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실패하더라도 의미가 있다. 적어도 덜 미워하게 되고 나도 그런 상황이면 그랬을 수도 있었을까? 나를 대입해 볼 수 있다.
예전에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자신은 동의를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했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지금은 다 이해가 된다고...
아빠가 못된 사람이었으면 맘껏 미워라도 했을 텐데...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게다가 큰 딸인 나를 이뻐해주시기까지 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빠가 현실감이 너무 없으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힘든 건 우리 엄마시고 평생 생계를 위해 고생을 하셨다. 아빠가 전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노력해도 쉽지 않았고 타이밍이 안 맞기도 했다. 연세가 드시면서는 피라미드 비슷한 곳도 다니셨던 것 같다.
시대를 잘못 만난 것도 있고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많았던 재산을 장남인 큰 아버지께서 사업을 벌이시다가
빚이 커진 상황. 그 머리 좋던 큰 아버지께서 서울에 유명 대학에 다니셨는데.. 공부 쪽에 재능이 남다르셨던 아들에게 사업을 시키셨던 할머니의 실수.
IMF로 큰 공사 대금을 하나도 받지 못해 빚더미에 앉게 된 상황. 아빠의 남은 재산을 고모네 빚보증을 서주면서 모든 재산이 날아갔다.
보통 사람 같으면 원망하고 미워했을 상황인데 엄마, 아빠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한탄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엄마의 고생이 시작되어 몸도 마음도 망가져가셨다.
아빠는 잘 속는 일도 많으셨고 일을 하시다 말다 하시며
집안 경제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초긍정에 자신의 건강을 챙기시며 매일 운동하시고 항상 좋은 말씀만 하시는 아빠를 미워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아빠가 너무 미웠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으시고 단순하게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면 그냥 잘 되는 세상을 믿으시는 아빠는 어느 세상에서 살고 계신 걸까?
'사람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를 말씀하실 때마다 어찌나 분통이 터지는지... 엄마는 고된 노동으로 몸이 상하시고 지쳐있는데 옆에서 (아빠는) 운동하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나에게 전화하셔서 엄마를 위로해 드리라고 하셨다.
그럴 때 아빠에게 순간적으로 화가 불쑥 올라온다.
'우리 아빠는 왜 아직도 그러시지? 엄마가 운동할 힘이 어디 있으시다고...' 그리고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몸이 힘드신데 말이다. 나의 위로의 말이 얼마나 힘이 될까? 아. 답답하다.
아빠는 항상 미안해하신다. 아빠의 미안하다는 소리는 진심인데 그 소리가 듣기 싫다.
아빠는 엄마 보다 6살이 더 많으신데 초 동안이시다. 잠도 얼마나 깊이 주무시는지... 분명 감사하고 좋은 일인데 순간 화가 난다.
아빠를 향한 죄책감과 미움 사이에서... 이제는 그런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아빠는 타인에 대한 따스함과 섬세함이 있으신데 다른 진로를 택하셨다면... 차라리 재산이 많지 않은 집안이었다면.. 고생을 하며 크셨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거다. 다만 나름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받아들이는 시간...
아빠께만 유독 툴툴거리며 말하는 딸.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싶다.
아빠를 미워하게 된 지 20년이 되고 기도할 때마다 아빠를 존중하고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지금은 90프로 이상 회복되었고 아빠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도 생겼다.
어제도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는다.
마지막 대화는 이렇다.
나: 그래도 아빠가 못된 사람은 아니잖아. 건강하신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싶어.
엄마: 그래 맞다. 아빠가 안 아프고 건강하고 무기력하게 집안에만 있지 않는 것도 감사하다.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