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본질은 우리를 만들고 있는 원자들이나 단순한 분자들에 있는 게 아니라 이 물질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있다.-263p
칼 세이건은 269p에서 만약 "화성에 생명이 있다면 화성을 그대로 놔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 놓고는 271P에서는 "화성의 애플시드가 미래 인류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얼어붙은 황무지를 종횡무진 휩쓸고 다니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는 "언젠가 화성의 지구화가 실현된다면 화성에 영구 정착해서 화성인이 된 인간들이 거대한 운하 망을 건설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주장은 모순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구화와 식민지화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지구화시키면서 화성을 그대로 둔다는 데, 양립 가능한 주장인가?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침탈했던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렇지만 이웃 행성에 지성을 갖춘 존재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보다 더 인간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글쎄. 그들이 지성을 갖춘 존재라면 인간의 접근을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문명을 호의로 받아들였던 잉카인들과 아즈텍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반대로 그러한 전례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주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칼 세이건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과학의 발전을 위해 그런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러한 순수한 신념이 과학자들의 의지로 관철되기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자유주의 정부, 공산정부, 나치 정부, 자본주의 기업은 동일한 과학적 발견을 완전히 다른 용도로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어떤 용도를 다른 용도보다 선호할 과학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과 풍요 뒤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한 말을 하는 나 역시도 과학과 기술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칼 세이건의 생각에 크게 반박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생명의 본질은 우리를 만들고 있는 원자들이나 단순한 분자들에 있는 게 아니라 이 물질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있다."
그렇다, 그러하다. 나도 당신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결합되는 방식을 과학기술에만 한정시켜 말하는 것이라면,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변화가 무쌍하므로 계산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의해 결합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인위적으로 생명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는 선택을 했을 때, 인간은 지금까지 예상할 수 있는 재난을 예상할 수 없는 정도까지 악화시켜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