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03일
49년 전의 나를 찾으러 간 고등학교 교정.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신설 공립고교로 우리 동기들이 2회 졸업생들이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정책의 일환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으로 우리 학년 학생들부터 무시험 추첨방식으로 학교 배정을 받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한해 선배들은 고교 입학시험을 치른 사람들이었다. 주로 부산지역의 명문고인 경남고나 부산고 시험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2차 시험을 통해 입학했다. 당시 1차에 떨어진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동래고나 동아고를 선택했는데, 한번 재수를 한 뒤 고교 입학시험을 다시 치른 학생들 중에는, 동기를 선배로 모셔야 되는 불편함 때문에 신설고등학교인 우리 고등학교에 입학한 1기 선배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런 만큼 1기 선배들에게는 우리 2기 동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명감이 있었다.
신설 명문고등학교의 전통을 만들어 나가야 된다는 사명감이었다.
2학년 학생회 간부들은 걸핏하면 1학년이던 우리 신입생들을 운동장에 집합시켜 군기를 잡곤 했다.
영문도 모르는 우리 1학년생들은, 군기란 명목으로 운동장에 도열시키고 구타를 하는 2학년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선생님들도 2학년 간부들을 말리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선배들은 ‘선생님들은 몇 년 근무하고 떠나면 끝이지만, 우리는 평생 같은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운명을 공유해야 하는 특별한 관계이니 선생님들이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항변하면서 집합을 밀어붙였다.
대부분의 우리 동기들은, 공부를 못해 1차 시험에 불합격한 주제에 후배들 군기나 잡는 못된 선배들이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구타를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설 고등학교이기에 돌멩이투성이인 운동장에서 굵은 돌을 골라내는 작업으로 체육수업을 대신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마디로 체육시간이 되면 우리는 공사장 인부로 신분이 바뀌었던 역사가 있는 운동장이다.
당시 가능하면 주소지 인근 고등학교로 배정이 되었는데, 우리 고등학교는 ‘공동학군’에 속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배정받은 학생들이 많은 학교였다.
나도 버스를 두 번 타고 등교를 하곤 했는데,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버스를 갈아타는 일도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통학시간도 많이 걸렸다.
게다가, 학교는 ‘황령산’이란 산 자락에 위치해 있기에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내달려야 교문이 보였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은, 아이러닉 하게 우리 학교 친구들이 전반적으로 건강한 체력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당초 나의 일정에도 없었던 총동창회 체육대회였지만, 모처럼 한국 방문기간 중에 아주 오랜만에 고등학교 교정을 방문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행사 시간과 관계없이 나는 느긋한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언덕 위로 보이는 담장 너머에는, 무성한 나뭇잎을 자랑하면서 그늘막을 만들고 있는, 예전에 보지 못한 키 큰 나무들이 무심히 흐른 세월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정문 앞 경사가 급한 계단을 올려 바라보니, 그 옛날 단단한 몽둥이 한 개를 손에 쥐고 아침마다 화난 얼굴로 지각생들을 맞이하던 상업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정문 옆에는 분수대가 그대로 있었는데, 일요일이면 가끔 그 근처에서 친구와 야구 캐치볼을 하던 일이 생각났다. 건물 내 역사관에는 당시 우리가 입던 교복도 전시되어 있었고, 교장 선생님들의 사진들도 앨범으로 보관되어 있었다.
무더운 한여름 열기가 올라오던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동자세로 훈화말씀을 듣던 학생들이 한 두 명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하면, 잠시 상황을 지켜보시곤, ‘그럼 간단히 7가지만 더 당부하고 오늘의 훈화를 마치겠습니다.’라고 우리들에게 또 한 번의 고문을 가하시던, 달변의 주상우 교장선생님도 생각이 난다.
교내에는 식당 건물이 새로이 들어서 있고, 농구부를 위한 체육관도 증축 후 멋진 모습으로 단장되어 있었다. 못 보던 교실들과 신축한 건물들도 추가로 들어서 있었다.
마이크 소리가 들리는 운동장으로 눈을 돌려보니, 졸업한 동문들이 일렬로 도열한 가운데 공식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고, 현역 교장선생님 인사와 국회의원 동문의 축사, 체육대회를 주최한 22기 동문회장의 인사 등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어 의례적인 퀴즈 게임과 초청가수 공연에 이어, 기수별 족구시합, 팔씨름 대회와 경품 추첨 등의 프로그램도 이어졌다.
이날 우리 2기 친구들은 약 20여 명 참석했는데, 졸업 후 처음으로 만나는 친구들도 있어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반백 년 전, 꿈과 정체성을 형성하던 10대 시절,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배웠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3년을 보냈던가.
국. 영. 수 위주의 입시 공부 대신, 외국처럼 토론 위주의 수업과 건전한 신체 단련을 위한 체육수업, 악기 한 개 정도 다룰 수 있을 음악수업, 세계 역사의 이해와 회화위주의 외국어 수업 등 다양하고 자율적인 수업을 받았다면 훨씬 재미있고 의미 있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직도 한국의 공교육은 구태의연한 입시위주의 교육이 지속되고 있어,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에 아까운 시간을 많이 허비하고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공교육이 개혁되어 대한민국의 우수한 잠재적 인적자원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