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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Jun 24. 2024

한 베이비 부머의 호찌민 생활

베트남 오토바이

베트남을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들이 눈을 지그시 감고 베트남을 회상해 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한 가지 있을 것이다. 

출. 퇴근길 도로 위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토바이 행렬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쉽다. 


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대도시 도로는, 러시 아워 때에는 어김없이 오토바이 행렬로 장관을 이룬다.

넓지 않은 도심 도로는 로터리나 신호등을 만나면 꼬리물기로 어김없이 정체가 시작된다. 차량 주위로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에워싼 상태로 달리기도 한다.

자가 운전자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오토바이 택시 (그랩, Grab)도 대중화된 지 오래다.


주말에 다섯 식구가 오토바이 한 대로 나들이 가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위태롭게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겹기도 하다.  겨우 걸음마를 마친 아기가 오토바이 안장에 일어서 있는 상태로 달리기도 하고,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오토바이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긴 채,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책을 읽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조작하기도 한다. 오토바이가 안 보일 정도로 양 사방으로 짐을 가득 싣고 달리는 오토바이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은 오토바이 안장에 누워 수면을 취하기도 한다.


오토바이 없는 베트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베트남 도로교통부 통계에 의하면, 2022년 말 기준 베트남내 등록된 오토바이 대수는 65백만 대를 넘어섰다. 현재 베트남 인구는 1억 명이 조금 넘는다. 10년 주기로 이루어지는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베트남의 한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3.5명이다. 이를 고려해 봤을 때 한 가구당 평균 2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차량이나 오토바이들은 도로상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파고들고, 머리부터 집어넣는다. 오토바이의 경우, 건널목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보행자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빨리 달려오는 것 같다. 심지어는 역주행도 서슴지 않고, 급할 때에는 인도로도 달린다.

 

차량 간에도 교통신호를 무시하긴 매한가지다. 가령 직진 신호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좌회전하는 운전자가 부지기수다. 차선 하나를 가로질러 반대방향 차선으로 끼어드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 같으면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요란할 상황인데, 베트남 운전자들은 큰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다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도, 공항에서든, 버스 정류장이든, 건널목이든, 여러 사람들이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경우,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하는 것이 ‘요령 있는’ 사람이 취할 행동인 듯 행동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만이 공유하는 무언의 질서가 있다.


차량이나 오토바이의 경우,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주행 우선순위는 먼저 고개를 돌리는 운전자가 우선이다. 나는 결정했고 직진할 테니 상대방에게 알아서 양보해라는 신호다. 건널목에서 건너는 보행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차량이나 오토바이 운전자를 의식하지 않고 앞만 보고 천천히 걸어가면 운전자들이 알아서 피해 가는 식이다.


외국인들이 이런 무질서 속의 질서를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먼저 고개를 돌렸다고 마음을 굳히고 동시에 상대방을 무시할 경우, 가끔씩 사고가 난다.


2022년 기준, 베트남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6,397명이다. 하루 약 18명꼴이다.  

베트남에서는 수많은 오토바이 사고에도 불구하고버스나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체계와 도로 인프라가 취약하기에기동성이 있는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건널목이나 육교가 드문 상황도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의 배기가스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대기오염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대부분의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매연과 뜨거운 햇살 때문에 두꺼운 마스크와 두꺼운 겉옷, 선글라스, 장갑, 토시 등을 사용하기도 하고, 여성의 경우, 모자가 달린 차양 재킷이나 앞치마를 착용하기도 한다. 

* 스모그로 뒤덮인 하노이시의 모습


지난해 베트남은 세계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한 국가 22위에 올랐다. 동남아에서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다. (* 한국은 50위) 

대도시에 사람과 오토바이가 몰리면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대기오염과 교통체증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오래전부터 오토바이 운행을 제한하는 정책을 고민해 왔고, 오토바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중교통의 도입과 확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우선, ‘오토바이 퇴출 정책’을 단계별로 시행할 계획인데, 2030년 이후 베트남 5개 직할시인 하노이 (Hà Nội)호찌민 (Hồ Chí Minh)하이퐁 (Hi Phòng), 다낭 (Đà Nng), 껀터 (Cn Thơ)에서 오토바이 이용이 제한된다.

또한, 각 시 인민위원회에서는 2025년까지 전체 교통량의 30~35%를 대중교통이 담당하도록 추진하고, 교통체증 가능성이 큰 지점에 톨게이트를 설치해 통행료도 징수할 예정이다.


2021년 11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는, 베트남 최초의 메트로 (지하철 & 지상철)인 하노이 메트로 2A 호선 깟린 (Cát Linh)–하동 (Hà Đông) 노선이 개통된 바 있고, 남부 지역 경제 중심지인 호찌민에서도 최초의 메트로 공사가 98% 완료된 상태로, 내년 초 운행이 예상된다.

* 하노이 메트로 2A 호선

* 시험 운행 중인 호찌민 메트로 1호선


호찌민 메트로 1호선은 2007년 사업 승인을 받았지만 5년 뒤인 2012년에야 착공을 했다. 작년인 2023년 8월에야 시험 운행을 마치고 2025년 초 개통이 예상되므로, 20Km의 메트로 1호선을 건설하는데 거의 20년가량 소요된 셈이다. 

작년 2월에 착공에 들어간 호찌민 메트로 2호선은 2032년 개통이 목표라고 한다.


호찌민시 메트로 건설계획에 따른 총 8개 노선이 완공되려면, 아마도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먼 훗날 버스와 지하철, 승용차가 오토바이를 대체하여, 도로에 오토바이가 사라진 베트남의 미래를 기분 좋게 한 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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