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버지
리진강은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손끝에 차가운 땀이 묻어났다. 머릿속은 온통 뒤엉켜 있었고, 리영희에 대한 의심은 점점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안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집 안은 숨막히게 고요했고, 그 고요함이 그의 불안을 더 증폭시키는 듯했다.
"이렇게는 못 견디겠어," 리진강은 혼자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거리를 걸어가던 중,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동네의 허름한 술집이었다. 리진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아무렇게나 빈자리에 앉았다.
술을 한잔 들이키며 주변을 살피던 리진강의 눈에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리진강은 그 남자가 누군지 금방 알아차렸다. 바로 서명환이었다. 한때 당의 중요한 관리를 맡았던 사람, 그러나 이제는 몰락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리진강은 무심코 그에게 다가갔다. "서 동지,"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오."
서명환은 술에 취한 눈으로 리진강을 바라보더니, 약간의 초점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아… 리진강이구만."
리진강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술이나 한잔하지 않겠소?"
서명환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술잔을 들어올렸다. "진강 동지… 내게는 더 이상 남은 게 없소. 나 같은 사람은 이젠 모든 걸 잃었소." 그는 고개를 떨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리진강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서명환은 술기운에 진실을 토해낼 준비가 된 듯 보였다.
"내가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 아는가?" 서명환은 입을 열었다. "한때는 나도 꽤 잘나갔소. 사람들은 나를 존경했고, 내 가족은 화목했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졌소. 이유도 모른 채 말이오. 누군가 나를 밀고했소. 누군지는 모른다오. 하룻밤 사이에 내 지위는 사라지고, 내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지."
서명환의 목소리는 점점 떨려왔다. "아내는 날 떠났고, 자식들은 나를 외면했소. 난 이제 그저 몰락한 한낱 인간일 뿐이오."
리진강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두운 생각에 빠져들었다. 밀고… 그는 서명환의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리진강의 마음 속에서는 의심이 점점 커져갔다. 리영희도 나를 밀고하려는 것이 분명해. 내가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나도 서명환처럼 될 거야.
리진강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술값을 내려놓았다. "서 동지, 나중에 다시 보세." 그의 목소리에는 굳은 결의가 담겨 있었다. 서명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은 이미 풀려 있었다.
리진강은 술집 문을 나서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작가의 말
사람의 불안은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합니다.
리진강이 느끼는 불안과 의심은 이제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