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 그레이슨 켈리 >
*그가 예술이라고 불렀을 때, 그것은 예술이 되었다.1)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는 걸까? 오늘날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그것이 좋다고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2)-20
레이먼드 탈라스는 '예술이란 인간의 보편적 상처, 불완전한 의미를 지닌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는 상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예술의 존재 의의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간의 정신에는 삶에서 겪은 정신적 상처를 긍정적 경험으로 변모시키는 기적적인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현대미술은 동시대의 예술이라고도 부르며, 고전적 분야들 사이의 경계타파와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는 분야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현대미술은 시대와 함께 변해가므로 규정된 상태로 머물 수 없으며 항시 유동적이고 현재진행형이다. 현대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근대미술과 달리 관객들이 작품을 판단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적 거리를 둘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이자벨 드 메종 루주는 <현대미술은 엘리트들의 전유물인가>라는 책에서 “미술가는 대중을 작품 그 자체 안에 초대하려 하지만 미술 관련 전문가들이 작품을 대중에게 냉정하고 거리를 둔 방식으로 제시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미술이 전근대미술과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점은 미술가가 스스로 대중에게 자신의 창작의도를 알리고 평가받기 원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 의도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미술가와 대중이 생각하는 미의 척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시가 추진한 ‘슈즈트리’가 철거되었던 사건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이 어떤 고유한 아름다움의 특질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거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데 익숙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커튼을 산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면 그만이지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고뇌할 필요가 없다.3)-30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좋은 것, 적합하게 어울리는 것을 선호한다. 근대이전에는 이러한 요구들을 수용했고, 그러한 틀 속에서 각각의 개성들을 창출해 나갔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이러한 틀 자체를 해체하고 지극히 극단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을 통해 아름다움을 말한다. 이러한 특징을 ‘개념을 취하고 이미지를 버렸다.’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미술은 지나치게 소비사회를 미화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이미지 때문에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또한 작품들 중에는 기괴하기도 하고 어떻게 저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작품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의구심은 우리가 자신들의 시야에 갇혀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뿐이다. 현대미술도 나름의 관점과 독자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은 형태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지각할 수 없는 것까지 예술의 구성요소로 삼는다.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상 작품의 배경과 배치 그리고 관객, 전시장의 소음까지도 모두 작품의 표현영역이며 그것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시각 외에 다른 모든 감각까지 동원해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요구한다.
자하 하디드가 건축한 동대문 DDP플라자는 마치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건물 전체에서 직선과 기둥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외부에는 세련된 외관과 어울리지 않는 원색의 페인트가 덧 입혀진 낡은 피아노가 세 대가 비치되어 있는데, 그곳은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버스킹 공연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어떤 여학생이 연주하는 즉흥곡에 귀를 기울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스피커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베이스가 되었고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는 드럼비트가 되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피아노에서 퍼져 나오는 멜로디들을 바람이 수렴하며 조율했다. 뒤 이어 소리의 파장들은 건물에 부딪치며 반향을 일으키고 그것이 다시 내 머리 위로 쏟아지면서 한 곡의 교향곡은 연주되기 시작했다.
공간, 소리, 사람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이 되었고 그 중심에는 바로 ‘내’가 있었다.
어떤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때 더욱 중시되는 기준은 '그것이 예술의 맥락 속에 있는가?'이다.4)-84
우리가 작품에 대해 선입견과 기대로만 작품을 대한다면 그것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차라리 불필요한 기대와 감정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함으로 다가갈 때 작품의 본질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추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말은 아름다움은 보편적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특성도 가지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비록 그의 그림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알폰스 무하와 같은 아름다움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는 대상의 외관을 넘어 오히려 대상 그 자체에서 받게 되는 심리적 인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했다.
저자는 "예술가는 자의식과 예술계의 규칙들, 그리고 예술의 역사와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맥락을 고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예술에서 말하는 개념은 이미지와 분리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이미지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기도 한다.
우리의 반응은 서로 다를 테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각자의 반응이 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내 앞에 있는 그 작품은 사실성은 내가 거기서 발길을 돌 리는 순간 다른 무엇이 된다.5)105
현대미술이 가지는 의의는 미술가가 현대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동시대인이 자각하도록 하여 진실에 이르게 돕는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고 하여 관객이 예술가의 의도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전문가가 제시하는 모법답안을 무시하고, 작품을 처음 맞이할 때 느끼는 낯선 감각 그 자체를 만끽하는 것도 현대 미술의 예술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예술에 대한 지식 그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술작품에 있어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은 예술의 이해도를 높여준다.
필자는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도슨트’ 해설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것도 예술을 가까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추천하고 싶다. 다만 우리의 감각은 지적인 범주가 주어질 때 상상력에 한계가 지어질 수 있으므로, 작품을 감상할 때 그러한 주의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할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는 것도 어쩌면 ‘구도’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내려놓고 대상 그 자체를 바라볼 때,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스스로 ‘회의’할 때 사물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예술을 경험하고 싶다면, 예술의 지식을 미리 쌓아 놓는 것보다는 작품을 먼저 대면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추천한다. 정해진 대로의 동선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반대로 위치를 달리하면서 작품에서 물러나 서있기도 해 보자.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 밖으로 걸어 나가서, 그것에서 벗어난 뒤, 다른 것을 둘러보는 것도 필요하다. ‘낯설게 하기’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문학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기도 하다. 그러고 나면 생각보다 하나의 사물에 다양한 시선과 관점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감상을 마치고 나면 비치된 '도록'을 빠르게 훑어보며 각각의 심상들을 모아 하나의 기억으로 새기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예술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어저면 예술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을 얻는 사람은 바로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104
미술관을 나가고 나면 작품의 형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내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갈 것이다. 그러나 순간의 강렬한 느낌은 이미지로 변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것이 모여 하나의 개념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개념에 한 발씩 다가갈수록 예술은 점점 가까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한 것들은 감각에 새겨지며 기억은 다시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신은 질료로써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형상은 영원하지 않으며 형상도 시기가 되면 질료로 다시 환원된다. 그리고 질료는 또다시 형상을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은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이며, 그 자체가 살아있는 예술이다.
현대미술은 동시대예술이다. 즉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의 모든 형태를 말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도 사람처럼 사라져 가는 것이 다른 예술들과 비교되는 특징이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서 사상과 언어를 남기고 가듯이, 현대예술도 형태는 희미해지지만 개념을 남기고 사라진다.
예술의 형식과 예술가의 자격은 현대예술에서는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예술가는 자신의 의도와 감정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예술의 형식을 알고 있어야 하며, 그러한 인정을 받을 정도가 되어야 대중에게 예술가라 불릴 수 있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하지만 진부한 의미를 반복 재생산할 뿐이라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러나 엔디워홀은 이조차도 예술로 승화시켰다.) 따라서 현대예술은 기존의 것을 전복시키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의 충격이 필요하다. 그러나 충격도 익숙한 것이 된다면 어느 순간부터 진부해지게 마련이다. 이자벨 드 메종 루주는 "아방가르드 미학은 과거에 대한 이의제기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이제는 그 자신이 이의제기의 대상이 되어 폐기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157
아직까지도 현대미술을 생각하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가? 어차피 현실은 우리의 머릿속을 정신없이 헤집어놓고, 예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정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예술은 그 순간, 거기, 그곳에 존재한다.
영화 ‘인셉션’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영감을 주었던 동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는 “우리는 질서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혼돈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질서는 주어진 질서가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행위를 뜻하며 혼돈은 예술의 가장 좋은 질료라는 것을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익숙함과 진부함 속에서 창작이 이루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복잡한 현실은 우리를 예술로 이끌어주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도 언젠가의 현실이었고, 미래도 다가올 현실이다. 현실은 모든 예술의 ‘가능태’이다.
우리는 경험한 것을 토대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개념을 형성한다. 우리가 예술에 노출되고 개념을 제시받을수록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 되어 나만의 감각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구축된 틀에서 작품의 의도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천천히 나의 삶을 담아서 투영해 보자. 예술에도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한 상호관계 속에서 예술도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그 틀을 스스로 해체하라. 해체의 행위는 그것을 폐기하고 극단적인 것과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함으로 예술을 전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토대로 새로운 개념을 재상산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흘러갈 것 같았던 스토리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들의 파편들이 튀어나오는 순간, 느껴지는 감정의 희열들은 소용돌이처럼 내 주변을 휘감게 된다. 그때 작품을 마주하고 예술이라는 이름을 불러보아라. 그러면 그는 나에게 예술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작품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들이 들리게 될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그 모든 기억과 감정들이 예술의 질료이며, 그렇게 조용히 울음을 삭이는 당신이 바로 진정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 참고도서
<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그레이슨 펠, 원더박스 2019.04.11. >
< 현대미술, 이자벨 드 메종 루주, 웅진지식하우스, 2007.12.17. >
우리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이 어떤 고유한 아름다움 특질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거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데 익숙해진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은 익숨함, 그러니까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을 강화해주는 것과 관련이 있다. -26
북극성
'시'는 찰나의 무아경
한 획 붓놀림으로 화폭을 채우듯,
가락에 담긴 뜻은 무한히 퍼져가네.
갇혀있던 비밀들은 형태를 벗어던지고,
깊은 곳에서 감회가 찰랑이며 어우러지네