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레즌트 Nov 21. 2022

엄마. 이젠 그냥 편하게 사시면  안 될까요?

 내가 냉정한 딸이 된 이유.

타인 배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엄마. 나이가 드시면 조금은 내려놓으실 줄 알았다. 곧 70이 다 되어가시는데.. 내가 볼 땐 우리 엄마가 제일 형편도 어려우시고 가여운데 엄마는 이모들 챙기고 삼촌 챙기고 숙모와 조카들까지... 걱정하고 챙기시느라 (늘) 애를 쓰신다.


동생도 타인 배려적인 성향이지만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억울하고 힘들어져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결혼 후 바운더리를 쳐버린 큰 딸인 나. 

엄마는 나를..  약간 냉정한 딸로 인정하시곤

더 이상 경계를 넘어서진 않으신다.

 

동생은 엄마와 비슷한 성향이 많다 보니 결혼 후에도

엄마의 갖은 부탁을 챙기느라 지쳤고 언니인 나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언니인) 나는 듣다가 (남에겐 안 그래도 동생에겐)

직면을 시켜버리니.. 언니한테도 공감받지 못했다.

동생이 정서적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이 답답하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정도 많고 항상 타인을 생각하시는 (지나치게?) 따스한 분이시다. 그 이면에는 인정 욕구가 강하시다.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그 마음..

나도 그 마음이 뭔지 안다.


평생을 그렇게 타인을 생각하며 좋은 사람으로 살아오셨고 우리에게도 잘해주셨다. 다만 엄마의 희생을 보며 아이로서 느끼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많이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운 적도 많았었다.


정서적으로 분리되면서 건강한 모녀 관계로 자리 잡았고 엄마와 정말 (많이) 편안해지고 서로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결혼 후 3년은 (정서적 분리 과정이) 많이 힘들었다.


엄마께서 동생에게 과도한 부탁을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잘 들여다보면 자잘하지만 과한 도움을 청하고 계셨다.



최근 일이다. 큰 이모께서 형제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부터 선물을 받지 못한 그 한 명 형제가 신경 쓰이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결국 엄마 돈으로 그 형제에게 선물을 사주기로 결정하셨다고 한다.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


그 형제가 서운하고 섭섭해할까 봐 이모가 사준 것처럼 해서 갖다 주려고 하신 것 같다. 그런데 엄마는 그 선물 비용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셨고 동생을 통해 저렴한 곳을 알아봐 달라고 하시고.. 하나 골라서 주문해주면.. 엄마가 대신 돈을 보내주신다는 거였다.


문제는 동생에게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자주 있었고 엄마는 형제 중 누군가의 생일에 동생도 (생일자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했으면 바라셨다. 엄마는 동생이 잘 챙기는 성격이니 (선물 받은 당사자에게) 생색이 나실 테고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딸(나에겐 동생)과 함께 선물을 주게 되는 거였다.


동생은 큰돈이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바라시는 것 같아서 계속(매번) 눈치 보며 챙겨야 하는 상황들에 지쳤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동생들, 언니, 오빠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데... 중간 역할을 항상 도맡아 하시고 중재자로 화해를 시키고.. 다들 (한 명도) 섭섭하지 않게 고민하시며 챙기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엄마는 그런 과정 속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시는 것 같고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느끼시는 것 같았다. (내 눈에 그게 보이니 ㅠㅠㅠ)


엄마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하지만 엄마가 타인의 눈치를 보다가 정작 엄마의 행복을 놓치고 사신 것 같아서 참 속상하고 먹먹하다. 그런 엄마께는 나의 솔직함이 냉정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상대방이 섭섭할지 모르니 핑계를 대거나 하얀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대방에게 숨기고 싶어 하실 때가 있다.



10 년 전.. 엄마와 이모께서 (할머니께서 충격받으실까 봐 걱정되어) 삼촌의 병을 숨기시려고 했었다. 삼촌이 멀리 외국에 나갔다고 하고 (삼촌이) 돌아가셔도 할머니는 절대 모르게 거라고 하셔서...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 연세가 많으셔서 걱정되시는 마음은 알지만 (사랑하는) 자식이 죽은 줄도 모르고 사는 건 너무 불행한 거 아니냐고... 말씀드렸다.


'엄마라면 자식의 죽음도 모르고 장례식도 가지 못한 채 사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엄마. 이모. 그건 아니에요. 빨리 사실을 알려서 삼촌 가시는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게 맞아요. 엄마.. 그건 할머니를 위한 게 아니에요. 나중에라도 아시게 되면 평생 한이 되실 일이에요.'


다행히 할머니는 알게 되셨고 삼촌의 마지막 2주를 함께 하셨다. 서로 못다 한 말들을 하시고

사랑을 표현할 시간이

주어졌었다.





몇 번 엄마께 직면을 시켜드리고 그건 착한 게 아니라 엄마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러신 거라고 말을 한 적도 있다. 남을 위한다 하시지만 엄마를 위한 거라고.. (그 말을 하면서 내 마음도 아팠다.)




지금은.. 엄마에게 그렇게 사시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하진 못한다. 엄마가 평생 살아오신 방식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느낀다.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드리고 싶지도 않다.

(엄마에게 너무 가혹할지 모르고 엄마의 공허함을

내가 채울 수도 없지 않은가...? 엄마에게 그게 너무 중요했으니까.)


지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말씀드릴 때는 있다.


"엄마. 나는 정말로 엄마가 가장 불쌍하거든요. 엄마가 이제는 엄마 자신이 먹고 싶은 것, 엄마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하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친척들 챙기시는 것을

조금은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어요.

객관적으로 엄마가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엄마가 제일 고생도 많이 하셨고...

이젠 진짜 엄마 자신만 챙겨도 되어요."


우리 아이들 옷도 자주 사주셨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우시니 중고매장에서 많이 사오시기도 했다. 아이들 코트가 집에 있는데 갈 때마다 사다주시는 엄마의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기쁘지가 않았다. 


동생은 그때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서 엄마께 사진을 찍어드리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올해 입을 옷이 이미 있고 수납공간도 부족하니 그냥 조카들 사주시고 엄마 옷 사시는 게 더 좋아요. 지금 사주신 옷들도 내년까지 충분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많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섭섭하셨을지 모른다. 내가 기쁘게 다 받을 수

없었던 건... 한 해 입고 말 옷들이 넘쳤고

계속 좋아하면 더 많이 사다 주실 것 같아서였다. 냉정하게라도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냉정한 딸이 되어야 했다. 

나라도...


애들 내년에 입히라고.. 크면 입히라고 미리 사다주시고 또 사다주시고.. 어렵게 버신 돈인데 내가 어찌 좋게만 받을 수 있었을까?


엄마는 모르실 거다. 냉정하기로 결심했다는 걸..


#친정엄마 #타인지향 #인정욕구 #배려


https://brunch.co.kr/@129ba566e8e14a7/30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