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취미가 되면 재밌고, 일이 되면 힘들다는 말이 있다. 역시나 일은 쉽지 않다.
머릿속에 획기적인 기획이 떠올라도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잘 포장하지 않으면 결과물이 별 볼일 없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회사는 바쁘고 시간이 돈이다. 브랜딩을 기획할 대상을 분석할 시간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주제를 기획해 내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지 않았다.
누가 내 뒤를 쫓아오는 사람처럼 초조하고 걱정만 하다 집에 오는 날도 있었다.
차분히 하면, 산책을 하고 오면, 장소를 옮기면.. 그렇게 창의력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시간 내 일을 처리하기 바쁘다.
특히 나는 프로그램으로 정리하고 보고하는 일들이 미숙해서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내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형상화해서 세상에 나타나게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10년 넘게 쭉 한 가지 분야에서 일했었다 보니 스스로 익숙하고 잘하는 모습이 내 기억에 남아 있어 큰 착각을 했던 거다.
자만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종종 내 미숙함과 부족함을 확인하고 깨닫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잠시만 우울하자. 그리고 다시 하면 된다. 다시 일어나면 된다.
아이처럼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어느새 예전의 자신감을 찾을 수 있겠지..
마흔의 도전은 엉성하게 삐꺽거렸지만 분명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회사생활이 나름 익숙해질 무렵 나는 인생의 법칙 같은 걸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하던 어디서 일을 하던 기본기와 본질은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얼마나 튼튼한 자아가 든든한 철학이 있었느냐가 확인되는 순간이 언제든 오다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을 소중히 여기면 어느 곳에 가든 그곳이 소중한 곳이 되어 줄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가치 있게 하면 어떤 일을 하든 내가 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걸 지난 직장을 다니면서 깨달았다.
게다가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성장했고 생각보다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특별함을 찾고 기획해 내는 일의 성격이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부족할 뿐.
경험이 이렇게 무섭도록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좋은 기본기와 본질이 있다면 또 다른 도전에 용기를 내 보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도전하지 않았으면, 시도하지 않았다면, 용기 내지 못했다면
만나지 못할 경험이겠지.
도전의 대가를 치르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정도 대가 정도 치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