은 기회가 되어 유학을 가게 되었기에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어요.)
서울대는 처음 가봤는데 그분의 기숙사 근처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딱 한번 만났고 자료를 주고받으며 전화로만 소통을 했었죠. 제 논문 통과 즈음 그분은 미국 유학을 가셨고요.
지금도 그분 생각이 문득 납니다. (한번 봐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분에 대한 고마움은 남아있네요.) 얼굴도 본 적 없는 다른 대학의 학생에게 어떠한 비용도 없이 선을 베풀어준 거잖아요.
그분에겐 전공학과니까 통계 자체가 어려운 일은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이고요.
처음 뵈었을 때 학생 식당 밥이라도 사드리려고 했는데 그것도 마다를 하셨어요.
생각해보면 어떤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 갑자기 알지 못하는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새로운 길이 열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예 모르던 사람도 있었고요.
제가 이와 관련된 글을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자신도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 연락은 안 되지만 잘 사는지 궁금하고 너무 고마웠다고 하시는 겁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고 받기만 하는 것도 주기만 하는 것도 안 좋잖아요. 겉으로 보면 세상의 공식은 그러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큰 원리가 있어 보여요.
저도 몇 번의 은혜를 입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울이 너무 심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밥 한 끼를 함께 먹는 시간을 내고 싶다거나 나에게 큰 잘못한 사람에게 괜찮다 그럴 수 있다고 가벼이 넘어가 주고 싶다는 생각이요.
제가 몇 년 전 일을 시작하면서 새로 배우는 일이라 엄청 고생하고 민망하고 힘들 때... 잠깐 쉬는 시간에
**토스트 집에서 간식을 먹었었거든요. 제가 자주 오니까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게 되고 일 배우느라 좀 힘들다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그분이 저에게 해준 일상적인 이야기, 아주 작은 공간(2평도 안 되는 공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심)에서 일하시면서도 행복해하는 미소와 기쁨이 저에게 전달이 되더군요. 무슨 말들이 깊이 오고 간 것도 아닌데... 그저 지친 저의 영혼에 어깨를 토닥여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힘이 되더군요.
그 근처를 지나가면 생각이 나고 아주머니가 계속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바라게 되고요.
문득 잊고 있었던 귀인들이 있으신가요?
인생에 스치듯 지나간 인연들, 다시 못 보지만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며 살아가고 계시겠구나.. 마음이 따스해지는 분들...
이 세상은 크지만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 각자는) 연결되어 있나 봅니다. 전 지금... 가을을 느끼며 감사한 분들 생각나는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