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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Sep 30. 2021

도툼바리 이야기1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차를 몰아 남쪽 끝에 닿으면 그곳에 남해군 미조마을이 있다. 예부터 해산물이 풍부하여 어업전진기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행정구역 이름이기도 한 미조리는 한자이름을 미륵 미(彌), 도울 조(助)로 쓴다. 풀이해보자면 미륵이 도운 마을, 미륵을 도운 마을 즈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지형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그 생김새가 마치 사람의 발자국처럼 생겼으므로, 옛사람들은 미조리를 두고 도툼바리(도툼발, 도툼발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치 바다와 연애라도 하듯 해안을 따라가며 올록볼록하게 생긴 땅 모양이 사실은 미륵님이 남긴 발자국이라는 이야기다.


미륵님이 성불하기 전에 설산 고행을 하다가 해동 조선의 명승지 남해 금산에 오게 되었다. 금산에서 도를 닦던 어느 날 문득 깨침이 있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는데, 금산 앞에 커다란 바위돌이 가로막았다. 그러나 미륵님은 무념무상으로 걸어갔다. 그때 미륵님 앞에 쌍무지개가 피고 구멍(금산 쌍홍문)이 크게 뚫렸다.


이어 미륵님은 인도로 향하기 위하여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돌섬(세존도)을 지나고자 하였다. 하지만 한 걸음에 돌섬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약간만 돌섬이 뭍 가까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아쉬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미조 앞바다에 떠 있는 새섬과 범섬, 뱀섬과 두꺼비 섬 등을 밟을 수도 없었다. 성불하는 길에 짐승을 밟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정작 미륵님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념무상으로 계속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마침 그때 미조마을 해안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바다 쪽을 향해 꿈틀거리며 돌섬을 향해 늘어나기 시작했고, 활처럼 굽어져 나와 미륵님이 발을 놓을 수 있도록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하여 미륵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도툼바리를 밟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돌섬(세존)를 뚫고 인도로 향하였다. 


이처럼 미조 사람들이 미륵님의 귀환을 도왔다고 하여 미륵을 도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미조로 부르게 되었다. 또한 뒷날 부처님이 성불하신 후에 되돌아보니 미조 사람들의 은혜가 고맙기 그지없어 언젠가는 반드시 그 마을사람들을 돕겠다고 약속을 하였다고 하니, 미륵이 돕는(도울) 마을이라는 뜻을 지니게도 된 것이다.


한편 이 마을에 농토가 아주 많은 권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의 논을 밟지 않으면 마을을 드나들 수 없을 만치 권씨는 부농이었다. 그래서 그 농토를 권농지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대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십 년 주기로 그 농지의 세력이 형편없이 줄었는데 그 까닭이 바로 도툼바리 지형 때문이라는 말이 예부터 전한다. 올록볼록하게 생긴 지형처럼 마을 사람들의 일도 한번 흥하면 한번은 반드시 망하는 것이 마치 올록볼록하게 생긴 미조의 지형을 닮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후 이치를 깨달은 권씨는 풍년이 들 때마다 농산물을 온 마을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주었다. 재물 욕심을 부리지 않아 날이 갈수록 마을사람들의 신망을 얻어 마을의 어른이 되었다. 이처럼 미조 사람들은 일찌감치 인생사의 흥망성쇠를 깨달아 욕심을 내려놓은 것도 미륵의 도움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참으로 미조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김성철 엮음, 남해의 구전설화, 남해문화원에 실린 "미륵을 도운 도툼바리"를 바탕으로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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