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평범은 무엇인가요
나는 그 유명한? 흙수저다. 아니 그냥 수저가 없었던 거 같다. 크고 나서 내가 흙수저였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힘으로 노력해서 흔히 말하는 '자수성가'형 인간이 되고 싶었다.
원래 사람은 but에 집중하니깐. 성공해도 고난의 시절이 없다면 오히려 집중하지 않으니까. 부자들이 이제 가난까지 사려고 한다고 하니
그래, 기왕 가난하게 태어난 거 꼭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지금 생각해 보니 뭘, 어떻게 무엇을 보여준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참 어렸다.
그렇게 열심히 수저를 만들기는 했다.
흙인지 은인 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쓸만한 수저를 들고 내 살길을 독하게 헤쳐나갔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100일 채 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아빠가 좀 마음 아프게 돌아가셔서 마음에 짐으로 또 아픔으로 남았다. 남은 우리 가족은 말없이 아픔을 삼키고 그냥 덤덤한 척 일상을 이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에게 마음 아픈 소식이 있어 나는 1년 가까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 또 내가 힘들었다.
하늘이 미웠다가 하느님, 부처님 모든 신께 기도했다가, 한 동안은 사람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신이 나를 버리고 우리 가족을 버렸다 생각했다.
세상을 다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심하게 흑화 되어 갔고 마음속 부정이를 가득 안고 슬픔으로 시간을 때웠다.
웃고 있어도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괴기한 경험을 하고 정신을 살짝 차리기도 했다.
그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수성가니 성공이니 뭐니 다 필요 없게 느껴졌다. 우스웠다. 성공은 무슨.
인생의 의미도 기쁨도 영광도 이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흙수저도 버리고 맨손으로 거칠게 살려고 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시 살아보려 해도 마음이 금세 깊은 우울감으로 곤두박이칠 쳤다.
잘 살아 보려고 이렇게 아등바등 노력했는데 너 같은 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슬프면서 억울했다.
'나도 잘 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약은 맞다. 2년, 3년... 시간을 누가 훔친 것처럼 그렇게 지나갔다.
아픔이 일상이 되고 나니 다시 오히려 다시 잘 살고 싶어졌다.
어쩌면 가족의 건강이 아무 아픔 없는 상태가 내가 바란 평범이었나 보다.
내가 바란 욕심이었던 거다.
너무나도 큰 욕심으로 세상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고 신까지 원망했다.
나 자신까지 미워했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평범한 적이 없었던 건 나였다. 항상 무언가 내가 부족하다 느꼈고 나만 슬프다고 생각했다.
너무 어두웠던 터널에서 겨우 빠져나오고 나니 사람들이 보였다.
각자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를 일으켜 세워줬던 사람들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의 시선을 바라보니 저절로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도 미울 일도 탓할 일도 전혀 없이 대부분 내 마음의 문제였단 걸 이제는 안다.
사실 나는 '평범'이라는 말이 이제는 무섭고 조심스럽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어쩌면 내가 내 상처를 걱정하고 있었나 보다.
어떤 모습이 평범한 걸까? 건강한 것? 가족과 웃으면서 먹는 저녁밥?
잘 모르겠다.
유모차를 끌면 평범하고 휠체어를 끌면 평범하지 못한 건가?
잘 모르겠다.
평범한 하루는 그 사람의 가진 환경에서 특별할 게 없는 또는 이벤트라 할거 없는 하루가 아닐까.
나의 잣대로 남의 평범함까지 선을 그어 버리지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수저 업그레이드 하기는 평범함일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