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징포스 Mar 25. 2024

라캉의 시선으로 하루키 문학 분석하기 2

#국경의 남쪽과 태양의 서쪽, #하루키, #라캉, #정신분석학


*하나의 소용돌이가 생겨나면 그 소용돌이로부터 또 다른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는 또 다른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하루키의 소설은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고, 프로이트적인 접근으로 개인의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주변 환경이 의식에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을 특유의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그러한 간극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해석을 즐기는 것이 그의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경의 남쪽과 태양의 서쪽 >이라는 작품은 전작들과는 달리, 작가가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시작과 소외     


 “어렸을 적에 나는 이 ‘외동아이’라는 말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에겐 뭔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곤 했다. 그 말은 늘 나를 업신여기는 말로 들리곤 했다. ‘넌 불완전한 인간이란 말이야.’ 하고.”     

     

  소설은 일본의 거품 경제가 한창 융성했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주인공에게 '시작'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는 것에는 역설적인 의미의 뉘앙스가 담겨있다. 그 당시의 외동아이는 부모의 응석받이로 자라 허약하고 아주 버릇없다는 것이 확고부동한 시선이었고 하지메는 그러한 편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하지메와 대칭점으로 설정된 시마모토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절름발이'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완전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메와 시마모토의 관계는 프로이트의 상상계나 라캉의 거울단계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러한 단계에서 아이는 자기의 이미지나 신체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거울에 반영된 이미지는 아이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 이미지는 자기에 대한 감각에 친밀하게 결속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외부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메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시마모토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외골수이고 제멋대로인  하지메와 달리 학업성적도 좋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편이었으나 신체적인 콤플렉스는  불편한 다리를 감추게 했다. 그러한 이질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낀 하지메는 시마모토와 친구가 되어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게 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알 수 없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자연스레 그녀와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메는 시마모토에게 품게 되는 야릇한 감정을 직시하기보다는 억압하려 했고, 그렇게 반복되는 충돌은 자신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라캉의 이론에 따르면 주체는 언어와 상징계에 통합되면서 자신의 본질적인 욕망과 분리되는데 이러한 '소외' 때문에 주체가 구축되는 것이라고 한다.   


   

기의는 기표 위에서 미끄러진다   


“내가 읽는 책이나 내가 듣는 음악을 그녀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런 영역에 관해서 우리가 대등한 입장에서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고 주장했고, 소쉬르와 달리, 기표(형태)와 기의(의미)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러한 불안정성이 의미를 생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사귀며, 외동의 주술에서 풀려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여전히 틈만 나면 방에 틀어박혀 시마모토와의 추억을 되새기곤 했다.

그러다 이즈미라는 여학생과 친해지게 되지만 그녀는 시마모토와 달리 전형적인 모범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하지메는 그런 그녀를 만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라캉에 따르면 무의식은 단순히 개인의 내면에 숨겨진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징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어떤 질서가 있으려면 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즈미의 사고방식에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녀에게는 꿈을 좇는 하지메의 모습이 불안하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상징계의 억압은 하지메에게 육체적인 욕구로 발현되어 이즈미와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고. 자신조차도 유령처럼 여기저기를 떠돌게 했다.

 모든 것이 거품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우연


"형태가 있는 건 하나같이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지. 하지만 어떤 유의 생각이라는 건 언제까지고 남는 법이지."

 "하지만 하지메, 그런 생각이 남기 때문에 그만큼 괴로운 감정이라는 것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하지메는 여행에서 우연히 유키코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유키코는 평범한 외모의, 무난한 성격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와의 결혼으로 인해 하지메는 엄청난 재력의 소유자인 장인에게 사업자금을 지원받아 재즈바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겉으로는 완전해 보이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과거의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즈미와, 더 이상 다리를 절지 않는 시마모토가 주변에 나타나게 되면서 하지메의 안정된 삶에는 점차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국경의 남쪽과 태양의 서쪽   


"나는 조금씩 이 세계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거다. 이건 그 첫걸음이다. 이걸 받아들인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아마도 또 다른 무엇인가가 찾아올 것이다."

  

 태양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존재로 여겨져 권력과 권위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힘은 주체에게 자신이 부여하는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거리낌 없이 남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프로이트는 그것을 '초자아'라고 불렀고. 라캉은 상징계라고도 했다.


  장인은 하지메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주었고, 사업이 번창하게 된 후에는 더 큰돈을 벌게 해 주겠다며, 자신의 지시대로 유령회사에 투자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하지메는 자신의 꿈과 가능성까지도 장인의 에 농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그러한 불법에 편승하지 않고, 시마모토와 함께 '국경의 남쪽'을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은 돌아갈 수 없는 근원적인 지점으로 돌아가고자 충동이었고. 그녀와 하나가 되어 죽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죽은 아이의 유해를 강에다가 뿌린 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관계를 정리해 버린 시마모토에게 중간이란 선택지는 의미가 없었다. 하지메는 그런 그녀의 눈에서 숨이 막힐듯한 공포를 느꼈고 시마모토는 하지메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다음날 미련 없이 떠났다.



결핍의 의미


"환상은 더 이상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위해 꿈을 빚어내 주지 않았다. 공백은 어디까지나 공백 그대로였다."     


 환상이란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며 실재계가 우리의 일상생활의 경험 안으로 침입할 때 방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마모토가 실재하는 인물인지 환상적인 존재인지 소설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녀의 존재는 하지메의 근본적인 무의식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소설의 결말에는 '잃어버린 편지'와 같은 반전이 있는데,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유키코가 일련의 사건들을 가까운 위치에서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결혼 이후에도 방황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혼자서 숨죽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유키코 또한 실연의 아픔으로 죽음의 언저리까지 갔다 왔었기 때문에 깊은 데까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메는 유키코를 우연히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외로움이 그를 유키코에게 이끈 것이었다.


 하지메는 '결핍' 그 자체가 자신이었고, 정작 필요했던 것은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드러내는 공백의 의미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에 이르렀던 경험은 외면하려고만 했던 현실에 눈을 뜨게 만들었고, 편협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숱한 노력들이 오히려 또 다른 환상들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는 원상회복할 수 없는 시간이었고, 애초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잃어버릴 수도 없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아파하는 누군가를 위해, 작고 구체적인 사실을 쌓아가며 함께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ㆍ참고도서


< 국경의 남쪽과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2022.01.14 >

< 라캉 읽기, 숀 호머, 은행나무, 2014.07.09 >

< 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 이학사, 2023.10, 10 >

< 정신분석학입문, 지그문트 프로이트, 동서문학사, 2016.09.09 >

              


"태양의 서쪽에는 도대체 뭐가 있는데?"라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몰라,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 아니면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튼 그건 국경의 남쪽과는 좀 다른 곳이야."

                                                       -본문 중에서-   


                                                            -       

작가의 이전글 새벽에 쓰는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