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몽의 변증법. 테어도르 아도르노 >
* 이 계몽 개념 자체가 오늘날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퇴보의 싹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믿는다. 1)
저 원시인의 주술 행위 속에서 새롭고 끔찍한 사건이 되었던 것, 즉 특수자 속에서 전체가 나타나는 것, 이것이 곧 예술 작품의 의미나 '심미적 가상'이다. 예술 작품에는 언제나 '이중화'가 일어나는데 이 이중화를 통해 사물은 정신적인 것으로, 즉 '마나'의 표현으로 보였다. 이것이 예술 작품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2)
예전에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청담동 루이뷔통 명품관에서 열렸던 '자코메티' 전시회에 방문했었던 기억이 있다. 루이뷔통 매장을 몇 번 지나간 적이 있긴 했지만 명품관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내뿜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응대하는 직원들은 입구에 들어서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렸다. 여러 방향과 각도에서 비치는 내 모습이 파편화되어 마치 거울 속에 갇혀있는 것만 같았고, 이질적인 장소에서 만나게 된 자코메티의 작품은 무언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개인의 자각을 강조하는 실존주의와 대량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기성품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아우라'란 예술 작품에서 느껴지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 또는 품위나 품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실존주의는 인간의 주체적인 존재성을 강조하여 허무와 반복 속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특징이 있다.
자코메티는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만든 후 해체하고 다시 붙여나가며, 삶이란 완전한 것이 아니라 미완성을 향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하였으나, 루이뷔통은 소비와 욕망의 기호성에 그러한 가치를 덧입혔고, 그것을 통해 완전한 예술 그 자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차별성으로 내세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자본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러한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브랜드가 연출하고 있는 이미지를 처음부터 당연하게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말해 니체가 계몽을 지고한 정신의 보편적 운동으로 파악하면서 동시에 계몽은 이러한 운동의 완성자로서 삶과는 적대적인 허무주의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파시즘이 창궐하기 직전 니체의 후예들은 두번째 관점만을 받아들여 계몽을 이데올로기로 전락시켰다. 3)
보통 계몽이라고 하면, 구습이나 절대적 이념에 사로잡혀 무지몽매한 상태에 빠진 인류를 '이성의 빛'으로 몰아내기 위한 것으로,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진보의 혜택을 누리고 정신적인 삶을 만끽하며 좀 더 과학적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교양적인 이상주의를 말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18세기에 시작하여 구태의연한 사회와 종교, 그중 비과학적인 생각으로부터 해방을 목표로 했으며, 공평한 사회의 실현을 꾀했다.
계몽주의자들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가 확산된다면 사회는 기존의 불합리한 가치를 전복시키고 이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그러한 계몽에 깔려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파악하지 못한 채 발전에만 몰입했고 그 결과, 경제적인 격차와 주체 상실에 의한 문제점 등이 대두하게 되었다.
인간을 더욱 높은 단계에 올려놓고자 했던 계몽주의는 어떤 이유 때문에 그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일까?
'키치'란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을 뜻하는데, 이러한 키치는 독창적인 구조의 필요성이나 동질성과 일치하는 특성들을 지니고 있지 않고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가치를 강조하며 진부하고 감상적인 요소가 많아 움베르트 에코는 문맥을 벗어난 양식이라고 정의하기도 했고, 계몽에도 이러한 속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일단. 그것을 주창했었던 인물부터 자신의 사상과 어긋나는 언행을 일삼았고 시대적 상황과도 모순되는 면모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토머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방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제한하고 국가권력을 통해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군주제를 통한 독재적인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군주의 이익은 곧 신민들의 이익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계약으로서 군주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자유를 넘기면 민주주의의 폐해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주제가 성립된 국가에서도 아노미 현상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었고,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폐해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민의 이해관계가 국정운영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국가들이 더 많았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계몽과 이질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존 로크는 본래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은 인간의 공동자산이 된다고 했고, 거기에 인간의 노동이 더해지면 그것은 개인의 소유물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노동의 생산물을 사유재산에서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장소인 토지까지도 사유재산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만약 생산물과 토지의 소유자가 겹치게 된다면 이익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 만약 토지 소유자가 자기 소유의 토지를 빌려주는 대가로 토지의 수확물을 소유하게 된다면, 토지 경작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얻은 생산물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자연에 자신의 노동을 가했을 때 그 결과물이 노동한 자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는 로크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뿐이다.
장 자크 루소는 계몽주의자였으나 반계몽주의자라 불리기도 했는데, 그는 인간을 이전의 사회보다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각종 문명과 사회규범이 변질되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은 문명 이전의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 문명 이전의 세상이 이상적이었다는 역사적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루소가 살았던 시대보다도 훨씬 더 비참하고 가혹한 것에 가까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점에서 신뢰를 얻기 힘들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어보면 인간은 어느 정도의 동질성과 친밀성이 공유되는 쪽에는 협력을 하지만, 자신들과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잔혹하게 대했다는 것을 서술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야만의 시대를 지나 문명의 단계를 거치면서 언어와 규범이 만들어졌고, 교역을 통해 다른 종족이나 민족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의 안정과 평화가 정착되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계몽주의로부터 파생된 프랑스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을 부르짖으면서 시작되었고 부르주아들은 민중들과 합세하여 그들을 억압하던 전제정권들을 몰아내었다. 그런데 혁명의 이상과는 달리, 목표가 달성되자 부르주아들은 구세력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였다. 다만 이전과 달라지게 된 것은 민중들도 조건이 된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이전보다 나은 지위를 성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과 신진세력 간에는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발생하였고, 선민의식을 가진 자들이 나타나 해결사를 자처하고 자신들의 방식에 대한 믿음을 요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극단적인 주장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고 시민은 다시 신민으로 역행하면서 계몽은 그 자체를 스스로 변질시키고 파괴하기 시작했다.
항상 그래왔듯이 혁명의 여명은 잠시동안 그 빛을 비추었고, 어두운 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몽의 이상은 점차 사라졌고, 권력의지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사회가 발전하고 연결될수록 진보적인 결과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전의 악몽들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어왔지만 네 차례의 산업혁명은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의 야만성이 다시 확인되기도 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전 세계가 신음하면서 잠시 손을 잡는 것 같았지만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한동안 잠잠했던 이데올로기들이 되살아났고, 유보되었던 전쟁들은 현재진행 중인 상태이다.
계몽이라는 이상 위에 맥락과 상관없는 의도들이 삽입되면서 변종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하나의 사건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요소들과 혼합되었다. 진위를 밝히려는 노력들이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데, 아도르노는 계몽에는 퇴보의 가능성이 함께 내포되어 있으며, 사물을 옳게 판단하고 진위, 선악 또는 미추를 식별하는 능력인 '합리적 이성'을 배제하고, 목적 그 자체에 도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 보면 계몽은 그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 또한 있느니라"라는 말처럼 그의 '동일성'을 가능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살아남게 해주는 지식은 궤도에서 일탈되기도 하고 해체될 위험도 맛보는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4)
'데페이즈망'은 '정든 고향을 떠나다.'라는 뜻으로 익숙한 사물이나 대상에 부적절한 삽입으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자극할 수 있는 기법으로, 기존의 문맥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나 느낌을 부여하고 예상치 못한 조합을 통해 관객에게 신선하고 충격적인 인상을 주고 싶을 때 사용한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계몽주의가 이상적인 모습으로 구현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 대전 이후 패전국이었던 독일, 오스트리아와 같은 나라들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식민지를 내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의 식민지를 내놓게 만들려는 의도였지만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과 독립을 열망하는 약소민족들에게는 시대의 조류가 주는 커다란 희망으로 해석되었다.
사실, 3.1 운동 또한 민족대표들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고 지식인의 입장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을 퍼포먼스로써 연출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전혀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애초부터 탑골공원에 갈 생각이 없었고, 경찰서 앞에서 선언문을 낭독한 후 체포되는 선에서 조용히 마무리 지으려고 했었지만 시위를 기다리다 지친, 열정이 가득했던 풋내기 전도사 한 명이 단상에 올라 기미독립선언문을 사람들 앞에서 선포해 버렸고, 이로써 독립운동의 포문이 줄기차게 열려버렸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인도의 위대한 시인 타고르는 `기탄찰리`를 통해 우리나라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찬미하기도 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흑인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벌어진 싸움이었다. 북부는 공업시설이 발전했고, 남부는 목화 재배가 유명했는데 공장의 일손이 부족했던 북부는 흑인을 교육시켜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려고 했고, 남부에서는 그러한 일이 생기게 되면 대규모 농장에서 흑인 인력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이에 반대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남북전쟁은 경제적 이해관계의 갈등의 여파가 시작되었고, 미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던 유럽 강대국들은 남부를 지원하며 사태가 더욱 악화되기를 원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링컨은 전략적 의도에서 전쟁의 명분을 노예해방을 위한 것으로 선포해 버렸고, 이것은 정의와 인류애에 기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졸지에 인류의 대의에 반하는 형국이 되어버린 유럽강대국들은 싸울 명분이 사라져 버렸고, 공산주의 진영에 있었던 마르크스는 '남북전쟁은 내전을 넘어선 혁명 전 교전'이라며 크게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북부의 승리는 의도를 넘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커다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필자가 유사한 맥락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바로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이다. 그는 연예인으로서 <국민의 일꾼>이라는 시트콤에서 역사 교사 출신으로, 부정부패에 저항하는 청렴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코미디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트콤의 출연진들은 동명의 정당을 창당하였고 젤렌스키는 대선에 출마하여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드라마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정치경력이 전무하였으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두려움 없이 러시아에 맞섰고,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여 세계의 지지를 얻기에 이르렀다. 그를 포함 헤서, 어느 누구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물자 부족과 각국들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전쟁에서 밀리고 있지만, 인류의 대의라는 명분 앞에서 강대국들이 젤렌스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 역사상 특기할만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또 이 사태에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매개체로 비판을 받아왔던 SNS와 유튜브 같은 매체가, 뉴스보다 더 생동감 있고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뉴스에서 간과해 왔던 영역들을 심각하게 인식했고,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국제적인 관행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넘어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트럼프주의가 다시 대두되면서 인류의 대의를 업고 싸웠던 우크라이나 전선은 이탈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키치'가 될 것인지 아니면 '데 페이즈망'이 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져 버렸다.
주체가 객체로부터 받은 것을 객체에게 되돌려 줄 능력을 잃어버리게 됨으로써 주체 자신은 더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가난해진다. 주체는 외부와 내부로 향하는 두 방향 모두에서 반성하는 힘을 잃어버린다. 그 이유는 주체가 더이상 대상을 반성하지 않음으로써 주체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 반성하지 않게 되며 그에 따라 분별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주체는 양심의 소리 대신에 목소리들만을 듣는다. 5)
얼마 전 노량진 국사 일타강사로 유명한 전 모씨가 "계엄이 아니라 계몽"이라고 주장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듣고 난 후,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었다. 그가 평소에 강조했던 '선한 영향력'이 고작 그 정도 수준이라는 사실에 할 말을 잊었고, 한 때 그 강사의 강의와 책으로 수험준비를 했었던 것이 부끄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갑자기 계몽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너무 낯설게만 여겨졌다.
계몽의 사전적 의미가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친다는 뜻이라면, 그들이 무지몽매한 시민들을 일깨우기 위해 사랑의 매를 들었다는 말인가? 오히려 의식 있는 시민의식이 폭압적으로 계획된 계엄을 계몽시킨 것이 아닌가? 얼마 전에는 행정부에서 입법부를 장악하려 하더니 입법부에서는 사법부를 폭파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다들 어디로 갔는가?
몇 년 전에 인권세미나에서 어떤 인권운동가가 시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이, 첫 도입 부분에서 시민개념이 형식적 평등으로 점철되며, 불평등을 조장하는 부르주아적인 가치 개념이라고 했고, 인권의 정의에서 '이해관계'와 아무 관계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인권은 보편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이해(利解)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인들인다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인권운동가들은 동음이의어인 '이해(利害)'의 의미로 받아들여 이익과 손해를 아울러 이르는 뜻으로 한정하여 인권은 기득권자에게만 주어졌던 것으로 해석한다. 그들의 논리는 형식적으로 기울어져있는 가치체계에 대한 비판에 있어 명쾌한 측면은 분명하지만,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지 않은 채 한쪽으로 해석이 쏠려있다 보면 다른 쪽의 이해(利解)를 얻기는 힘들 것이고, 자신들 또한 이해(利害)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UN에서 인권의 시초로 인정한 것은 '키루스' 선언이다. 근대주의자들은 시민혁명이라고 할 것이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산당선언을 기점으로 삼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은 성경에서 '바사왕 고레스'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정복자든 피정복인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며 세계최초로 인권을 선언했지만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자신도 무리한 정복전쟁으로 인해 죽었다.
시민혁명의 시초라 볼 수도 있는 명예혁명은 재산을 수탈당했던 귀족과 시민이 연합하여 왕권을 견제함으로써 시작되었고, 그러한 의식은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에 크게 영향을 줌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인권의 토대가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특정계층에게만 적용되었을 뿐이었다. 자본주의와 상공업의 발달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전체적인 부를 촉진시켰으나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았고 시민계급은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당시의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구조의 모순점들을 들추어내는 탁월성을 보여줬지만 추종자들은 그러한 계몽을 확대해석하여 변질시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마르크스를 신으로 만들었다. 레닌은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주의를 타도하기 원했으나 스탈린은 그러한 레닌을 앞세워 제국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했다.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각각 코미디언과 장사꾼을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대한민국은 좌파와 우파가 힘을 합쳐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스스로를 완전히 자각하고 힘을 가지게 된 계몽만이 계몽의 한계를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6)
아도르노의 부정 변증법 이론은 이러한 종류의 사례에도 적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즉, 역사의 발전은 헤겔의 변증법처럼 모순되는 과정이 하나의 결과로 개념화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거나 개념이 간과하고 있었던 지점에서 일반성을 뛰어넘을 만한 가능성이 발현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긍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것인지는 결국 해석의 문제이며, 중요한 것은 계몽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전복의 가능성이다.
그는 한 사물의 한 단면에만 천착하는 것은 전체적인 모습을 왜곡하여 폭력을 정화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즉 권력이란, 그 시대의 지식을 독점하는 것으로 시선을 지배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며, 계몽 또한 권력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더라도 견제받지 않은 채로 있는다면, 그것이 추구했던 이상을 스스로 파괴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계몽은 대립되는 가치들 사이에서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운동력을 추동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필요에만 급급하여 전체를 부분으로 격하시키거나, 부분을 전체로써 일반화시켜서도 안 된다.
인간은 이성과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개체로써 불완전한 존재이고,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이러한 특질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보다 더 나은 지향점을 위해 완전한 존재를 전제한 삼각구도 속에서, 신과 인간 그리고 이성 간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구도속에서 신은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하고, 이성을 통해 인간은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며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계몽의 추종자들은 신의 존재를 지우고, 대신 완전한 인간상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그것은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에서 시작하여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역사의 패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대의 계몽은 특정단어의 의미를 확대하거나 지나치게 축소하여 정의 자체를 애매모호하게 하여 유리한 국면을 조장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진보냐 보수냐를 구분하지 않고, 과학이나 철학에서도 크게 다를 것이 없으며, '파르티잔'이든 '파시스트'건 똑같이 '파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자아는 모험을 두려워하며 모험 앞에서 경직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통해 강인한 자야, 즉 통일성을 부정하는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갖게 되는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을 두 가지로 분류하여 합리적 이성을 옹호하고 도구적 이성을 비판하였다. 합리적 이성은 인간의 논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을 옹호하지만, 도구적 이성은 인간을 객체화하여 단순히 생산과 소비의 도구로만 전락시켜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헤겔의 변증법은 사물을 대상화하여 동질화되지 않는 요소들을 축소시켜 버리고, 총체적인 연관성만을 강조하여 체계적인 구조에 편입되는 것만을 강조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도구화된 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예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데, 아도르노는 예술이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사회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도르노는 칸트의 윤리학이 보편적인 기준에만 집착하여,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화하여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예술은 특정 목적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본 칸트와 달리,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만 천착하여 놀이로서의 측면을 간과했고, 대중문화를 저급한 것으로 간주하여 고급예술만이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칸트에게 했던 비판이 그대로 아도르노의 예술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호머가 아도르노의 평가를 예상하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저술했을까? 별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저 당시에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시인이었을 뿐이다.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보존하고 자신의 예술적 표현을 실현하려는 의도에서 서사시의 형태를 선택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에 따라 그것에 상징성이 가미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도르노는 재즈를 고착화된 대중음악으로 간주했지만 사실 재즈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전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종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예술이라 간주하는 클래식도 당시에는 대중음악이었다는 측면에서 아도르노의 비판은 설득력이 약하며, 헤겔의 변증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일으키게 하는 '운동성' 그 자체라는 점에서 변증법이 가지는 학문적인 의의를 지나치게 약화시켰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은 다양한 상황과 경험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체는 부분을 설명할 수 있지만 부분이 전체를 완전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운동성 자체에 주목하여 이성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주목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성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부합하는 목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점에 닿기 위한 시도와 실패 자체에도 계몽이 깃들어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과정에서의 경험과 배움은 목표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계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참고도서
< 개념의 변증법, 테오도르 아도르노, 호크하이머, 문학과 지성사, 2001.08. >
1) 15p
2) 46p
3) 82p
4) 86p
5) 284p
6) 311p
7) 86p
8) 81p
< 철학용어 도감, 다나카 마사토, 성인당, 2019. 4. >
< 계몽의 노래 >
젊은 그대여, 잠을 깨워라!
그대의 꿈은 내가 꿀 테니!
세이렌의 노래가 귓가에 맴돌지라도,
폭풍우가 몰려와 그대를 휘감더라도,
그대는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고,
빗물에 눈물을 섞어 흘려보내어라.
키클롭스의 눈을 이마에 붙이고,
아르고스의 눈을 몸에 두루어라!
그대는 선장이 되어 항로를 개척할지니,
역경이 함께하며 밝은 길로 인도하리라!
계몽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하여 모든 성직자는 속이 검은 족속임이 밝혀지고, 국가에 있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계몽의 과제는 군주나 정치가의 모든 행동이 의도적인 거짓말임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