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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Nov 17. 2021

어른의 공부

무상 교육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아는 분이 줌으로 매일 새벽 4시 영어 과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무보수로 진행 중이라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대단했다. 게다가 그는 원래 영어를 가르치던 게 아니었기에, 수업 준비에 쏟을 노력은 굉장할 것이었다. 시작한 지 한두 달 즈음되었으려나? 얼마 전 그가 수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다. 이유인즉슨, 배우는 분의 태도가 열성적이지 않아 힘들다는 것이었다. 문득, 10년 전 그러니까 2012년도의 내가 떠올랐다.


당시 국영수 단과학원에 몸을 담았다. 어렸고,  다양한 학년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라 열정이 넘쳤던 때였다. 진짜 영어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번뜩 들자마자, 주말 무료 강의를 계획했다. 모든 학생  누구든 주말에 와서 영어로  쓰고 영어로 말하는 것을 배우게 하자는 취지였다. 원장 선생님을 설득하는  당연히 순조로웠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도 되는데...”라는 말을 남기셨지만, 불타는 나의 눈을 보고, 혹은  역시 처음의 열정을 알기에 말리지 않으셨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자발적 무상 강의를 시작했다.


첫 주에는 꽤 많은 아이들이 찾아왔다. 학부모님들에 공지를 돌린 영향도 있는 것 같았다. 반은 억지로 끌려온 애들 같았고, 반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영어로 글도 써보고 쉬운 말들을 따라 하고, 노래를 했다. 첫 주말 무료 강의는 성황리(?)에 마쳤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두 달을 간신히 채운 뒤 주말 강의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 수업에 참석해줬던 세 명의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생이었다. 중고등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동안 허탈해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돌아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학생의 동기와 나의 의도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시험을 잘 보는 게 중요하고, 또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니 당시 아이들에게 영어로 말하고 쓰는 건 ‘굳이?’였을 거다. 한마디로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건 또 다른 공부의 연장이었고, 부모님에게 떠밀려 주말까지 놀지도 못하고 수업을 들으러 왔을 뿐이니까.


가르치는 것을 10년 넘게 업으로 삼고 있지만, 연령을 불문하고 누군가를 가르치다 보면 언제나 역으로 배우는 게 생긴다. 그리고 당시의 깨달음은 ‘상대방의 상황과 목적을 고려하지 않은 친절은, 친절이 아니라 부담일 수 있겠다’였다.


무상 교육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몇 년 전 보육시설에 교육 봉사를 다닌 적이 있는데, 학원을 다닐 여유가 없는 아이들이 대상이었다. 또는 집에서 아이들을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부재해, 숙제 등을 도와주는 일도 있었다. 그 봉사를 몇 년 지속하며 무상 교육이 진정 필요한 곳에 대해 생각했다.


다시 지인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의 경우도 옛날의 나와 비슷했다. 물론 학생인 분이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지만, 그가 매일 새벽 4시에 두세 시간씩 쏟는 수업을 예상했을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무상 교육이라면 받는 사람도 그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었다. 학생인 분은 사업체를 꽤 여러 개 운영하고 계신 걸로 안다. 그의 하루가 몹시 바쁠 것은 자명했다. 또한 지불할 능력이 충분히 있고, 지불 의사를 여러 번 밝혔지만 가르치는 이가 거절했다고 한다. 가르치는 이의 의지와 결단은 정말 멋지지만, 이 경우엔 소액이라도 또는 작은 사례라도 받는 게 서로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시작도 끝도 서로 부담이 없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학생들은 학습 동기와 목적이 분명한 편이다. 시험과 수능이 그 동기이자 목적이 되어준다. 그런데 성인은 다르다. 취직을 위해 또는 승진을 위해 공인 영어 성적이 필요하다면 괜찮다. 그러나 막연하게 ‘영어를 잘하고 싶어!’라면 굉장히 부러지기 쉬운, 다시 말해 미루기 좋은 의지가 된다. 우선순위에 놓인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지속하기 위해선 스스로에게 책임감과 의무를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성인의 경우 그것이 경제적인 요소와 연결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가?’, ‘경제적인 지출을 했는가?’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책들과 좋은 무료 강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학원과 과외가 성행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와 연결되지 않을까.


요즘엔 누구나 가르칠 수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다.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경험한 것들이 다르며,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이 너무도 많다. 그렇기에 여러 강의 플랫폼들이 성행하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온라인 플랫폼에 비즈니스 영어 강의를 올린 후, 과외 요청이 늘었다. 그런데 지인의 경우 고민이 되었었다. 얼마로 책정해야 할지, 돈이 오가는 게 어색하진 않을지 등등. 그러나 위의 모든 생각들을 종합한 나의 결론은 작은 소액이라도 받는 것이었다. 자유 의지에 의한 지출, 그것은 배우는 입장에서 단순히 호의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했다는 책임감을 준다. 또한 이는 수업을 향한 주체적 결정이기도 하다. 금액이 크건 작건 그 지출을 위한 결정이, 가르치는 사람 그리고 배우는 사람 서로에게 균형 있는 책임감을 준다.


교육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가르치는 대상이 누구든지,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이든지 그의 의지, 책임과 나의 의욕, 열정이 균형을 이뤄야 서로가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다. 그걸 모르지 않을 나의 먼 지인도, 그의 이번 경험을 토대로 또 다른 혜안을 얻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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