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수치를 견디는 과정일 뿐
오전 9시 출근과 동시에 카카오톡 메신저에 수많은 클라이언트들의 메시지가 쏟아진다.
업무를 요청하거나, 재촉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며, 가끔 불만을 토로하는 메시지들도 도착해 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구나. 나는 왜 그렇게 부족한 인간일까?
수치스러운 불편한 감정들이 밀려온다.
그래 수치스럽다는 표현이 맞다...
애써 웃지만 속으로는 내가 나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를 믿지 않았다.
잘 해내지 못했다고 느끼며 나는 쉽게 그리고 크게 좌절했다.
수치라는 감정을 그렇게 견뎌내다 어느덧 생각이 정리된다.
내 홈그라운드라고 하기엔 아직 배울 게 많아 어쩌면 당연한 피드백이며 나는 아직 부족한 인간이 맞다.
결정적인 건 남들은 나에게 소름 끼칠 정도로 관심이 없어 마음속에 각인해야 할 만큼의 피드백도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이 조금씩 편해진다.
그러다 나에게 미안해진다.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글귀를 봤다.
'나도 부족하지만 남들도 별로다.'
맞다.
그래 나를 좀 믿어주라. 그만 좀 보채라. 그만하면 됐다.
완벽주의는 사실 오만의 다른 형태.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다.
삶에 있어 수치스러운 감정은 아주 가까이 있고 자주 우리 곁에 온다.
내가 피할 수 없는 본능적인 마음일 거다.
그러나 아픈 말들이 내 마음을, 내 정신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는 오로지 내 선택이다.
물론 선택임을 알지만 당장의 수치심은 피할 수 없는 맞닥뜨려야 할 감정이라 잠깐이라도 힘든 것은 사실이다.
나이를 먹고 좋아진 건 그 좌절에서 헤어 나오는 시간이 상당히 짧아졌다는 거다.
후천적으로 끊임없이 나를 단련해서 수치를 견뎌내고 떨쳐버리는 힘이 내게는 생겼다.
많은 경험 속에서 사색을 하며 책을 읽으며 얻어낸 마음 회복 근육이 생긴 것이다.
소중한 회복 근육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겨 있었구나.
생각해 보면 영광의 순간보다 수치스럽고 인정하기 싫은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느낀 수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우리의 '인성' 또는 '그릇'이라 부르는 영광의 단어를 붙일 수 있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아주 작은 그릇이라도 갖기까지 수많은 수치를 견뎠기에 가능했던 거다.
오늘도 그릇의 크기를 0.1mm이라고 넓히기 위해 나는수치의 순간을 견디며 용기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