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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Dec 26. 2021

의적 영숙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수중명당 장곶이 이야기 후속담>

세월이 흘러 보재기 집안에서 태어난 후손 중 뜻밖에도 조선 말기 삼남지방과 전국을 휩쓴 괴도 영숙이란 사람이 있었다. 영숙은 남해 생으로 조선말 탐관오리 등이 서민들에게 갖은 횡포를 자행하던 타락 시대에 신출귀몰하게 고관과 부잣집만 귀신같이 재물을 탐취하여 불쌍한 서민들에게 양곡과 금품 등을 주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각처에 방을 붙여 기도 영숙을 체포하라는 영을 내렸으나 신과 같은 영숙을 체포하기란 뜬 구름 잡기와 흡사하였다.

  탐관오리들이 불쌍한 백성들에게 갖은 중상모략으로 수탈해 모은 재물을 다시 찾아 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무슨 죄인가? 그리하니 영숙은 서민들로부터 우러러 보였고 모이는 사람마다 영숙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따라서 탐관오리 고관 관리 집은 나졸과 하인들이 겹겹이 집을 에워싸고 철야 철통같이 경비를 하였으나 날이 새고 나면 귀신도 모르게 재물을 도둑맞고 말았으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불쌍한 서민 집에는 누가 두고 갔는지 모르게 금은 보화 등 재물이 부엌 또는 방에 놓여 있었다.

  오늘은 동쪽, 내일은 서쪽 등으로 사방을 다니면서 고관 탐관오리 집만 털고 다녔으니 과히 영숙은 괴도였다. 탐관오리들은 두막이나 길거리에서 서민들의 얘기 속에 영숙 소리만 나와도 놀라서 오금이 떨어지지 않는 형국이었다. 오늘은 삼남 김부자 아무개 나리 집이 털렸는데 내일은 또 누구 집이 털릴까? 그러하니 고관 탐관오리들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고 수심에 잠겼다.

  반면 백성을 위하고 국사를 바르게 하는 고관 집은 절대로 침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운이 다했는지 아니면 목적을 다 했는지 모르나 진주 감영에서 의도 영숙은 시경(사형 집행인)의 칼날에 운명을 마쳤으니 백성의 마음이야 얼마나 슬펐겠는가?

  사형이 오전에 집행되었다는 소문이 진주 안에 자자하게 퍼졌는데 점심 때 어떤 주막에 웬 우람한 사나이가 주모에게 술 두 사발을 주라고 하여 술을 주니 단순에 마셔 버리고 주모에게 부엌칼 한 자루와 숫돌을 가려오라기에 주모가 깜짝 놀라 연유를 물으니 “내가 바로 영숙이란 의적이요.”라고 하니 주모가 얼른 칼 한 자루와 숫돌을 주었다. 영숙은 칼을 시퍼렇게 갈고 또 갈았다.

  그러던 중 주모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영숙은 온데간데 없고 숫돌만 그대로 있었다. 하도 신기하고 이상하기에 주모가 거리로 와서 사실대로 말하니 모두가 정말 귀신같은 영숙이라고 하였다.

  오전에 사형이 분명히 집행되었다는 방을 보았는데, 살아있다니 아마 주모가 망령이 들어 헛소리를 한다고 했다가 도리어 호통만 당했다고 한다. 조금 후에 성 안이 벌컥 뒤집혔다. 영숙을 칼로 목 베어 죽인 시경 두 명이 목이 잘려 죽었다는 것이다. 정말 신통하고 귀신이 놀랄 일이었다.

  이와 같이 영숙은 죽어서도 혼백으로 탐관오리들을 혼내주었으니 과히 당대의 의도요, 도탄에 빠져 헤매는 백성을 구제한 의로운 사람이었다. 출생지는 남해군 삼동면이었다고 한다.

  요즈음 사람들도 남해군 창선면 장포리 장곡 동메를 지금도 수중명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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