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히버스

화장실 타임슬립

FLUSH BACK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by MIHI

나는 4월 1일에 입사했다.

그리고 4월 2일인 오늘 화장실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나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거울 너머로 한 사원이 화장실 칸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마저 손을 씻는데 집중하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또다른 인기척이 들렸다.

같은 칸에서 김 대리가 나오고 있었다.

김 대리와 거울 속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눈을 돌렸다.

김 대리는 별말 없이 화장실을 나갔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돌려 화장실 안을 보았다. 다른 칸들은 심지어 비어있었다.


다음 날, 나는 더 대단한 것을 봐버렸다. 나는 은근히 그 화장실 칸을 신경쓰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고 대표님이 나왔다.

뒤 이어서 신 팀장이 나왔고,

조금 뒤에는 팀장의 오른팔, 박 대리가 나왔다.

시간은 8시 30분을 막 가리키고 있었다. 출근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어떻게 저런 일이 자행되는 것일까?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그들이 화장실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입이 간지러웠다. 가까스로 입단속을 한 나는, 그 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그 욕구를 대신했다.


오전에는 인사과에서 전화로 문의가 있었다. 나의 인적사항에 대한 문의였다. 전화 온 그녀는 내게 몇 가지를 질문했고, 나는 아는 범위에서 내용을 설명하며 전화를 마쳤다.


그리고 나는 그 화장실 칸으로 갔다. 감히 내가 이곳을 사용해도 되는가 싶기도 했지만, 내가 망설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10분간 그곳을 점유하고 볼일을 본 후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전화가 왔다. 앞서 전화가 온 그녀였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요."

나는 그녀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전화를 한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전과 같은 질문을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의아해하면서도, 그녀의 질문에 똑같이 대답을 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았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시계는 점심시간 3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시간은 점심시간 30분 전이었다.

‘시계가 거꾸로 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1분 동안 시계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갔다.

이제 점심시간 34분 전이었다.


같은 전화를 두 번이나 한 직원.

내 감각이 가리키는 지금 시간은 점심시간 14분 전이 맞았다.

시계와 내 감각의 시차.

나는 이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건 내가 방금 다녀온 화장실 칸이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고, 바로 그 칸에 들어갔다.

60초를 세고 밖으로 나왔을 때, 사무실 시계는 점심시간 33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게, 화장실 칸의 규칙 첫번째를 알게 되었다.

‘볼일을 보아야지만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


이후 나는 여러 가지 규칙을 습득하게 되었다.

두번째 규칙은, ‘물을 꼭 내려야지만,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내려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이 화장실 칸이 가진 무궁한 활용 가능성을 떠올렸다.


세번째 규칙은 유난히 하루가 길었던 다음 날 알게 되었다.

새벽내내 내가 알게 된 회사의 화장실을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날은 회식날이었다.


하루종일 이어진 신규입사자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퇴근 10분 전 화장실을 간 나는 대리에게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한 뒤 그 칸으로 들어가서 10분을 버텼다.

그리고 화장실 밖으로 빼꼼 나와보았을 때 시간은 퇴근 20분 전이 되어 있었다.

‘이거 놀라운데?‘

곧바로 화장실 칸에 들어간 나는 30분을 되돌리기로 했다.

오리엔테이션 말미에 사수가 한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이 떠졌을 때 내 몸은 몹시나 가뿐했고,

나는 내가 화장실 안에서 깊고 편안한 잠을 자버렸다는 사실을 불현듯 느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1시간? 2시간? 4시간?’

조심스럽게 화장실을 나간 나는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7시간 40분을 잤다고?’


같은 내용의 오리엔테이션의 도입부를 다시 듣던 중, 휴식 시간이 되자 나는 곧바로 화장실 칸으로 달려갔다.

‘오늘 나는 이 법칙을 알아내야겠어.‘

이번에는 1시간 30분을 화장실에서 보냈고, 사무실로 나왔을 때 시간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세번째 규칙, ‘출근 시간 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세번째 규칙에는 2항, 3항이 존재했다. 이것 또한 나의 여러 시도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세번째 규칙 2항은 ‘퇴근 시간이 지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세번째 규칙 3항은 ‘공휴일과 주말에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서야 나는 대표님, 팀장님, 대리님과 사원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에 화장실 칸에 들어가

비슷한 때로 시간을 되돌렸던 것이다.

그 모습을 화장실 칸 밖에 있던 나는

여러 사람이 한 화장실 칸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 것이다.


오리엔테이션 기간이 끝나고, 경력직인 나에게는 본격적으로 챌린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화장실 칸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화장실을 들어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 나의 마음이 달랐다.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에는 항상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의지가 충전되어 있었다.


나는 요청이 오기 전에 일을 처리하는 사람,

시키기 전에 일을 마치는 사람,

모든 일이든 수월하게 해내는 사람이 되어 갔다.


분기별 평가 날,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이메일을 열어, 내 등급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보통’이라는 평가였다.

야근은 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보낸 그 많은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냉혹했다.

상향평준화된 기준 속에서 내가 생각했던 최선은 ‘보통’이었던 것이다.


나는 별말없이 앉아있는 사원, 대리님, 차장님을 보며 긴장감을 느꼈다.



작가의 말


보통의 최선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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