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도 늘 잘 지내는 친구들

(2026년 1월 20일)

by 해송

고등학교 친구들 이야기다.

우리 동기들은 고등학교 진학 시 처음으로 무시험 추첨제로 진학한 세대다.

58 개띠가 주축이고 57 닭띠 59 돼지띠도 가끔 있다.

고교 친구들은, 내가 한국에 나올 때면 만나는 지인들 중 한 그룹이다.


그중에서도 '라캄 5형제'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다.

예전에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함께 여행했던 5명의 친구들이 자신들에게 붙인 명칭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술과 담배를 즐기고, 낚시와 당구, 여행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말싸움을 즐긴다.

남들이 보면 꼭 싸우는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가벼운 욕도 가끔 섞어가면서 언성을 높이기도 하는데, 이제는 자주 보고 듣다 보니 그들의 욕은 악의 없는 정겨운 사투리 정도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면서도 늘 잘 지내는 친구들 같다.


한 친구는 우리 고등학교 학도호국단 연대장 출신으로 대학교 교무처장을 역임하고 현재 부산 아파트와 경북 청도 전원주택을 오가며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청도 전원주택은 건축 시 라캄 5형제들이 동원되어 거의 다 지었다는 소문도 있다.


작년 9월 폭우로 무너진 담장공사를 위해 라캄 5형제가 동원된 적도 있었는데, 그때 나도 우연히 동행을 했었다.

모두 함께 땀 흘린 후, 친구 부부가 준비한 푸짐한 안주로 유쾌한 술잔을 기울인 적도 있어, 나는 이들의 끈끈한 우정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연대장 출신답게 이 그룹에서도 리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그의 두뇌에 'X 파일'이 심겨 있어, 필요시 친구들의 학창 시절 '비행'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순식간에 공개되기도 한다.

술자리에서 보따리를 풀면 듣는 이들의 웃음이 폭발한다.

나는 이 친구의 진지한 표정 속에 툭툭 던지는 농담에 늘 따라가기가 바쁘다.


다른 한 친구는 전임 동기회장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의 외관과 성격을 지닌 친구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 친구를 찾아가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사에 솔선수범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정 많은 사나이다. 난 이 친구가 의리를 내세우며 다음 술집으로 끌고 가는 것이 이제는 겁난다.


또 다른 친구는 컴퓨터와 관련 제품 판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 마디로 마당발이다.

성격 좋은 친구라, 동기들 중에 이 친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언제 어디서든, 어디에 던져 놓아도 금세 잘 어울릴 수 있는 친구다. 우연히 캄보디아에서 졸업 후 처음 만나 서로 알게 된 각별한 인연이 있다.

내가 한국에 왔을 때 이 친구에게 연락을 제때 안 하면 나중에 야단을 듣기에 늘 불안하다.


다른 한 친구는 현재 동기회장을 맡고 있는 친구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업체에서 영업통으로 근무하고 정년퇴직했다.

성실하고 배려심 깊고 사회성도 좋아 매사에 무리가 없다.

라캄 5형제 모임에서 의사합의를 못 이룰 때 중재안으로 합의를 이루어내는 역량을 보여준다.


한 친구는 오랫동안 중국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는 사장님이다.

성실 그 자체로, 배달 직원이 여러 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쁠 때면 직접 오토바이 배달도 도맡아 한다.

과하지 않은 미소와 어눌한 듯한 말투에 실어 던지는 위트와 내부자 고발의 한방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라캄 5형제 모임에는 안 빠진다고 한다.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너무 좋은 친구들이라고 늘 강조한다.


이들은, 내가 살고 있는 베트남에 한번 놀러 온 이후로 내가 한국에 오면 자신들의 모임에 한 번씩 초대를 한다.

그런데, 1명을 제외하곤 학창 시절 교류가 전혀 없었던 친구들인데도 이상하게도 이들이 호찌민에 왔을 때부터 우리는 아주 친했던 죽마고우처럼 잘 어울린다.


우선 이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재미있다.

조용한 스타일의 나하고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한결같이 자기주장이 강하다.

내세우는 주장들은 사뭇 생뚱맞거나 비합리적일 때가 많은데, 어떻게 보면 아주 새롭거나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평소 내가 즐겨하지 않는 시끌벅쩍함으로 인해 호기심 묻어나는 생기를 느끼곤 한다. 거부감을 느끼던 두리안을 강요로 맛본 이후 좋아하게 된 경우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재래시장 같은,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진다.


이들은 매사에 긍정적이며, 걱정이 있다면 '하루를 어떻게 재미있게 보내지?' 하는 것이다.

이 친구들은 서로 표 나지 않게 늘 배려한다.

이들이야말로, 나이 들어가는 친구 사이의 한 가지 괜찮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가 이웃집 사람에게 식용으로 팔려간 충격으로 나는 일체의 육식을 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내가 까탈스럽다고 하셨고, 나는 명절 때만 예외로 엄마가 억지로 먹이시는 닭고기 속살 한두 점을 마지못해 목구멍으로 넘기곤 했다.

이후, 한 겨울 논산 훈련소 야외 훈련장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기름이 둥둥 뜨는 돼지고기 국을 처음으로 먹으면서 육식을 하기 시작했다.


성격도 다소 까칠한 면이 있는 나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거나 두루두루 친하게 사귀는 편이 못된다. 와인 잔을 들고 테이블을 돌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 미소 띤 대화를 나누는 영화 속 장면은 나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장면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라캄 5형제들과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은 내재된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에 나는 가끔 나 자신을 흥미 있게 바라보기도 한다.

이들 다섯 친구들의 각별한 우정이 영원히 지속되길 마음속으로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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