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지인은 모임마다 먹거리를 준비해 갔다. 간식을 가볍게 사가는 것이 아니라 반찬도 몇 가지씩 만들어가고 바리바리 가져갈 것을 준비하느라 전 날 장을 보고.. 당일 아침도 분주했다. 운전을 하지 않아서 대중교통으로 짐을 나르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꼭 준비해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주 1번씩 모이는 모임이라 부담도 될 터였다.
처음엔 친한 나에게 자랑을 했고 기뻐 보였다. 사람들이 정성껏 싸온 것을 너무 고마워하고 맛있게 먹는다고... 뿌듯하다고 했다. 얼마 후... 지인은 점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준비하지 못한 날엔 한숨까지 쉬었다.
내가 지인을 만나러 간 날.. 그녀는 (차를 가지고 간 나에게) 마트에 가서 장을 보자고 하기도 했다. 차츰.. 지인은 모임 자체에 대한 부담으로 핑계를 대고 일주일 1번 모임을 빠지는 일까지 생겼다. 나중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 번은 물었다. "근데.. 왜 그렇게 힘든데 가져가려고 해?"
지인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냥 가서 같이 시켜먹거나 사 먹으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간식만 조금 사가도 충분하지 않을까? 돌아가면서 하던지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또 다른 지인도 그랬다. 걷기 모임에 엄청난 간식과 다 함께 먹을 음식, 음료, 후식까지 싸왔고 너무 양이 많아 끄는 카트까지 끌고 왔다. 가볍게 걷기 산책과 운동을 하고 내려오면서 점심을 사 먹으려고 했는데... 음식을 다 가져왔고 결국 짐이 많아서 가파른 곳이라운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무거운 카트를 끌고 운동을 할 수는 없는 법. 우리 만남의 목적은 사실 운동이었다.
처음엔 배려심이 많은 그들의 모습에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오히려 섬기고 노력하며 베푸는 모습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인 안에 꼭 필요한 사람, 좋은 사람, 모임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은 욕구를 보게 되었다. 나 또한 그런 형태는 아니지만 마음속에 비슷한 욕구가 숨겨져(?) 있기에... (지인들 속에) 그러한 욕구를 발견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항상 반듯하고 성실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어릴 때도스스로 알아서 잘했던 사람들이었고 말썽이라곤 부려본 적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은 어리광을 부려본 적도 없었다.)
장녀 같은 딸이었고 공부도 잘했고 그래야만 인정을 받는 존재였다. 평가에 익숙했고 무언가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으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시절을 보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언가 잘 해내야만 했다.
다행히 두 지인 모두 스스로 자신들의 결핍과 그에 따른 보상 행동을 깨닫게 되었고 지금은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나 같은 경우엔 물건이나 잘해주는 것으로 보상을 하진 않지만... 무언가 위로해주고 상대방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주면서 그런 욕구를 채우고 있는지 모른다.)
나와 지인들의 행동 자체가 문제가 된다기보다는 그것을 일으키는 원인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타인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자신의 행동 속 숨은 욕구들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발견하고 인식하게 되면... 차츰차츰 변화를 이끈다. 남이 아무리 말해줘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직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에 그런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