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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코스모스

'포스'가 함께하는 코스모스 11

#10 밤하늘의 등뼈

by 비루투스

*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던져진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만이 우주에서 지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368p


"피타고라스는 수학적 논증의 객관성 및 확실성에 매료되어 있었고 모든 것은 수학적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는 논증은 번잡한 일상생활과 크게 대비되었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의 기독교 후계자들은 지상의 세계는 때 묻고 골치 아픈 반면에 천상계는 완벽하고 신성하다는 특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많은 철학자들은 각기 처해있는 입장에서 자연의 질서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신들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물리적 힘의 결과로 만물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야말로, 당시 사고의 근본을 뒤흔드는 발생의 대전환이었다."라고 말하는 대목을 미루어볼 때,

칼 세이건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학자들 중 유물론자들에게 과학적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같은 주류라고 평가되는 철학자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법조문의 경우 문리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법해석이 필요하다. 나는 논쟁적인 텍스트를 접할 때, 이러한 기준에서 문맥을 파악하는 편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그의 견해는 마르크스처럼 극단적인 경향이 있다. 주류 철학자들이 물질적인 세계를 부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토대로 해서 완벽한 정신세계를 도출하기 위해 그러한 논리 전개를 한 것이다. 플라톤의 경우 추상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칼 세이건의 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나, 구체적인 성격이 강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심지어 그는 '과학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지 않는가? 또한 유물론자들은 영혼 자체를 물리적 속성의 하나라고 치부하고 있는데 정신적 속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지점을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관념론과 유물론은 양비론이 가능하고 상호보완적인 해석이 전제될 때, 본질적인 측면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행성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않고 단지 태양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태양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지구와 행성들은 아예 보이지 않을 것이다."


칼 세이건이 동양철학의 근본적 원리인 '태극' 속에 내포된 '음'과 '양'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좀 더 심도 있게 논리를 고찰하지 않았을까? 모든 사물에는 이면적인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서양철학에 적용하면 '현상계'와 '물질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것을 '양'으로, 물질적인 것을 '음'으로 구분하기도 하나 그러한 '대극'도 어느 지점에 이를 때 혼연일체를 이루기도 한다.

서양철학사에서 니체 이전의 사상에서는 유물론보다 관념론적인 측면에 치중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영향이 지대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니체는 오히려 몸의 감각이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했고, 그것은 이후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칼 세이건은 "자연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자연에게도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이렇게 훌륭하게 정돈된 질서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라고 말했다. 비교론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앞서 케플러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완벽한 원 궤도와 불완전한 타원의 움직임이 우주라는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어낸다. 따라서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균형을 이루며 질서 정연하게 운행되고 있는 것도 우주의 원리인 코스모스라고 말할 수 있다.

만물은 만들어진 것이며 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 만물 속에는 신의 의지가 깃들여져 있다. 태양은 행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완전성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빛을 생성하는 '항성'이다. 그러므로 태양을 둘러싸고 있는 행성들은 그 빛에 비추어질 뿐이다. 그런데 행성 또한 인간에게 그 받은 빛을 비추었고 인간은 그것들을 별이라고 불러왔다.

인간의 역사는 그러한 별에 신성한 규칙들을 부여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완전성을 상징하는 태양은 예로부터 숭고한 존재로써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태양조차 만물의 일부 중 하나일 뿐이다. 즉 인간이 볼 때 완전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신과의 관계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것이 되어버린다.


별은 빛을 내지만, 한편으로는 그 빛을 잃어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소멸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의 빛을 받은 별은 또 다른 별을 비추게 될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인간의 삶이 우주에서 의미가 있다면, 그러한 과정 속에서 던져진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계속적인 노력들이 우주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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