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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y 15. 2021

하성 이야기

- 거창군의 옛이야기 1 <옛이야기 속으로>

한기리 오산마을에서 동북쪽 약 300미터 지점에 옛날 삼국시대에 쌓은 성터가 있다. 이 성을 하성이라고 하는데 삼국시대 때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백제가 이곳에다 성을 쌓은 것이라고 전하여 온다.


원래 이곳은 돌이 귀한 곳이라 성을 쌓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아녀자들이 동원되어 먼 곳에서 돌을 날라다가 성을 쌓았다고 하여 일명 여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여성에는 다른 하나의 애절한 전설이 지금도 이곳에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옛날 이 성의 아래 마을에 다정하고 금슬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 부부의 행복한 생활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불행히도 아내가 출산을 하다가 딸 아이 하나를 낳고 죽어 버렸다. 남편은 핏덩어리인 딸을 안고 통곡을 했으나 한 번 염라대왕의 부름을 받은 다정한 아내는 저승 사람일뿐 살아서 돌아오지를 못했다.


남편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딸이 다섯 살이 지나도록 재혼을 하지 않고 아내를 닮아 예쁜 어린 딸을 기르는 것을 낙으로 삼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재혼하기를 재촉하였으나 그는 오직 어린 딸을 기르는 데 신경을 쓸 뿐 재혼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딸아이가 점점 자라나자 마침내 남편은 주위의 간청을 받아들여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 딸아이의 계모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시집을 왔다. 계모가 데리고 들어온 아들은 몹시 총명했다. 그러나 전처의 딸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계모는 항상 전처의 딸이 총명한 것을 시샘을 했다.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그 총명함이 더해 갔다.


하루는 계모가 전처의 딸과 자기의 아들을 불러 놓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 모두가 분간할 수 없도록 똑똑하고 총명하니 어미의 마음은 기쁘기 한량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너희들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총명한가를 시험에 보려고 한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한 마리의 말을 주면서 천리를 갔다 오게 하고, 딸은 집 뒤의 산에 돌로 성을 쌓으라고 했다. 만약 한 달 안으로 일을 마치지 못하면 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합에서 패하게 되는 사람은 죽게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시합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말을 타고 고향을 떠났고, 딸은 뒷산에 올라 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딸에게는 어려서부터 애지중지 길러 오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 고양이가 딸이 성을 쌓는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사실 이 시합은 하나마나 한 것이었다. 말을 타고 천리를 갔다 오는 것은 쉬운 일이었으나, 돌성을 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돌이 귀하기 때문에 먼 곳에서 돌을 날라다가 성을 쌓아야 했기 때문에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딸은 성을 착실히 쌓아 갔으며 고양이는 재빠른 행동으로 먼 곳의 돌을 부지런히 날라다가 딸이 성을 쌓는 일을 도왔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열흘이 지나고 하여 이제 거의 한 달이 다 될 무렵에 딸은 부지런히 성을 쌓았기 때문에 얼마 안 있어 성이 완성될 참이었다. 계모가 보니 성은 거의 완성되어 가는데 아들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달이 난 계모는 딸이 성을 쌓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계모는 평상시에 보이지 않던 친절을 딸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러 성을 쌓는 데 나아가 딸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새참도 하여 주고, 콩도 볶아서 간식으로 주고 하였다. 딸은 차마 계모의 정성을 거절할 수 없어서 자기의 일을 미루고 계모의 일까지 거들어 주었으며, 그래도 틈이 나는 대로 성 쌓는 일을 게을리 않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일로 인하여 성을 쌓는 일이 늦어지게 되었다.


이제 약속된 한 달이 다 되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동안 고양이와 딸이 열심히 성을 쌓았기에 이제 한 번만 돌을 날라다 쌓으면 성이 완성될 참이었다. 고양이도 이제는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고, 딸도 손과 발이 부러 터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 돌을 나르면 성이 완성되기에 딸은 피곤한 줄 모르고 치마에 돌을 담아 싸 가지고 오는 도중에 멀리서 동생이 말을 타고 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성을 쌓는 곳에 이르려고 하는데, 계모가 나타나서 볶은 콩을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멀리서는 동생이 말을 타고 가까이 오는 모습을 보며, 딸은 계모가 내민 콩을 받아 먹느라고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그 순간 아들은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쳐 버렸다.


마침내 계모의 간교한 꾀에 의하여 딸은 내기 시합에서 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들이 이곳을 지나치자 ‘졌구나’ 하는 생각으로 앞치마에 쌓던 돌을 힘없이 쏟아버리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딸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딸의 죽음을 보자 고양이도 슬피 울고서는 그 자리에서 딸을 따라 죽어버렸다.


그래서 성은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 남아 있고, 그 성을 여자가 쌓았다고 해서 여성이라고 후세의 사람들은 불러오고 있다.(거창군 웅양면)


출처 : 박종섭, 거창의 전설, 문창사, 1991, 9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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