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목격자들까지 사망한 탓에, 기억추출법으로는 가해자를 추정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CCTV를 통해 밝혀진 범인은 다중인격을 가진 자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는 차분하게 온화한 성격의 중년이었지만, 몇 주전부터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인들은 그가 다중인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어요.
자기가 하는 일 하나만 몇 십년째 맡아오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점심시간에 바이올린을 켜고 있더군요.
가히 최고의 연주자와 같은 솜씨였어요.
그 전까지는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아니, 음악을 즐기는 지도 몰랐었죠.
그는 쾌활하게 말했죠, 이 주 뒤 결혼기념일에 아내를 깜짝 놀래켜줄거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한 이후부터 그가 때때로 이상 행동을 하곤 했어요.
사무실 의자에 앉아 화장을 하거나,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허리를 잔뜩 숙이고 지팡이를 짚어 다니기도 했구요,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유없는 시비를 걸기도 했어요.
사무실 책상을 세게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그 날은 아침에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워서 집으로 귀가시켰는데
바로 그 날 그가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을 살해했다니...“
TV로 인터뷰 영상을 보던 재단사는 굳어버렸다.
그 남자는 재단사의 사회적 실험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작가의 말
그의 다중인격이 과연 재단사의 실험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본질적인 한계에 도달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