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렬

빙신(氷申) Vol.2

by MIHI

“어이, 조용히 좀 하지.”


정희만이 한 마디 한다.


임시 휴교령이 끝나 수업이 재개된 교실에서,


푸른 눈이 되어 돌아온 한 녀석이 그를 성가시게 한 것이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정희만을 쳐다본다.


‘괘씸한 녀석, 본 때를 보여줘야겠어.’


체육특기생이자 왼손잡이인 정희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는 반에서 가장 키가 큰 학생이다.


그는 정희만에 비하면 왜소하고 작다.


그러나 녀석은 두려워하기는 커녕 의기양양하다.


정희만은 그의 광기어린 푸른 눈을 쳐다보면서 뭐라도 빙의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정희만, 예전의 나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나 빙체 수술 받았어.


그냥 조용히 앉으면 내가 넘어가준다.“


그가 낄낄 거린다.


정희만은 옆을 힐끗 본다.


이 상황이 더 불만스러운 것은, 정희만의 충실한 친구인 고기봉 마저 그의 말에 슬쩍 웃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들이 단체로 뭐에 씌였나.”


정희만이 주먹을 뻗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정희만은 바닥에 고꾸라진다.


서늘한 감촉이 뒷목에서 느껴졌다.


정희만은 난생 처음 공포를 느꼈다.


힘의 우위가 뒤바뀐 기분.


더 이상 정희만은 반의 강자가 아니었다.


정희만은 옆눈길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의 웃음은 압도적인 힘을 품고 있었다.


“희만아, 알아서 기어야지.”


녀석이 말한다.


그 순간, 정희만의 머리 속에서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빙신의 등장, 그 이후 찾아온 세계에서는


자신이 평생 이렇게 기어다녀야 할 지렁이일 거라는 예감이었다.



작가의 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