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여자는 오래전 계단에서 굴렀던 경험 때문에 계단 공포증이 생겼다고 했다.
“오늘은 기억 추출만 하시고, 내일 다시 방문하세요.”
그녀는 자신의 기억들을 보며 연신 몸을 움찔거렸다.
“기억을 무서워하지만 않는다면 좋을텐데요.
경각심을 갖는 것까지는 괜찮아요.
넘어지는게 두려운 상황은 맞으니까요.“
과학자는 말했다.
그 후로 찾아온 한 남자는 자신의 오래된 트라우마를 지우기를 바랬다.
”사실은 아직 그런 기술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요. 하지만 제가 연구해보고,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면 알려드릴게요.“
과학자는 아리아디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기억을 함부로 삭제할 수는 없었다.
기억은 뿌리가 깊은 나무와 같아서, 온갖 곳에 뻗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기억의 삭제가 다른 기억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컸다.
특정한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덮어 씌우는 것은 가능했다.
문제는 어떤 기억으로 덮어씌워야 할 것인가 였다.
트라우마로 오염된 기억 자리에는 그 어떤 기억을 주입하더라도 괴기스럽고 공포스럽게 조작될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새로운 기억이 주입되는 과정에서, 이전의 트라우마가 융합되어, 애꿎은 트라우마만 늘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먼저 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뱀과 같은 존재를 트라우마에 덧씌울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뱀에 대한 공포, "오피디오포비아" (Ophidiophobia)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도 지양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 낮에 온 남자가 뱀 동호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두번째로 생각한 것은, 사람마다 개별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맞춤형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자칫하면, 사람들에게 새로운 공포의 대상을 안겨주게 될 위험성이 있었다.
결국 마지막에 그가 고안한 방법은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과학자 본인의 모습을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아리아디움에 방문한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약간의 공포심을 느끼게되겠지만, 동시에 그들이 제 발로 과학자를 찾아온 것이라는 것을 인지할 것이기 때문에 그 공포는 해소 가능할 것이었다.
검은 양복 차림으로 설정한 것은, 흰 과학자복 차림으로는 과학자, 혹은 의사에게까지 확대되는 공포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지우고 싶은 기억과 그 기억을 덮어씌우려는 시도를 다룹니다.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 정말 해답일까요, 아니면 그 기억을 다른 것으로 덮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