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의 바다 냄새를 잊지 못한다.
짠 내와 기름 냄새, 그리고 금방 죽은 고기의 비린내가 뒤섞인, 묘하게 철 썩이는 공기. 삼천포 앞바다에 간첩선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정오의 뉴스 속보와 마을 어른들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문어 통발 어선이 수상한 배를 발견했고, 경찰 타격대가 출동했다가 총격을 받고 두 명이 순직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본 건, 미조만 앞바다에서 벌어진 추격의 마지막이었다. 그날 오후, 마을은 웅성거렸다. 빨갱이들이 미조만 안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며 사람들은 바닷가로 몰려들었다. 어른들은 마당과 둑길, 선착장과 갯바위 위에 삼삼오오 서서 누에섬 쪽 바다를 가리켰다. 우리도 뒤를 따라 나갔다.
그때였다.
누에섬 왼쪽 어깨 너머, 북쪽 바다에서 작은 배 하나가 튀어나오듯 솟구쳐 보였다. 은빛 포말을 깨치며 미조만 안으로 파고들던 그 배는, 마치 토끼처럼 수면 위를 깡충깡충 튀며 달아났다. 속도가 너무 빨라 파도의 이물만 타고 뛰듯 나아가는 그 움직임은 사람의 조종이라기보다 짐승의 본능 같았다.
그 뒤를 예닐곱 척의 해양경찰 경비정이 뒤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배들은 어딘가 무겁고 둔해 보였다. 물살을 가르기보다 파고드는 모습은, 마치 바닷속으로 몸을 숨기려는 잠수함 같았고, 간첩선의 경쾌한 질주에 비하면 한참은 더디고 답답하였다. 파도가 출렁일수록 간첩선은 더욱 높이 튀어 올랐고, 그 높낮이만으로도 누가 쫓고 쫓기는지를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배는 그렇게 미조만 안으로 곧추 도망쳐 오고 있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깊이 파고든 뒤엔 어쩔 줄 몰라 하며 원을 그리듯 맴을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마치 길을 잃은 쥐처럼, 조급하고 날카로운 곡선을 그리며 돌아다녔다. 잠시 뒤, 배는 누에섬 오른쪽 바깥 바다 쪽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거기는 이미 해군 함정이 퇴로를 가로막은 채 버티고 있었다.
그 순간, 간첩선은 방향을 급히 꺾어 다시 미조만 안쪽으로 선회했다. 작은 배는 날카롭게 머리를 틀었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을 것이다. 바다 한복판,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고립된 만. 그 안에 갇힌 채, 배는 점점 속도를 늦춰 갔다. 그다음은 모든 게 느리게 흘렀다. 누에섬의 발치, 바위와 바위 사이 얕은 물살 위에서, 배는 한순간 멈추더니,
“떵!”
하고 짧고 묵직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불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연기는 분명히 솟았다. 배는 이내 기울었고, 그러나 생각보다 더디게 가라앉았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안에서 그대로 익사했을까? 아니면 일부라도 잠수 장비를 챙겨입고 물속으로 빠져나갔을까? 마을 어른들은 “맞혔다!” 해군이 격침했다며 손뼉을 쳤다. 아이들은 어른들 틈을 비집고 바다를 내려다봤다. 누나는 내게 “빨갱이들은 저렇게 죽어야지”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포탄이 아니었다. 밤늦게, 종선이 형이 내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형은 해양경찰에서 군 복무 중이던 전투경찰이었다. 우리 학교 국방 체험에서 만난 청년. 광주 출신으로, 말끝마다 “혀?” 하고 묻던 형. 나는 그 사투리의 억양이 좋아서 먼저 말을 걸었고, 형은 그걸 알아차리자 아예 나랑 말할 땐 일부러 전라도 사투리를 더 진하게 썼다. 그렇다고 형이 무식하다는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고, 뉴스를 읽듯이 또박또박 표준말도 잘 구사했다.
“야야, 격침은 무신 격침이냐. 걔들이 자폭해뿌렀어잉.”
형은 담배를 피우며 중얼거렸다.
“배가 그물에 쫘악 걸려갖고, 도망갈 데가 없더라고. 그래 놓고는 다시 돌다가… 누에섬 발밑에서 그대로 ‘펑’ 하고 터졌어잉.”
“왜요? 왜 자폭을 해요?”
형은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았다.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는 평소보다 말수가 줄어든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그의 말투에서 잠시 사투리가 빠졌다.
“…죽을 길밖에 없었지. 앞엔 해군 함정, 뒤엔 해경 경비정. 총도 제대로 못 쏘고… 그냥 끝이었어.”
하지만 곧 형은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말했다.
“나라도 거기서 별수 없었을 끼제.”
“근데 뉴스는 포탄 맞았다고 하던데요.”
형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쉬며 웃었다.
“허허, 그거야… 그렇게 나가는 게 좋으니까 그런 거지. 국민들한텐 ‘우리 군대가 잘했답니다’ 하는 게 훨 낫지 않겄냐.”
“형… 그럼 형은 안 쐈어요?”
형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총알은 못 날리겄더라고. 그게 뭔가, 아무리 적이라도… 사람인데. 그런 거, 잘 모르겠더라. 서울선 그거를 ‘인간성’이라 혀.”
나는 형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형, 배신자네요. 조국의.”
형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 니 입으로 듣는 거… 나쁘지 않네잉. 그래도 너는 말 안 할 거지? 나쁜 놈 안 만들 거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형의 사투리는 거칠고도 정겨웠다. 그 말투 안에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며칠 뒤, 마을 해녀들이 해군 잠수병들과 함께 시신을 건져 올렸다. 온 마을이 그 시신들을 보러 선착장에 몰렸다. 아이들은 못 보게 했으나 마을주민 중에는 은근히 이것만큼 좋은 교육이 어디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금기어를 내뱉은 이장도 우리가 와 있는 걸 넌지시 못 본 척하는 눈치였다. 입이 벌어진 시신, 눈이 감기지 않은 얼굴, 잘린 손목들. 가마니 위에 진열된 시신들을 보며 어른들은 ‘이게 간첩이다’라며 멸공의 구호를 외쳤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헤어지고 바닷가에 오래 앉아 있었다. 머릿속엔 종선이 형의 말이 맴돌았다. 사람을 얼굴도 못 본 채로 쏘긴 어렵더라. 난 그게 인간성이라고 믿고 싶거든. 누나는 내 머리를 다시 꿀밤으로 때리며 말했다. 비린내 맡고 쏘다니지 마라. 그런 건 어른들이 다 알아서 할 일이다아이가.
하지만 나는 안다. 그날의 검은 연기, 그건 총탄의 잔해가 아니라,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 스스로 불태운 자국이었다는 것을.
그날 반공의 바다는 지독하게 비렸다.
그 냄새는 이념의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마지막 숨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냄새는 지금도 내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