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게 집에 오니 남편이 행복하게 게임을 하고 있다. 야근으로 피곤한 한 주를 보냈던 남편에게 유일한 낙인 게임.
남편은 퇴근 후, 주말엔 게임을 한다.
(장시간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설거지 통에 그릇이 쌓여있다. (아침에 함께 먹은 것부터 그대로)
컴퓨터는 공용공간인 거실에 있기에 설거지를 하면서도... 아이처럼 기분 좋게 게임을 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른의 배려가 있는) 남편은 게임할 때사운드도 끄고 한다.
이 날따라 남편의 뒷모습이 미워지기 시작하고 집에서 쉬면서 설거지 좀 해놓지 싶은 불만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설거지하면서 남편 들으라고 하는 말.
"당신이 게임하는 건 안 미운데 설거지 좀 해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네. 몸도 피곤하고 왜 이리 지치는지... 게임은 재밌지? 오늘은 미워질라 하네." 떠본다.
남편은.. 주변을 못 본다.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닐 때가 있다. 해달라고 하면 한다. 다만... 말을 안 하면 하지 않는다.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못함.
남편은 내 말에 눈치가 보이는지 미안한(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남편의 당황한 표정. 이때다 싶어 한 두 마디 잔소리가 나왔다.
나: "내가 하라고 했으면 했겠지? 잘 안 보인 거지?"
남편: "응. 하라고 하면 하지. 많이 피곤해?"
나: "응. 많이 지치네. 왜 이리 몸이 힘든지.."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내가 지금이라도 할까?> 였으나
그 말은 없다.
그렇게 설거지가 끝나갈 때쯤... 나도 심통이 나서 예전 이야기를 꺼낸다.
(이때가 싸움 시작 지점 불씨를 붙이는 1차 위기 지점)
머리로는 안다. 여기서 그만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두 가지가 왜 생각났을까? (남편의 무심함을 꼬집고 싶었나 보다.)
기저귀 필요했는데 남편이 전화 안 받아서 고생했던 기억 에피소드. 전화를 항상 무음으로 해놓는 남편은 뒤늦게 알고도 사과하지 않았었다. (백만 년 전 이야기...ㅜㅜ 내가 적으면서도 민망하다. 그 당시 혼자 아이 데리고 뒤처리하느라 진땀 뺌. 남편이 미안해할 줄 알았다.)
남편은 일부러 안 받은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게 끝!
=> 이 기억이 왜 났을까? 무심함. 내 곤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
두 번째 기억이 스친다. (백만 년 전 이야기)
내가 애들 데리고 1박으로 놀러 갔다 온 날... 급히 나가느라 못 치운 조개껍데기가 그대로 있었다. 하루가 지난 시점에도 그대로 둬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안 보였단다.
"지금 생각해도 당신이 너무 했지.그렇지?"
(2차 싸움 위기)
남편: .....
아차! 내가 남편을 비난하는 말로 접근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괜히 말했다 싶은 옛날이야기.
설거지를 그대로 둔 무심함에 떠오른 예전 기억.
남편은 해놓으라 하면 했을 텐데..
남편은 별 말이 없고... 자신은 주변을 잘 살피지 않기에 정말 몰랐다고 했었다. 지금도 안 보였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